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암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연령대나 성별만의 질병이 아니다. 실제로 국내 암 발생 통계에서 대장암은 폐암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며, 특히 40대 이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장암의 위험 원인으로 밀가루, 과자, 라면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더 위험한 식품은 따로 있다.
바로 적색육과 가공육이다. 익숙한 맛,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먹는 고기류가 대장암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여러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되어 왔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고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조리 방식과 가공 처리, 그리고 장내 대사 작용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밀가루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할 적색육·가공육이 대장암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과학적인 메커니즘과 함께 살펴보자.

적색육 속 ‘헴철’은 발암 촉진 물질로 작용할 수 있다
적색육에는 동물성 철분인 ‘헴철(heme iron)’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헴철은 일반 철분보다 흡수율이 높아 철 결핍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장내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작용한다. 헴철은 장 속에서 자유 라디칼을 생성하고, 이로 인해 장 점막 세포가 산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반복적인 산화 손상은 세포 돌연변이와 DNA 손상을 유발해 발암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또한 헴철은 장 내에서 니트로소화합물(N-nitroso compound) 생성을 촉진하는데, 이 화합물은 인체 발암물질로 분류되며, 대장 내 상피세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변이 세포의 증식을 촉진시킨다. 이처럼 적색육은 단순한 고단백 식품이 아니라, 과량 섭취할 경우 장 점막을 반복적으로 자극하는 고위험 식품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공육 속 ‘아질산나트륨’은 직결된 발암물질이다
햄, 소시지, 베이컨 등 가공육에는 보존료와 색소 안정제의 역할로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간다. 문제는 이 성분이 위장이나 대장 내에서 단백질 분해산물과 결합해 니트로사민(N-nitrosamine)이라는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로 공식 지정했으며, 그 기준은 담배나 석면과 동일한 등급이다.
아질산나트륨이 직접 발암 작용을 한다기보다는, 체내에서 생성되는 니트로사민이 유전자 손상을 유도하고, 특히 장 점막의 세포 재생을 비정상적으로 유도하며 종양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이 성분은 열을 가해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조리법으로도 위험을 없앨 수 없다. 특히 어린이 간식, 캠핑 음식, 아침 식사 대용으로 흔히 섭취되는 소시지, 베이컨 등은 장기 섭취 시 대장암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고온 조리된 고기에서 생성되는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과 ‘PAH’
육류를 굽거나 튀기는 방식은 음식의 풍미를 높이지만 동시에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조건이 된다. 200℃ 이상의 고온에서 단백질이 분해되면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이라는 화합물이 생성된다. 이 물질은 실험동물에서 높은 발암률을 보였으며, 특히 장기에서의 돌연변이 유발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직화구이나 훈연 과정에서 지방이 불에 떨어져 연기로 올라올 때 생기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는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다. 이런 물질이 고기의 표면에 다시 흡착되며, 섭취 시 대장으로 전달되어 장 점막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고기 자체가 아닌 조리 방식에서부터 위험 요인이 생성되는 셈이다. 실제로 구운 고기를 자주 먹는 식습관은 대장암 뿐 아니라 췌장암, 위암의 위험률도 함께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내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이 발암 환경을 조성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적색육과 가공육이 대장암 위험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육류 섭취가 많아질수록 장내 유익균보다 유해균이 증가하고, 이들이 단백질 발효과정에서 독성 대사산물을 생성해 장내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특히 비피더스균과 같은 유익균은 식물성 섬유를 기반으로 증식하는 반면, 단백질 분해를 통해 증식하는 박테로이데스균 같은 일부 유해균은 장 점막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며, 만성적인 염증 반응을 촉진한다. 이는 대장 내 미세환경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만들고, 장기적으로 암세포가 자라기 쉬운 조건을 형성한다.

밀가루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면역 회피’ 없이 장기 누적되기 때문
밀가루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하지만 밀가루는 대부분 일시적인 위장 트러블이나 혈당 급등 문제와 관련되고, 직접적인 발암물질은 포함하지 않는다. 반면 적색육과 가공육은 면역 체계가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해서 섭취되면서도 장기적으로 DNA에 손상을 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즉,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조용히 세포 변이를 축적시키는 특성이 있으며, 초기에는 전혀 자각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밀가루로 인한 트러블은 비교적 빠르게 인지되지만, 적색육과 가공육의 문제는 대개 내시경 검사나 조직검사를 통해서야 드러난다. 그래서 더 위험하고,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대장암을 막기 위해선 고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부터
물론 고기를 아예 끊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백질은 체내 필수 영양소이며, 육류는 철분, 비타민B12 등 특정 영양소의 중요한 공급원이다. 하지만 적색육을 매일 먹거나, 가공육을 습관처럼 간식으로 섭취한다면 위험성을 자초하는 셈이 된다. 일주일에 2~3회 이하로 제한하고, 조리 시 굽거나 튀기기보다 삶거나 찌는 방식을 택하며, 동시에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곁들여 먹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대장암은 무증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전에 식습관으로 차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이다. 대장 내시경도 중요하지만, 매일 접하는 음식의 선택이 더 근본적인 예방법이 될 수 있다. 오늘 저녁 식단부터 한번 돌아보자. 건강은 무엇을 먹지 않느냐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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