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걷기 시작한 뒤 ‘발끝으로 걷는다’는 이야기를 듣는 부모들이 있다. 처음에는 귀엽고 특이한 습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동작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초기 신호로 본다. 특히 발달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발끝 걷기를 지속하는 경우, 단순한 운동 습관이 아니라 신경 발달, 감각 통합, 사회성 발달의 이상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물론 모든 발끝 보행이 자폐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특정 양상을 보일 경우 조기 평가가 필요하다.

발끝 걷기는 감각 자극에 대한 반응 이상일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감각 처리의 불균형이다. 이들은 빛, 소리, 촉감 등 외부 자극에 대해 과도하게 예민하거나 무반응한 경향을 보이는데, 발끝 보행은 이 감각 이상 중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과 촉각 회피 반응의 표현일 수 있다.
즉,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닿는 감각을 불편하게 느껴 이를 피하고자 발끝만 이용해 걷는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자극을 조절하려는 행위로 해석되기도 한다.

반복적이고 상동적인 행동의 하나일 수 있다
자폐 아동에게서 자주 관찰되는 또 다른 행동 유형은 상동 행동(stereotyped behavior)이다. 이는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손을 흔들거나 제자리에서 뛰는 것과 함께 발끝으로 걷는 것도 대표적이다.
이들은 특정 동작을 반복하면서 불안을 줄이고, 자신에게 익숙한 자극을 경험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발끝 보행이 단기간이 아닌, 몇 주 혹은 몇 개월 이상 반복되고 다른 상동 행동과 함께 나타난다면 자폐 스펙트럼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 기능 발달의 지연 또는 불균형 신호일 수 있다
정상적인 발달을 하는 영유아의 경우 보통 생후 12~18개월 사이에 발 전체를 이용한 걸음으로 전환된다. 초기엔 발끝으로 걷는 모습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균형 감각과 근육 발달이 이루어지며 정상 보행으로 바뀐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 아동은 대근육 운동 발달이 지연되거나, 균형 잡기 및 자세 조절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발끝 보행이 지속되는 경우가 있고, 이를 통해 몸의 중심을 조절하는 데 익숙함을 느끼기도 한다. 단순히 잘 걷는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걷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자폐 아동의 20~40%에서 발끝 보행 관찰
미국 소아신경학회 자료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동의 약 20~40%가 발끝 걷기 행동을 보인다. 물론 이 행동 하나만으로 자폐를 확진할 수는 없지만, 일반 아동에 비해 발끝 보행이 장기화되고, 쉽게 교정되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모의 음성 자극에 대한 반응이 둔하거나, 시선 회피, 또래와의 상호작용 부족 등의 다른 발달 지표와 함께 나타난다면 자폐 평가를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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