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한 방울로 암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은 한때 의학계의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은 이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실제로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는 혈액 한 번 채취하는 것만으로도 향후 1~3년 내 발생할 수 있는 암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연구들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단순한 건강검진이 아니라, 발병 전에 위험 징후를 포착해 조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술은 암 진단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핵심은 ‘액체생검’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기존의 암 진단은 대부분 영상 검사나 조직 검사를 통해 진행됐다. 종양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그 형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 조직을 떼어내야 진단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 액체생검(Liquid Biopsy)은 암세포가 혈중으로 내보내는 DNA 조각, 단백질, 엑소좀 등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암세포는 증식 중 자신의 일부 유전물질을 혈액 속으로 방출하는데, 이를 잡아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직 영상에 보이지도 않는 극초기 상태에서도 암의 ‘분자적 흔적’을 포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ctDNA’, 암세포의 유전적 흔적을 추적하다
액체생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순환 종양 DNA(ctDNA, circulating tumor DNA)다. 이는 암세포에서 유래한 유전물질로, 정상 세포의 DNA와는 미세하게 다른 돌연변이를 포함하고 있다.
최신 검사 기술은 이 ctDNA의 변이를 초정밀 시퀀싱 기법으로 분석해, 어떤 장기의 어떤 유형의 암이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병원 연구팀은 이 ctDNA를 통해 폐암, 대장암, 췌장암 등 주요 암의 3년 내 발병 가능성을 8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했다고 발표했다.

‘진단’이 아닌 ‘예측’이라는 점이 핵심
기존의 암 검사는 발견된 종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액체생검은 ‘현재 있는가’보다 ‘곧 생길 가능성이 있는가’를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아직 CT나 MRI로는 아무 이상도 보이지 않지만, ctDNA 상에서 특정 장기에 축적되는 암 유전자 변이가 감지된다면, 그 부위는 향후 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본다. 특히 조기진단이 어려운 췌장암이나 난소암, 식도암에서 이 기술은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임상적 한계도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 기술이 전면적인 건강검진으로 사용되기에는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ctDNA가 극도로 희소한 상태에서는 오탐(false positive)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무조건 암으로 판단할 경우 불필요한 검사나 과잉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현재까지는 암의 위치를 완벽히 특정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조 영상 검사가 여전히 필요하다.
셋째, 모든 암이 ctDNA를 똑같이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암의 종류에 따라 민감도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기술은 기존 검사법으로는 절대 알 수 없던 ‘예고’의 차원을 열었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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