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3년, 조선인 최초로 뉴욕을 밟다 한국 근대 외교의 시발점이 된 ‘조선 사절단’의 정체
근대 개화의 첫 걸음, 조선이 미국으로 향하다
1883년은 조선 근대사의 굵직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바로 이 해, 조선은 공식 ‘사절단’을 구성해 미국을 향해 떠났다. 고종 황제의 명으로 구성된 이 사절단은 12명으로 꾸려져 있었으며, 이들은 ‘미국과의 공식 외교수립’과 ‘근대문물 견학’을 목표로 근대 조선 최초의 국외 공식 외교사절로 임명됐다. 한마디로, 이들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조선의 공식대표라는 점에서, 그들의 여정 자체가 한국 외교의 역사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 사절단에는 특명 전권대신인 민영익, 부대신(차석) 홍영식, 그리고 젊은 개화파 인재 박정양, 서광범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배경에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본격 외교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있다. 이제 조선은 일본·중국·유럽뿐 아니라 새로운 신세계 미국과 정식으로 관계를 트기 시작한 것이다.

산 넘고 바다 건너 샌프란시스코에서 대륙을 횡단하다
이들의 미국 방문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일본인을 포함해 아시아 인사가 미국대륙을 간다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았다. 조선사절단은 일본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항구에서 나흘 넘게 머문 뒤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뉴욕을 향해 이동했다.
이 대륙횡단열차는 23년 전 일본인 방문 시에는 없던 교통수단이었다. 이제 미국의 산업혁명이 얼마나 급변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절단은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 솔트레이크시티, 오그덴, 오마하, 시카고, 피츠버그, 워싱턴을 거쳐 뉴욕까지 향했으며, 시카고에서는 1박 2일 동안 머물며 미국식 도시의 발전상을 직접 체험했다.

미국 사회의 관심 대상이 된 조선 사절단
이 사절단의 여정은 단순한 견학이나 의례적 예방 이상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 조선인들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 생중계’ 하듯 기사로 다뤘다. 유명 남북전쟁 장군 세리단과 측근들이 위험한 이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각 정거장에서 특별환영 행사를 준비했다.
사절단의 대표 민영익, 홍영식 등은 대우받는 외국 사절로 특실에 머물었고, 기차에서는 미국 사회 지도층 인사 및 다양한 선교사, 행정가들과 교류가 이어졌다.
특히 이들의 행렬을 따라붙던 미국인 목사 존 가우처의 존재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동양 선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이로, 기차에서 조선 사절단과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이후 훗날 미국 선교사 매클레이와 알렌 등이 조선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조선 상륙’의 배후에 이 사절단과 미국 내 네트워크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카고, 그리고 동서 교류의 특별한 순간들
시카고에 도착한 사절단은 거대한 군장 및 장교들의 영접, 경찰의 호위, 성대한 만찬회 등으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지방지인 시카고 트리뷴을 비롯한 미국 신문들은 조선 사절단의 옷차림·소품·식사예절·모자 가격 등 ‘이색 풍속’을 자세히 기록했다. 이 기사는 서구인 시각에서 조선 사회의 전통과 문화, 심지어 ‘갓’의 가격까지 화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혼례·가부장 관습·성풍속·여성관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문화 차이, 심지어 ‘서울(Soul)’ 도시의 발음 문제와 민족성, 표정 관리까지 세세하게 보도했다. 이는 조선 사절단이 단지 ‘외교 손님’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의 정체성을 사방팔방으로 신규 노출한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절단의 동선과 남긴 의미
이 사절단의 미국 공식 방문 경로는 애초 샌프란시스코~시카고~뉴욕~워싱턴 등 주요 정치·경제 거점을 비롯해, 각 정거장마다 각국 외교관 및 미국인들과의 접촉·네트워크 구축을 포함한다. 이 여정은 한민족이 세계 현대사의 ‘무대 한복판’에 당당히 등장한 사건이자, 미국이나 서구 시민사회에도 ‘동방의 미지 국가, 조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이 사절단의 흔적은 외교·문화교류·종교(선교)·정보수집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파급효과를 냈으며, 이후 1884년 갑신정변, 1885년 선교사 알렌의 조선 상륙 등 일련의 근대 개화 사건에 간접적 연결고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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