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호흡은 일상에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꼽힌다. 호흡을 깊게 유지함으로써 폐 아래쪽까지 활용해 호흡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신체 이완을 담당하는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시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원리다.
이처럼 호흡은 그 자체로 신체 회복을 촉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흡법의 일종인 ‘순환 호흡법(Circular Breathing)’을 통해 약물을 쓰지 않고도 의식 상태를 변화시키고 정신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
순환 호흡법과 정신건강
‘순환 호흡법’은 입으로 공기를 내보내는 동시에, 코로 짧게 공기를 들이마시는 호흡법을 말한다. 일반적인 호흡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들숨과 날숨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동시에 일어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호흡 자체에 고도의 집중력과 조절력을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요가에서 호흡에 집중하는 수련법인 ‘프라나야마(Pranayama)’와 비유되기도 한다.
순환 호흡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적 호흡과 다른 방법인 만큼, 별도의 연습과 숙련이 필요한 호흡법에 속한다. 다만, 그렇게 드물거나 특별한 방법은 아니다. 전문 악기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순환 호흡의 원리를 활용한 호흡법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독일 에른스트 스트링만 신경과학 연구소(ESI)와 독일 베를린의 MIND 재단 연구팀은 순환 호흡법과 정신건강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순환 호흡법을 통해 각종 정신건강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순환 호흡법이 기존 정신건강 문제 치료법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경우, 먼저 전문의 진단에 따라 약물을 처방하고, 그 효과에 따라 약물을 바꾸거나 투여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상에 따라 다소 부작용이 따를 수 있는 약물이 사용되기도 한다. 일부 약물은 승인이 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표준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않은 경우는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연구팀은 순환 호흡법과 정신건강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호흡을 통해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 PTSD와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동시에, 자기 인식과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험 연구를 진행한 결과, 집중적인 호흡을 통해 체내 이산화탄소 수치가 감소하면, 마치 환각성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의식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근거로 삼은 것이다.

약물 치료 못지 않은 효과
연구팀은 순환 호흡법과 정신건강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다양한 호흡법 커뮤니티를 통해 호흡법 숙련자 61명을 모집했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18세~60세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었으며, 평균 연령은 약 33세였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43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은 순환 호흡법의 원리를 활용한 ‘홀로트로픽 호흡법(Holotropic Breathwork)’ 또는 ‘의식적 연결 호흡법(Conscious-Connected Breathing)’을, 나머지 18명은 대조군으로서 평상시 호흡을 실시했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각 참가자들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개인의 주관적 느낌, 그리고 심리적 상태 변화를 표적으로 삼았다. 측정 결과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정신건강 상태 측정에는 공인된 평가 도구인 ‘우울증 증상 목록(QIDS)’과 ‘워릭-에든버러 정신건강 척도(WEMWBS)’를 사용했다. 심리상태 평가는 호흡 훈련을 시작하기 1주일 전, 그리고 훈련을 마친 후 1주일 후에 시행했다.
연구 결과, 순환 호흡법 원리에 따라 호흡 훈련을 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우울 증상이 감소하고, 심리적 안정감이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 또한, 약물 치료 효과를 연구한 내용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즉, 약물을 쓰지 않고도 긍정적인 의식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의미이며, 순환 호흡법과 정신건강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탐색 연구
한편, 체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도 인상적이었다. 순환 호흡법을 실시한 그룹의 사람들은 일반 호흡을 했던 대조군에 비해, 숨을 내쉴 때 폐 속 이산화탄소 농도(etCO2)가 훨씬 낮게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날숨 시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으면,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 또한 낮은 것으로 본다. 즉, 순환 호흡법이 체내 이산화탄소를 더 효과적으로 배출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평균적인 etCO2 수치는 34.3mmHg 정도인데, 순환 호흡을 실시한 사람들은 최대 16.6mmHg까지 낮게 나타났다.
그 외 지표들을 측정 및 분석한 결과, 순환 호흡 그룹은 교감신경계 활동이 줄어들었으며, 염증 반응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 주관적 느낌상 더 큰 변화를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들은 염증 수치 증가가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을 가리킨다. 기존에 심호흡으로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의도적인 호흡 훈련을 통해 정신건강 측면에서 유익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순환 호흡법이 정신건강 분야에서 약물 치료의 대안으로서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다.
다만, 이번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점이 있다. 네이처 계열의 국제 학술지인 「커뮤니케이션 심리학(Communications Psychology)」에 연구 결과가 등재돼 있긴 하지만, 임상시험 등록기관에 사전 등록하지 않은 탐색 연구(Exploratory Study)라는 점이다. 또한, 참가자 수도 적고 장기적인 결과에 대한 조사도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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