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99% 점령한 에스컬레이터”… 한국이 국산화를 재추진한 진짜 이유
수만 대가 중국산인 현실, 국내시장 의존도 ‘99%’까지 올라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4만 대 이상의 에스컬레이터가 전국 지하철역, 백화점, 대형몰, 터미널, 학교, 병원 등 곳곳에서 운행 중이다. 한 해에만 새로 설치되는 에스컬레이터가 1,700대 이상에 달하고, 노후화로 교체 또는 대수리 대상이 된 기계도 연간 8,000대에 육박한다.
계단에 힘 안들이고 오르내리는’ 우리 삶에 뿌리 깊게 들어온 이 기계는, 놀랍게도 대부분 중국산이다. 수치상으론 전국 운행의 99% 이상이 중국 업체 제품이거나, 그곳에서 생산된 핵심 부품이 쓰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실 한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자체 제조 역량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 업체가 대량 생산과 저가 공세로 단가를 급격히 내리면서, 국내 생산업체 대부분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하나둘 사업을 접었다. 기술력을 갖추고도 설치 시장에서 외면받던 국산 브랜드들은 미세한 규격 차이, 설치 경험 부족, 급격한 가격 하락 압력 때문에 도태됐다.

에스컬레이터 국산화 포기, 초래된 불신과 불편
중국산 에스컬레이터가 시장을 독식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부품 수급 지연: 정비나 교체가 필요한 부품을 중국에서 공수하려면 통관, 운송, 로트 단위 대기 등으로 최소 수 주~수개월이 걸렸다. 단일 부품 품절이나 재고 문제로 인해 ‘못 돌리는’ 에스컬레이터가 건물 한복판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 사고·정비 리스크: 표준은 맞지만 미세한 규격 차이, 호환성 부족, 부품 설계단계 변경 등으로 고장이 잦았고, ‘뒷문 개방 미습지’, ‘손 끼임·넘어짐 방지장치 불량’ 등의 사고가 늘었다.
- 기후위기·침수 취약: 특히 침수 등 자연재해로 제어장치, 모터부가 망가지면 부품 도착을 3~6개월 이상 기다려야 했고, 실제로 ‘1년간 멈췄던 에스컬레이터’ 사례도 있었다.
- 해외 의존 안전서낭: 코로나 팬데믹, 중국 현지 생산 차질, 물류 대란 등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따라 도시 전체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국내 중소 정비업체들은 “국가 기간교통 인프라에 쓰이는 ‘생활밀착형 기계’까지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2024년, 드디어 시작된 국산화 프로젝트
이러한 사회적 위기가 누적되자 ‘에스컬레이터 국산화’ 이슈가 전면 부각됐다. 산업부, 국토부, 교통공사 등 정부기관과 대형 건설사, 국내 기계·전자 업체들이 힘을 합쳐 2024년 다시 에스컬레이터 국산화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 2025년 3월, 16년 만에 국산 에스컬레이터 1호기가 공식 출고되는 성과가 나왔다. 이는 국내에선 2009년 마지막 생산 이후 처음으로 국산 신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 2024~2025년, 주요 부품(모터, 제어장치, 안전센서, 프레임 일부 등)은 국내 제조사가 설계 및 양산에 나섰다. 성능시험과 인증도 강화해, 기존 제품 대비 유지보수비 절감·신속 대응이 가능해졌다.
- 2025년 하반기에는 주요 도시 지하철, 대형 공공시설 위주로 ‘국산 1호 에스컬레이터’가 실험배치·도입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제조업계는 향후 3년 내 부품 국산화율 50% 이상 달성, 해외 의존 최소화라는 목표로 기술 개발을 가속 중이다.

왜 지금 국산화인가? 세 가지 전략적 배경
① 국민 안전과 사용자 편의
- 비상상황(침수, 화재, 지진 등) 시 ‘신속 수리’가 곧 재난 피해 저감에 직결된다.
- 손가락 끼임, 급정지, 미끄럼 등 만약의 사소한 고장도 소송, 언론 이슈, 사회 불신으로 번진다.
- 국내 부품망-서비스망 구축 시 즉각 출동·수리 대응 가능, 국민 신뢰도 상승.
② 산업·기계 주권 회복
- 기술·설계, 공정장악→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 확장.
- 수백억 원대 유지·수리 비용의 외화 유출 방지.
- 대형기계산업, 자동화설비, 스마트공장 등 고용·신산업 연계 확장성.
③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분산
- 팬데믹, 지정학 충돌, 물류차질 등 외부충격에도 장기적 설비 안전 보장.
- 동남아, 중동, 개발도상국 인프라 수출 연계… “한국형 에스컬레이터” 해외시장 개척 초석.

국산화 성과와 향후 전망
2025년 기준, 국산 에스컬레이터는 지하철 2호선, 일부 KTX 역사, 전국 주요 신도시 공공시설 등에 시범 설치되어 가동률과 정비 신속성, 내구성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부품 비중도 30%대를 넘어가며, 2028년까지 50% 이상 달성을 목표로 한다.
더불어 “K-에스컬레이터” 브랜드를 앞세워 동남아, 중동 등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한 국가 대상으로 수출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또한 친환경 설계, 에너지 회수 시스템(회전시 전기생산), 사물인터넷(IoT) 기반 원격진단·관제 서비스 등 첨단 스마트화도 병행 추진되고 있다.

“K-에스컬레이터”의 부활, 생활안전과 산업주권의 상징
이처럼 에스컬레이터 시장의 압도적 중국산 점유와 잦은 고장, 부품 수급 대란 등은 우리 삶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24년 국산화 선언과 2025년 1호기 출고는 단순한 품목 국산화를 넘어, “대한민국이 만든 생활 사회안전망”이라는 국가 자부심과, 첨단기계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가 됐다.
앞으로도 국산화율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관련 산업 일자리와 제조생태계도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언제, 어디서든 바로 수리받고 안심하는 에스컬레이터” – 이는 단순 기술만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신뢰·미래를 지키는 ‘K-인프라’의 작지만 큰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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