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과일을 먹으며 “이건 천연당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해본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특히 건강을 위해 단순당 섭취를 줄이고 설탕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과일 속 당은 괜찮다’는 인식은 꽤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의학·영양학 연구에서는 과일 속 당, 그중에서도 ‘과당(Fructose)’이 간 건강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과당이 단순히 체중 증가나 비만을 유발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제 간 내 지방 축적과 염증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는 간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촉진시켜 간암 발생 위험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포도당보다도 간에 더 치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쯤 되면 단순히 ‘과일이 좋다’는 인식을 넘어, ‘과당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시점이다.
첫 번째 – 과당은 오직 간에서만 대사된다, 이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과당은 포도당과 달리, 체내에서 대부분 간에서만 대사되는 구조를 가진다. 섭취된 과당은 간세포로 바로 흡수돼 중성지방 합성 경로에 사용되며, 지방산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이때 과량의 과당이 들어오면 간세포는 지방합성 효소를 과활성화시키고, 동시에 인슐린 저항성을 유도해 간 내 지방 축적을 가속화한다. 이것이 ‘비알코올성 지방간(NAFLD)’의 주요 원인이 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진다. 간 내 지방이 쌓이면 단순히 지방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방산의 산화 과정에서 다량의 활성산소(ROS)가 생성되고, 이 산화 스트레스가 만성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장기적으로 이런 만성 염증 환경은 간세포의 DNA를 손상시키고, 세포 사멸과 동시에 돌연변이 유전자가 축적되는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즉, 과당은 간암세포를 ‘직접 만들진 않더라도’, 그 씨앗이 자라기 좋은 땅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두 번째 – 과당 섭취량이 많을수록 간암 발생률도 비례해 높아진다
미국 뉴욕대 의과대학과 텍사스 MD앤더슨 암센터가 공동 진행한 역학조사에서는 과일 및 과당 섭취량이 높은 군에서 간암 발생률이 유의하게 높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하루 50g 이상의 과당을 섭취한 사람들은 간암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는 단순히 설탕이 첨가된 가공식품뿐 아니라, ‘신선한 과일’을 포함한 것이다.
대표적인 고과당 과일로는 포도, 바나나, 망고, 체리, 무화과, 수박, 대추 등이 있다. 한 끼에 이들 과일을 23가지 이상 섞어 과일 샐러드를 먹는 경우, 실제 과당 섭취량은 4060g에 이르기도 한다. 특히 공복 상태에서 고과당 과일을 섭취하면 혈중 인슐린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간 내 대사 흐름을 더욱 강하게 자극한다.
과일 속 과당이라고 해서 ‘자연적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인식은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 인체는 ‘과당이 천연이냐 인공이냐’를 구분하지 않는다. 간세포 입장에서 과당은 그저 대사해야 할 독립된 당류일 뿐이며, 지나치게 많으면 간을 손상시키는 ‘대사성 자극제’로 작용할 뿐이다.
세 번째 – 간은 침묵한다, 증상 없이 파괴가 진행된다
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무증상’이라는 점이다. 간세포가 상당히 손상되거나 염증이 만성화되기 전까지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당 섭취로 인한 간 내 변화도 대부분은 수년 동안 아무런 경고 없이 진행된다. 특히 과당에 의한 지방간은 혈액검사에서 AST·ALT 수치가 정상이더라도 진행될 수 있으며, 조기 진단이 어렵다.
일부 연구에서는 과당 섭취가 많을수록 간 내 미세 염증 반응이 자주 발생하고, 이로 인해 간세포 복제 리듬이 교란되면서 비정상적 증식 신호가 증가한다고 보고한다. 간암은 단 한 번의 세포 돌연변이로 생기지 않는다. 반복적인 손상, 복구, 산화 스트레스가 겹쳐지는 과정에서 세포 복제 오류가 누적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과당은 이 복잡한 ‘간암 발생 루프’의 주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네 번째 – 무조건 피할 수 없다면, 과당과 간을 동시에 보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과일은 비타민, 식이섬유,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중요한 식품이다. 과당이 간에 부담이 된다고 해서 과일 전체를 피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섭취의 ‘방법’이다.
첫째, 고과당 과일보다는 베리류, 키위, 자몽, 블루베리처럼 과당 함량이 낮고 항산화 성분이 높은 과일 위주로 구성해야 한다.
둘째, 공복에 단독으로 과일을 대량 섭취하지 말고, 단백질이나 식이섬유와 함께 소량씩 나누어 먹는 방식으로 혈당과 인슐린 반응을 안정시켜야 한다.
셋째, 간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항산화력이 강한 채소류, 예를 들어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마늘, 적양파 등을 함께 섭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간은 복합적인 영양소 조합 속에서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과당은 단순한 당이 아니다, 간에 작용하는 생리적 자극물이다
과일은 자연에서 온 식품이지만, 현대인의 식습관은 이미 ‘과잉 섭취’의 환경에 놓여 있다. 주스, 스무디, 디저트, 건강 간식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과일 몇 개를 가볍게 먹는 건 이제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습관이 수년간 누적되면, 간세포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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