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현장에는 네덜란드 방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로 알려진 네덜란드가 한국 방산업계에 눈길을 돌린 배경은 단순한 관심 그 이상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전역은 방위 체계를 재정비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으며, 네덜란드도 이를 피해가지 않았다. 특히 NATO 기준인 GDP 대비 2% 방위비 지출을 올해 달성하면서 약 32조 원의 대규모 국방예산을 확보했다.
이 막대한 예산을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방산업계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유럽 내부만으로는 수요를 맞추기 어렵고, 미국 무기는 지나치게 고가이자 납기 지연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기 쇼핑’ 나선 네덜란드, 한국에서 답을 찾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방산협력 세미나는 단순한 외교적 친선행사가 아니었다. 네덜란드 방산산업연합회(NIDV), 응용과학연구소(TNO), VSE, 로빈 레이더 등 8곳의 핵심 기관과 기업이 직접 참여한 철저한 비즈니스 미팅의 성격이 강했다. 루벤 브레켈만스 네덜란드 국방장관이 방한 당시 언급한 “한국은 고품질 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평가가 그들의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K-방산이 제공하는 ‘합리적 가격’과 ‘빠른 납기’는 네덜란드 방산 당국의 고민을 해결해줄 열쇠로 주목받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무기 소모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신속한 무기 보충이 절실했기 때문에, 한국의 안정적 생산 능력은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HD현대 무인항공모함 앞에 선 네덜란드 대표단
MADEX 현장에서 네덜란드 사절단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HD현대중공업의 부스였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한국이 개발 중인 무인항공모함과 관련 기술이었다. 인구 1,700만 명의 중소국가인 네덜란드에게 대규모 인력 중심의 전통 방산 모델은 한계가 분명했다. 이를 보완할 방법으로 무인 전투체계와 무인함정, 무인기술이 최적의 해법으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은 이미 해상 무인 시스템 기술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경쟁력을 갖췄다. 해양 강국 네덜란드에게 한국의 무인항공모함은 적은 병력으로 강력한 해상 방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솔루션으로 비춰졌다.
네덜란드 32조 방산 예산, K-방산에 기회 열리나
네덜란드의 올해 국방예산 220억 유로(약 32조 원)는 단순히 숫자가 큰 예산이 아니다. 향후 5~10년간 방산 전략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재원이다. 이 예산이 어느 국가의 무기 체계에 투입되느냐에 따라 유럽 방산 시장의 흐름도 크게 바뀔 수 있다. 이번 MADEX에서 네덜란드 대표단은 다연장로켓, 보병전투차량, 어뢰, 첨단 레이더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천무 다연장로켓은 이미 폴란드에 수출되어 그 성능을 입증한 만큼, 네덜란드의 차세대 포병 전력 강화를 위한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가성비, 생산속도, 신뢰성을 모두 갖춘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네덜란드 방산 협력,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
네덜란드와의 협력은 단순히 한 건의 무기 수출로 끝나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과 NATO 내에서 전략적 발언권이 높은 국가로, 이들의 선택은 다른 유럽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네덜란드는 방산기술 협력을 중시하는 국가로, 한국과의 공동 개발 및 기술 이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완제품 수출을 넘어 K-방산의 유럽 진출에 실질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레이더, 센서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기술과 한국의 생산 및 개발 역량이 결합된다면, 유럽 시장에서 새로운 방산 패러다임이 열릴 수 있다. 방산 전문가들은 네덜란드가 유럽의 K-방산 확산을 이끄는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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