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살아있는데…결혼식에 부모 대행 알바를 쓴 이유”
개그우먼 안소미는 2018년 결혼식에서 부모님 자리에 부모 대행 아르바이트를 앉혔다고 고백했다.
보통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연락이 끊긴 경우에 대행 알바를 쓰는 사례는 있지만, 안소미는 두 분 모두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선택을 했다.
그녀는 “너무 원망이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부모가 있어’라는 느낌으로 알바를 써서 진행했다.
목소리도 듣기 싫고, 만나는 건 더 싫다. 인연이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어린 시절, 부모 이혼과 불우했던 성장기”
안소미는 세 살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게 됐다.
아버지는 일을 해야 했기에 여러 집을 전전했고, 고모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와는 바닷가 앞 봉고차에서 살며 불꽃놀이 폭죽을 팔아 돈을 모아 컨테이너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10살이 돼서야 겨우 들어갔고, 형편이 어려워 동사무소에서 쌀과 라면을 받으러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고백했다.

“가족 없는 아이로 놀림, 외로움과 상처”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엄마의 사진조차 본 적이 없었다.
“보통의 가족이라 말하는 환경에서 크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나만 엄마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있더라”고 회상했다.
이런 아픈 성장기 때문에 안소미는 결혼식에서조차 부모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대행 알바를 쓰며 “나도 부모가 있다”는 외형만이라도 갖추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남편과 시댁, 진짜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해준 사람들”
안소미는 남편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가족의 의미를 깨달았다.
남편과는 사귄 지 3일 만에 동거를 시작했고, 시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의 짐을 싸서 안소미 곁으로 보내며 “이 친구를 더 안아주고 더 사랑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부모님은 안소미를 진짜 딸처럼 아끼고, 남편 역시 “장인 장모님이 계셨다면 같이 살 수도 있다.
그만큼 좋아한다”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새로운 도전”
안소미는 결혼 후 딸과 아들을 낳았고, 출산 후 빠른 복귀를 하며 아이를 등에 업고 ‘개그콘서트’ 무대에 서기도 했다.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남편이 회사를 퇴직하고 육아를 전담하며,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후 트로트 가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스트롯’에 도전, 2021년 ‘그대라는 한 사람’, 2025년 ‘사랑의 컬러링’ 등 트로트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의 가족이 처음 경험하는 가족, 그리고 진짜 행복”
안소미는 “지금의 가족이 내게 처음 경험하는 가족이라 엄청 소중하다”며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
남편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고백했다.
시어머니 역시 “친정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더 많이 사랑하고 안아주고 있다”고 밝혀, 안소미의 상처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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