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의 탄생: 국민 속옷 쌍방울
쌍방울의 시작은 1954년 전북 익산에서 두 형제가 문을 연 ‘형제상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2년 삼남메리야스 설립, 1963년 쌍녕섬유공업사로 분사하며 내의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고 1964년부터 ‘쌍방울’이라는 브랜드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1970~80년대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쌍방울 메리야스는 필수 생활용품이었습니다.
1979년 본사를 서울로 옮기고, 1984년 증권시장 상장. 이어 1987년 자체 브랜드 ‘트라이(TRY)’ 출시로 내의 중심기업이 되었죠. ‘속옷=쌍방울’의 공식과 함께 대형 광고, 유명 연예인 모델 마케팅, 전국유통망 확장으로 80~90년대까지 독보적 1위를 지켰습니다.

급격한 다각화와 무리한 확장
여세를 몰아 1990년대 들어 쌍방울은 사업 다각화에 나섰습니다. 리조트(무주리조트), 프로야구단(쌍방울 레이더스), 마라톤팀 등 패션분야 밖으로 대담하게 진출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자산은 급증했지만, 무리한 투자와 경영 부담이 동반되었습니다.
결국 1997년 외환위기에 직격탄을 맞았고, 19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갑니다. 리조트와 스포츠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며 구조조정에 나서지만, 이미 재무건전성은 크게 악화됐습니다. 수익 사업 중심의 체질개선을 위해 브랜드·유통에 집중하고, 2004년 대한전선에 인수되는 등 경영권마저 외부로 넘어갑니다.

브랜드 노후화, 환경 변화에 뒤처지다
2000년대 초중반, ‘트라이’ 브랜드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소비자 환경은 급변합니다. 글로벌 SPA브랜드(유니클로 등)와 스포츠웨어, 온라인 쇼핑몰 등의 공세에 전통 내의 시장은 빠르게 잠식당했죠. 2010년 이후 레드티그리스(김성태 설립)가 지분을 인수하며 재도약을 꿈꿨지만, 젊은층 유입과 혁신적인 브랜드 리뉴얼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 시장은 기능성·패션성·유통채널 등 다변화로 빠르게 재편됐지만, 쌍방울은 전통 이미지에 머물며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치명적 경영 리스크, 그룹 해체와 사라진 명성
최근 경영진의 비리 의혹이 기업 생사를 가르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김성태 전 회장의 대북송금, 횡령·배임 등의 의혹으로 2023년 7월부터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상장폐지 심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업 자체의 경쟁력보다 경영 리스크와 지배구조 불신이 회복 불능 수준에 이른 결과였습니다.
2025년 2월, 쌍방울그룹은 해체를 선언하며 회사 명칭도 ‘트라이’로 변경, 각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최종 결정을 받고, 국내 내의산업 1위 신화는 60여 년 만에 명목상 자취를 감추게 됐습니다.

이 위기가 주는 4가지 본질적 교훈
- 핵심역량 집중의 중요성
내의(언더웨어)라는 본업의 경쟁력이 압도적일 때, 관련성 낮은 사업 확장은 오히려 조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쌍방울도 본업의 종합력·혁신보다 다각화로 방향을 잃었습니다. - 브랜드 혁신과 시장 대응
60년을 이어온 국민 브랜드도, 변화하는 소비자·유통환경에 제때 대응하지 않으면 급속도로 힘을 잃게 됩니다. ‘트라이’ 브랜드는 젊은층과 새로운 마켓 흐름에 뒤처졌습니다. - 경영투명성과 책임경영
경영진의 일탈과 비리, 모럴해저드가 기업 존망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 회사가 사회적 신뢰를 잃는 순간, 수십 년 신화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 지배구조와 시장 신뢰
오너리스크·비상식적 자금거래 같은 구조적 한계는, 외부 투자와 시장 신뢰를 근본적으로 잃게 만듭니다. 한국 기업의 영속성에 있어서 ‘투명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한국 대표기업의 몰락, 앞으로의 과제
쌍방울은 회사 측의 심의를 통해 아직 법적 대응 등 재기의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시장 신뢰 회복과 실질적 경영정상화는 매우 험난한 길이 될 전망입니다. 한때 “국민 내의=쌍방울”로 통했던 이름마저 역사 교과서 사례로 남을 위기에 직면한 현 상황은, 모기업·브랜드 모두에게 치명적입니다.
대한민국에서 ‘1등’의 자리에 올랐던 기업도 안일함, 부패, 혁신 부족이 쌓이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그 교훈은 지금도 모든 기업에 생생하게 적용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원한다면, 어떤 환경 변화 속에서도 기업 본질(고객, 품질, 혁신)에 충실하고, 경영 투명성과 윤리경영, 그리고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 쌍방울 몰락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