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신라 전설의 요새, 광기로 완성된 불멸의 성벽
“돌로 만든 기적” 신라의 난공불락 요새 전설
대한민국 고대사 속 전설로 남은 신라 성곽 중, 군사 전문가마저 경탄한 ‘불패의 요새’가 존재한다. 이 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니라, 그 당시 동아시아 어느 왕조에서도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석공술, 물리적 설계, 그리고 인간의 집념이 응축된 기념비적 구조물이다.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이 요새는 탁월한 위치 선정, 압도적 석축 방식, 궁극의 치밀함을 동원한 방어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1000만 개의 다듬은 돌, 정교함의 미학
- 성벽에는 자연석이 아니라, 수십 명~수백 명 단위의 장인들이 일일이 표면을 다듬은 돌만을 사용했다.
- 동원된 돌의 수는 무려 약 천만 개 수준에 달한다.
- 인근 산과 골짜기의 돌을 “싹 쓸어” 쓸어올 정도로 자재 동원이 총력적이었으며, 이 덕에 신라식 성벽에는 지역 내 자연석 기둥이나 경계석이 거의 남지 않는다.

밀착 · 정밀 시공
- 돌 하나하나가 틈 없이 맞물려 작은 구멍이나 균열이 발견되지 않는다.
- 오랜 세월 풍화와 지진, 전투까지 겪었음에도 변형이나 무너짐이 거의 없어 ‘인간 기술력의 끝’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성벽의 압도적 스케일과 올-록 구조
- 총둘레 1680m, 높이 13~20m, 성벽 두께(폭)는 7~8m에 달한다.
- 내벽·외벽 사이에는 보통 흙을 채우지만, 이곳은 단 한 주먹의 흙도 없이 모두 ‘정제한 돌’로만 촘촘하게 채웠다.
- 이는 세계 여러 고대성 중에서도 예외적 구조로 꼽힌다.
- 거대한 하중과 외부 충격, 습도와 지진에 독보적으로 강한 내구성을 자랑해 현장 답사한 외국 전문가들도 “신라 건축술은 상상 이상”이라고 평한 바 있다.

천험을 이용한 방어, 지형과 인공의 완벽 결합
성 바깥은 가파른 계곡과 급경사를 활용, 성문이 있는 지정된 진입로 외에는 어떤 경로로도 접근 불가하게 만들었다.
- 서문(주 출입구): 좁고 급한 통로가 바로 성벽에 밀착, 대군이 한 번에 쏟아질 수 없고, 앞에는 옹성(이중 방어벽)이 쌓여 있다.
- 성문 고정 장치: 문이 ‘성 안쪽’으로 열리지 못하도록 내부 고정 및 제한 시스템을 탑재해, 돌파조차 불가능하게 설계.
- 문 돌파시 장애물: 설령 성문을 뚫고 들어온다 해도, 진입과 동시에 거대한 연못이 정면을 막아 선다. 일거에 대규모 침투를 차단하는 ‘최후 방어선’이다.

모든 진입로의 군사적 기지
- 동문: 진입로가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 형태로 꺾이게 설계됐다. 적이 진입하면 성 내부에서 시야와 공격 각도를 유리하게 확보할 수 있다.
- 북문: 두 겹의 (좁고 두꺼운) 석축에 가로막혀 일시 돌파가 어렵다.
- 남문: 성벽에서 5m 이상 띄운 ‘문루’ 형태. 공성장비 없이 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하며, 접근 시 사다리를 타야 할 만큼 구조적 방어가 철저하다.

자급자족 가능한 성, 장기전을 위한 완전한 설계
- 성내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고, 총 6개의 대형 우물(지하수 취수원)이 배치되어 있다.
- 수개월에서 수년까지의 장기 포위전에도 생존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농업과 식수, 기본 공급체계를 내장한 셈이다.

“그 시절로선 불가능” 해외 전문가가 인정한 광기의 건축기술
신라 성곽의 이런 초월적 석축술(정교한 석재정합, 돌로만 채운 내벽, 건식 쌓기), 적진 진입 구조 설계(우회로, 옹성, 연못, 문루), 치밀한 이용조건(자급자족구역, 우물), 지형 활용(계곡·급경사·일직선 접근 불가)은 세계 고대축성사에서 극히 드문 조합이다.
- 합리적 추정에 따르면, 수만 명에 이르는 동원령과 10년 이상 대공사가 필요했으며, 돌 운반과 가공, 현장 조립에만도 현대 기준 수천억 원, 인력 기준 수십만 단위가 소요됐다고 평가된다.
- 현재까지도 완전한 현대식 장비 없이 복원·수선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정밀과 장인의 힘이 결집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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