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은 해독과 대사, 호르몬 처리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중요한 장기이며, 특히 일정한 생체 리듬을 따라 작동한다.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간경 시간’이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라는 개념이 실제 생리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간은 이 시간대에 혈액을 걸러 노폐물을 분해하고,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며, 각종 효소와 호르몬의 대사를 조절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수행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수면 상태가 아니라면 간의 주요 기능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로 인해 지속적인 야간 수면 부족은 간세포 손상 및 염증 반응 유발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히 피곤함의 문제가 아니라 간이라는 장기 자체의 기능 저하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늦은 취침은 간 해독 효율을 떨어뜨린다
밤 12시 30분 이후에 잠드는 습관은 간의 해독 사이클을 무너뜨린다. 간은 수면 중에 다양한 해독 효소를 활성화해 독성 물질을 분해하고 배설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늦게 자거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이러한 효소들의 생성과 작동이 지연되거나 약화된다. 예컨대 알코올이나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 CYP450 계열의 간 효소들은 깊은 수면 상태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늦게 잠들면 이 효소들의 작동 리듬이 흐트러지게 된다.
그 결과 해독되지 못한 물질이 간세포에 과도하게 축적되거나, 염증 반응을 일으켜 지방간, 간염, 간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만성적으로 야간 취침이 늦어질 경우, 간의 재생 주기 자체가 비정상화되면서 장기적인 기능 저하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멜라토닌과 간 기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늦은 취침이 간 건강에 해로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멜라토닌의 분비 저하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단순히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이 아니라, 간을 포함한 전신 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억제하고 항염 작용을 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이 호르몬은 밤 9시 이후 분비가 증가하다가 자정 무렵 최고치를 찍는데, 취침 시간이 늦어질수록 멜라토닌의 분비량은 현저히 줄어든다.
특히 간세포는 다양한 산화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조직이기 때문에, 멜라토닌이 적절히 분비되지 않으면 간세포 손상이 누적될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이나 수면 지연 습관이 있는 사람은 간 효소 수치(AST, ALT 등)가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간세포 손상의 지표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멜라토닌 부족은 간 해독력 저하와 직결되는 생리학적 반응이다.

체내 대사 리듬 혼란이 지방간과 염증 유발로 이어진다
늦은 취침과 불규칙한 수면은 체내 대사 리듬을 무너뜨려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현상을 유발하기 쉽다. 특히 밤늦게 먹는 야식과 과도한 당질 섭취는 간에서 중성지방 합성을 촉진하며, 이때 수면 부족까지 더해지면 간의 지방 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지방은 간세포 내에 남아 지방간의 원인이 되고, 만성 염증 반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야간 근무자나 수면 패턴이 불규칙한 사람들에게 지방간과 간 기능 이상이 유독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즉, 단순한 피로 축적의 문제가 아니라 생체 리듬 교란 자체가 간 조직에 병리학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간 건강을 위해서는 수면의 ‘시작 시간’이 핵심이다
수면 시간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간 건강에 있어서는 ‘언제 자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자정 이전, 특히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늦어도 12시 이전에는 수면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 개선을 넘어 간세포 회복, 효소 활성, 해독 사이클 유지를 위한 생리학적 전제 조건이다.
간 기능에 이상이 없더라도 야간 수면이 반복적으로 늦어지는 사람은 향후 간 수치 상승, 피로 누적, 면역 저하 같은 간접적인 증상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술, 진통제, 고지방 식단 등 간에 부담을 주는 요소가 많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는 수면 패턴 조절이 곧 간 보호 전략이 된다. 건강한 간을 위해선 ‘얼마나 오래 자느냐’보다 ‘언제부터 자느냐’가 먼저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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