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8년, 대공황에 멈춘 첫 본사 건립
허스트 타워의 역사는 1920년대 뉴욕 맨해튼 57번가와 8번가 코너에서 시작됐다.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세계적 미디어 그룹 허스트 코퍼레이션의 본사 마천루를 세우기 위해 야심 찬 설계를 의뢰했다. 1928년, 아르데코 양식의 6층 건물이 우선 완공됐으나, 직후 찾아온 대공황으로 인해 초고층 타워 증축 계획은 전면 중단되었다. 이렇게 해서 허스트 빌딩은 6층 기단부만 완성된 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욕 도심 한켠에 남겨지게 됐다.

70년 넘게 방치된 기단부, 랜드마크 지정이 가져온 제약
허스트 빌딩은 독특한 아르데코 외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뉴욕시 랜드마크로 공식 지정된다. 이 조치는 건물을 보호하고 훼손을 방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후 타워 신축이나 리모델링에 있어선 외관과 기단부를 반드시 보존해야 함을 의미했다. 즉, ‘마음대로 부수거나 재개발’할 수 없는 강력한 제약이 따라붙은 것이다.

증축 재추진, ‘건물 속 건물’이라는 혁신적 해법
2000년대 들어 허스트 코퍼레이션은 분산된 사무공간을 통합하고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공사를 재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랜드마크로 지정된 건물 외관을 해체 또는 재철거할 수 없어, 영국의 세계적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현존 건물 내부를 비우고 외관은 남겨둔 채 40층 초고층 유리 타워를 기단 위에 얹는 독특한 설계를 제안한다.
기존 6층 건물은 마치 ‘액자’처럼 남겨두고, 그 내부와 위쪽에 첨단 구조로 신축 타워를 올리는 매우 복잡한 공법이 적용됐다.

9.11 이후 뉴욕의 첫 마천루, 완공 그리고 건축사적 의미
이 프로젝트는 2003년 착공, 약 3년간의 대규모 복원·신축 공정을 거쳐 2006년 마침내 완공되면서, 1928년 첫 계획 발표 후 78년 만에 ‘완성작’이 탄생했다. 허스트 타워는 뉴욕 9.11 테러 이후 들어선 첫 메이저 마천루이기도 하다.
2006년 준공 당시 약 5억 달러의 건설비가 투입됐고, 건물 높이 182m, 46층 규모의 새로운 본사로 거듭났다.

친환경 건축의 상징, 도시 재생의 교과서
허스트 타워는 기존 랜드마크 건물 보존과 친환경 초고층 오피스를 결합한 뉴욕의 대표적 지속가능 건축물이다. 완공 즉시 LEED 골드 인증, 이후 플래티넘으로 상향돼 ‘그린 마천루’의 상징이 됐다. 구 건물에 남아있던 고전 조각과 아르데코 장식도 세심하게 복원돼, 옛 것과 새 것의 공존이라는 도시재생의 교과서로 평가 받는다.
이 과정은 뉴욕 도심에서 대규모 신축이 매우 어렵고 공공의 문화유산 보호가 강력하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현대적 공간 해법을 창조한 사례로 세계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랜드마크 옛 건물+현대 첨단 타워, 뉴욕의 또 다른 명물
허스트 타워는 현재 허스트 계열의 모든 미디어 브랜드(코스모폴리탄, 하퍼스바자, 에스콰이어 등)의 본사로 쓰이고 있다. 기단부의 옛 아르데코 양식과 그 위에 올려진 하이테크 유리 다이아그리드 구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과거와 미래의 공존’을 상징하는 뉴욕의 또 다른 명물이 됐다.

완공까지 78년이 걸린 진짜 이유, 그리고 교훈
- 1928년 첫 계획 후 대공황이라는 세계 경제 위기로 6층만 완공, 수십년간 추가 증축 좌절
- 1988년 랜드마크 지정으로 건물 파괴·철거가 법적으로 불가능해져, 신축은 내부만 비우는 방식으로 전환
- 2000년대 들어 건축 기술 혁신, 경제적·문화적 환경 변화로 새로운 증축 가능성 열림
-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도시 재생+혁신 건축’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음
2025년 기준, 허스트 타워는 완공까지 78년이란 기록적인 시간이 걸린 뉴욕의 상징적 건물이다.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내, 기술과 예술의 조화, 그리고 도심 랜드마크 활용의 교훈을 함께 담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