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활동이 중요하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사회적 또는 정신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활동은 기억력과 사고 능력에 도움이 된다. 보통은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인식이 있다. 물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뇌를 자극하는 데 있어 매우 좋은 활동이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하는 활동 역시도 인지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게다가,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활동들을 살펴보면,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보다는 자리에 앉거나 편안한 자세로 하는 활동이 더욱 다양하다. 독서부터 OTT 시청, 게임, 대화 등의 활동은 실제로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 비중도 높다.
이들 중 어떤 것들은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고, 어떤 것들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면, 집에서라도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수동적 받아들임에 대한 경계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영위하는 실내활동으로는 TV 및 OTT 콘텐츠 시청, 독서, 게임이 가장 흔하다. 이외에 요리나 홈 베이킹, 혹은 위빙(weaving)과 같이 뭔가를 만드는 활동도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TV 및 OTT 콘텐츠 시청은 본래 정보 습득, 그리고 상상력과 창의력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인지 기능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 높은 시청률을 갖고 있거나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는 콘텐츠인 경우, 그 자체로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대화 역시 인지 기능을 활발하게 사용하도록 해주는 좋은 활동이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자. TV와 OTT 콘텐츠 시청이 정말 ‘정보 습득’과 ‘상상력 자극’이라는 긍정적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그 본연의 기능을 십분 활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콘텐츠에 몰입해 즐기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는 비유하자면 똑같은 수업을 듣더라도 학생마다 성적이 다르게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
아주 오래 전에 TV를 가리켜 지칭하던 ‘바보상자’라는 말이 있었다. TV에서 보여주는 시간표대로 몰입하다보면 뇌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붙은 말이다. 요즘은 그리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그 말에 담긴 본질만큼은 여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는 TV였지만 이제는 각종 동영상 플랫폼이나 OTT 서비스로 옮겨갔을 뿐이다.
독서는 좋은 것? 맹신은 금물
독서는 인지 기능 발달 면에서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활동이다. 본래 책은 텍스트 위주로 구성된 미디어이므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저자가 말하는 맥락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앞에서 했던 내용들을 기억해둘 필요도 있으므로 기억력도 활발하게 사용된다. 또한, 저자의 의견에 해당하는 내용의 경우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능력도 길러질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좋은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 역시 상황에 따라서는 인지 기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대표적인 현상 한 가지로, ‘권수에 대한 집착’이 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다’라는 자아성취감이나 주위의 인정에 목마른 경우,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그냥 ‘읽고 넘기는’ 형태가 될 우려가 있다.
또는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그냥 슥슥 넘기는 방식으로 읽는 경우도 있다. 이는 TV 프로그램이나 동영상을 멍하니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뇌 상태를 만들 우려가 있다. 그냥 읽고 넘기는 것과 깊은 생각 없이 읽기만 하는 행위를 반복하면 독서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것은 물론, 오히려 인지 기능의 역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책이라는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느리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전자책이 활성화된 요즘은 좀 나아졌다지만, 기본적으로 책은 사회의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다른 미디어에 비해 느린 편이다. 즉,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자칫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도태되거나 사회 변화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게임
게임은 그야말로 많은 논란을 몰고 다니는 미디어다. 만약 누군가 ‘게임이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묻는다면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흔히 게임이라고 부르는 울타리 안에는 수많은 세부 카테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게임은 일반적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혹은 가정용 콘솔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비디오 게임을 가리킨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비디오 게임을 염두에 두고 그 인지 기능 영향을 이야기하기로 한다.
비디오 게임이라고 해도 수많은 장르(Genre)에 따라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특성을 추려낼 수는 있다. 게임만이 갖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특성이라 하면 ‘상호작용성(Interactive)’이다.
주어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TV, 영화, 드라마, 책과는 달리, 게임은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받는다. 배경과 규칙 등을 빠르게 이해하고 각 상황에 맞는 조작을 하는 과정에서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복잡한 상황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 종류의 게임도 마찬가지다.
성장 요소가 존재하는 게임이라면,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더 좋은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에 맞춰 새롭게 배운 것들에 적응해야 하고, 그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매번 달라지는 상황에 맞춘 인지적 적응 과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장점 덕분에 게임은 충분히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날카로운 감각 자극, 유료 모델의 사행성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심리를 자극하는 형태로 배치된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심리적 요소에 취약한 계층은 부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크든 작든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것을 주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면서 소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다. 그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인지 기능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에 관심이 많다. 수많은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무엇이 인지 기능에 좋다더라, 무엇은 해롭다더라 하는 식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 것도 그만큼 사람들이 인지 기능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미디어(수단)가 아니다. 독서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며, 드라마 시청이나 게임 플레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저마다 즐기는 수많은 취미들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즐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즐기느냐다.
특정 미디어나 취미 수단이 ‘대체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규칙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할 것을 권한다. 그것이야말로 주어진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며, 인지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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