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삶의 목적’을 갖는 것이 뇌 건강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인지심리학자 안젤리나 수틴 박사는 “우리가 검토한 모든 연구 결과에서, 목적을 느끼는 것이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추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아리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삶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면 머리를 쓸 일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뇌 기능에 퇴행이 발생할 위험도 더 커질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목적이 있고 없고가 뇌 건강과 정말 관련이 있느냐’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삶의 목적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는 쪽이 더 필요해보인다.
‘목적’이란, 매우 장기적인 것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19세기에 활동했던 미국의 시인 랄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삶의 목적에 대해 “유용하고, 존경받으며, 자비로운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뭐랄까, 정말 시인답게 대답했다는 느낌이다.
수틴 박사는 “미래지향적이며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에머슨의 답변에 비해 좀 더 수월하게 와닿는 대답이다. 즉, ‘삶의 목적’이란, ‘장기적 의도’를 내포한다. 오늘, 이번 주, 이번 달에 해야할 일은 대개 ‘목표’라 표현한다. 심지어 1년치 계획을 세울 때도 ‘올해 목표’라고 하지 ‘올해 목적’이라고는 잘 쓰지 않는다.
생각보다 거창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면 삶의 목적이란 대체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수틴 박사는 “이웃에게 아름다운 공간이 돼 주기 위해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소박한 목적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여기서 ‘삶의 목표’와 ‘삶의 목적’을 구분하는 포인트를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목표는 대개 짧고 단발성의 느낌을 갖는다. 올해 안으로 꼭 10kg 감량을 성공하겠다든지, 이번 달에는 최소 15번 이상 하루 1시간씩 운동을 하겠다든지 하는 식이다. 같은 목표를 여러 번 반복할 수는 있지만, 어쨌거나 한 번 실행하고 나면 곧장 달성했는지 아닌지 여부가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목적은 더 길고 지속성을 지닌다. 앞서 예로 제시한 ‘정원을 가꾸는 일’을 살펴보자. 목표로 한 정원의 상태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보기에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모호한 목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정원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며 관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 뇌 건강 덜해
수틴 박사의 연구팀은 15만 명 이상의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삶을 의미 있게 느낀다’라고 답한 사람들의 치매 발병률이 35% 가량 낮게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규칙적으로 적당한 운동을 했을 때의 치매 위험 감소와 비슷한 효과다.
2022년 수행된 리뷰 연구에서는 유사한 주제로 진행했던 32개국의 연구를 종합해 메타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의미와 목적이 인간의 뇌를 예리한 상태로 유지한다’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는 경향을 보였고, 기억력과 언어 능력 테스트에서도 전반적으로 좋은 성적을 보였다.
올해 위스콘신 대학에서 수행된 한 연구에서는 ‘확산 MRI(Diffusion MRI)’라는 이미징 기법을 사용해 48세~95세 사이 연령대의 성인 100명 이상의 뇌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딱히 삶의 목적이 없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은 뇌세포 단위에서 차이를 보이며, 이들의 뇌는 상대적으로 덜 건강하다는 점을 발견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목적’이라는 장기적 사고가 뇌를 활성화시켜
‘삶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것, 삶의 목적과 뇌 건강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설명이 된 듯하다. 다음으로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은 둘 사이의 ‘인과관계’다. 즉, 삶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치매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인지, 뇌 기능 퇴행이 진행되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미국 애틀란타 에모리 대학의 사회행동 연구원인 에밀리 미로즈 박사는 “두 가지 모두 타당성이 있다”라고 답했다. 목적과 뇌 퇴행이 상호 피드백 관계에 있다는 설명이다. 목적이 부족하면 인지기능이 저하될 수 있고, 인지기능이 저하되면 자신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라기보다는, 어느 쪽이든 시작하면 순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틴 박사는 “삶의 목적은 뇌를 활동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하는 것,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목표를 계속 잘게 쪼개 지금 바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 이 모든 과정에 뇌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올해 발표된 한 연구에서 수틴 박사의 연구팀은 300명 가량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실험을 위한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스마트폰은 하루에 몇 번씩 사용자에게 ‘목적의식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메시지로 던졌다. 그리고나서 간단한 인지 테스트를 실시하도록 유도했다.
연구 결과, 자원봉사자들은 ‘목적의식이 더 뚜렷하다’라고 느낄 때 인지 능력이 더 활발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삶에서 강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의 스트레스에도 더 잘 견디는 경향을 보인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잠시 쉬고 나면 곧 목적의식을 떠올릴 수 있게 되고, 다시 회복돼 일어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당신의 삶에는 ‘목적’이 분명히 자리잡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목적을 바로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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