‘K-POP 비하인드’ 현재 한국 가요의 교과서가 된 이 전설의 가수는 누구?
1981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한 이 가수는 대학시절 과제로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교수에게 제출하게 된다. 그런데 그의 곡을 유심하게 본 교수는 화난 목소리로
아무리 급해도 모차르트를 베께 오면 어떻게 해!”
하고 혼을 낸 것이다. 과제를 열심히 해온 우리의 주인공은 그저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데…놀랍게도 이 가수가 작곡한 곡이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로 너무 훌륭해서 교수가 착각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안 교수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크는 대학시절부터 천재로 불리며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대중음악 이었다. 그래서 작곡, 작사 능력 외에도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모든 악기 연주를 섭렵했고,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에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 가요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자 대학시절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던 중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조용필이 자신의 콘서트 밴드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게 되는데, 이 가수는 운 좋게 이 팀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순수음악 전공 학생인데, 당시 학교 수칙이 가요계와 연결되면 퇴학 조치를 당하던 때여서 이 가수는 카메라에 절대 잡히지 않는 조건을 걸고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게 되고, 조용필과 깊은 인연을 맺으면서 김광민, ‘사랑과 평화’의 송홍섭과 절친한 사이가 된다. 안타깝게도 조용필의 일본 공연 동행에 필요한 학교의 허가를 받지 못해 합류 2개월 만에 탈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가수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조용필은 그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 덕분에 1984년 11월 일본에서 발매된 조용필의 ‘아시아의 불꽃’ 앨범에 이 가수가 작곡, 작사한 2개의 곡을 받게 되었다. 조용필 본인도 이 노래를 받고 너무 좋았다며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86년에 제대한 그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 덕분에 대중음악계의 소중한 인연들을 하나둘씩 마들어 나가게 된다. 그렇게 밴드 활동을 하다가 탈퇴한 그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직접 만들고자 돈 800만 원을 들려 자신이 모든 곡의 작곡 작사, 편곡을 한 솔로 앨범을 내놓게 되고 1987년 8월 전실이 된 이 앨범을 내놓게 된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수 1명이 모든 악기를 다루고 혼자서 편곡, 컵세까지 해내는 건 쉽지 않았는데, 이 가수는 이것을 호자서 다 한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데뷔 1집 앨범은 그의 열정과 천재성이 모두 집약된 의미 있는 앨범이었다. 물론 일부 오케스트라 반주와 배경음은 후배, 지인들을 섭외해 완료했다.
그 과정에서 대중가요를 접해 당황해하는 클래식 후배와 지인들을 다독이며 앨범 작업을 진행했는데, 앨범 작업을 예술 작품을 만들듯이 정성스럽게 임하는 자세 덕분에 당시 대중음악을 금기시한 클래식 음악계의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꾸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이 가수를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 앨범이 발표되었지만, 당시의 평단은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한 이 가수의 앨범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고, 그저 특이한 앨범으로만 치부했다. 그리고 당시 방송국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 사전 테스트를 받았는데, 이 가수는 번번하게 가창력 미달이라는 이유로 탈락해 방송 출연에 제약이 있었다. 게다가 클래식 전공자가 대중음악을 했다는 이유로 일부 음악인들에게 조롱과 비판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앨범을 내놓은지 얼마안돼 1987년 10월 31일 지인을 만나 술 한잔하고 돌아오던 이 가수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로 꽃다운 나이였다. 그의 죽음에 여러 음악인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고, 뒤늦게야 그의 앨범을 듣고 열광하던 대중들은 그의 별세 소식에 큰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가 내놓은 데뷔 1집 앨범은 새로운 음악을 원하던 대중과 뮤지션들에 큰 방향을 불러왔고, 90년대와 2000년 현재 활동 중인 케이팝 뮤지션들과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한국 대중 음악의 전설이자 교과서와 같은 앨범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성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건 가요제가 매년 열리게 되었다. 이 전설의 가수와 그의 데뷔 앨범은 바로…
유재하이며 그 전설의 앨범은 ‘사랑하기 때문에’이다.
여담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 DJ 이문세는 평소 유재하의 음악을 좋아했고 그를 친동생처럼 아꼈는데, 그의 별세 소식을 청취자들에게 전할때 울면서 전했다고 한다. 유재하는 이문세에게 1집과 3집에 수록된 ‘그대 내품에’,’그대와 영원히’ 두곡을 마들어 준 인연도 있었고, 유재하 데뷔 앨범의 ‘지난 날’에서 코러스로 참여할 정도로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유재하의 노래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통해 많이 알려졌고, 당시 청취자들에게 큰 인기를 구가하며 장기간 1위를 달렸다고 한다.
현시대의 평론가들은 유재하를
발라드의 기준이 된 천재 뮤지션”
이라고 평가하며 한국형 발라드의 문을 연 선구자 중 한명으로 평가하며 그에게 존경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고있다. 심지어 조용필, 김현식 등 거장들도 그를 인정하며 일찍 세상을 떠난 그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1집 앨범은 영원히 우리의 음악이 되어 현재도 많은 세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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