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수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를 두고 ‘우울한 사회가 됐다’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정신건강의학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긍정적인 변화로도 볼 수 있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이 조금씩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에 맞춰, 봄 시즌에 흔히 찾아오는 ‘봄철 우울증’, ‘계절성 우울증’에 대해 알아본다.
우울증,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르다
우울증의 확산으로 “사회 전체가 우울해졌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이를 ‘정신력 문제’라는 식으로 폄하하거나, “너만 우울증이 있는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적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비롯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유병률은 보통 3~5%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 등 일반적으로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나라의 경우 성인 인구의 5~7%가 우울증을 겪는다는 보고도 있다.
물론, 통계적으로 나타나는 수치만 보고 “선진국이 우울증 사례가 더 많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높은 국가들은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은 경우가 많다. 또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의료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진단 건수부터 치료 사례가 더 많이 집계되는 경향도 있다.
이는 즉, 통계 수치가 낮다고 해서 정신건강 문제가 덜하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의 우울증 유병률이 2%라는 것은 전 세계 평균이나 선진국 통계에 비해 낮은 수치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식이 ‘개선 중’이라는 점, 주위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병원 방문을 꺼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계절성 우울증과 스프링 피크
흔히 전 세계적인 문제로 비만이나 대사성 질환, 기타 주요 질환의 증가를 꼽는다. 물론 이들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돼 온 정신건강 문제야말로 공중보건상 시급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슈라 할 수 있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변덕을 부리던 날씨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본격적으로 봄이 찾아옴과 함께, 정신건강 문제도 다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봄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로 꼽혀, 이른바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말까지 통용되고 있다.
스프링 피크라는 말은 봄철 우울증 등의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특히 봄에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울증 외에도 사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에서 특히 자주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각각 3월, 4월, 5월이었다. 이는 계절성 우울증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조기 개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전문가들은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증상도 지나치지 않고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봄에 찾아오는 계절성 우울증
흔히 우울증은 일조량이 감소하는 겨울철에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기온이 낮아지고 해가 짧아지면서 생체 리듬이 바뀌고 세로토닌 생산량이 감소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절성 정서 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는 겨울에 주로 나타나고 여름에는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조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기온이 상승하는 시점에도 계절성 장애로 ‘봄철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일조량 변화와 그로 인한 호르몬 변화, 또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꼽힌다. 예를 들면, 낮은 일조량에 맞춰져 있던 생체 리듬이 변화를 맞이하면서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아라 교수는 “봄은 입학, 취업 등 새로운 시작이 많은 계절로 심리적 부담과 압박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특히, 계절의 변화로 인한 일조량 증가는 기분과 수면을 조절하는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균형을 깨뜨려 감정 기복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4~5월에 많이 나타나는 ‘춘곤증(Spring Fatigue)’ 역시 추웠던 날씨와 짧았던 일조 시간이 크게 변하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환경적 변화에 몸이 적응하기 위해 조절 작용을 거치며 일시적으로 피로감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기분이 저하되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분 저하와 무기력, 봄철 우울증 신호일 수도
춘곤증 자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지만, 그 영향이 너무 장기간 지속된다면 봄철 우울증의 신호로 볼 수도 있다. 주요 증상으로는 △기분 변화 △무기력감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등이 꼽힌다.
특히 봄철에 흔히 발생하는 알레르기와 겹칠 경우 이러한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평소보다 쉽게 지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불안감을 느끼거나 슬픈 감정이 밀려오면 흔히 ‘봄을 탄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증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느냐’다.
이아라 교수는 “계절성 우울장애는 특정 시기에 우울감이 몰려왔다가 자연 호전되기도 하지만, 증상이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된다면 만성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아라 교수는 또한,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는 햇볕을 자주 쬐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자연광을 통해 세로토닌을 충분히 생성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밤 시간대에 멜라토닌으로의 전환도 원활해질 수 있다.
멜라토닌은 수면과 회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멜라토닌 문제로 인한 수면 장애는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더디게 하고, 그로 인해 피로가 반복 누적되게 만들어 계절성 우울증을 심화시킬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봄철 자살률, 20% 이상 높아
종일 우울감이 지속되면 일상생활은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피로감 같은 신체적 문제부터 의욕 상실, 집중력 저하와 같은 정신적 문제가 겹치게 되므로, 학업, 직장생활 등 일상 유지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아효능감이 떨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나 혐오, 타인에 대한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이 누적될 수 있다.
이럴 때 주위에서 자살사고에 관련된 소식이 거듭되면 더욱 위험하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살 통계연보에 따르면, 봄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2021년부터 3년간 월별 자살사망자 수 데이터를 봤을 때, 봄(3~5월)이 겨울(12~2월)보다 20% 가량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이아라 교수는 “봄철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활동량 증가에 따른 심리적 피로, 사회적 기대감, 외로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심한 우울장애 환자는 일상의 작은 변화에도 감정이 급격히 요동치고 심한 절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생체리듬이 흔들리는 봄철에는 주변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확진 전 초기 치료, 높은 예방 효과 보여
지난 11월, 호주 퀸즐랜드 대학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과 WHO 소속 연구진이 참여한 ‘정신건강 문제 관리를 위한 글로벌 접근성 평가’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204개 국가를 대상으로 지역별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약 9%만이 주요 우울장애에 대해 최소한의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한 바 있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건강 문제로 초기에 치료를 받는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하는 ‘초기’는 WHO가 권고한 3개월 이내를 말한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는 초기 개입 및 치료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올해 1월 독일 뮌헨 공과대학 심리학 연구팀이 내놓은 메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상 기준으로 우울증을 확진받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경우, 약 42%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울증 치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울증 치료, 적극적인 태도 중요
효과적인 우울증 개선을 위해서는 약물 치료, 심리 치료, 인지행동 치료 등에 적극 참여하고 전문 의료진의 치료 계획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급성기에는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주의할 점은, 치료 초기에 증상이 호전됐다고 자의적으로 약물 복용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재발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아라 교수는 “우울증은 재발할수록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어 무엇보다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신뢰하고, 치료 계획을 성실히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우울증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치료 후에는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믿는 것이 치료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적극적인 태도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때그때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며, 이는 특히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대목이다.
일기를 쓴다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솔직한 대화를 거듭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때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닌, 공감하려는 자세다. 가타부타 판단하려 하지 말고,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공감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뜻한 관심과 지지는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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