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틴, 돈바스 지역 양보 요구…우크라이나 “받아들일 수 없다”
러시아가 평화 협상의 조건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를 요구하면서 키이우 정치권과 민간 사회 모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회의원들은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러시아가 점령하지 못한 지역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고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이 내놓은 이번 제안은 종전 논의라기보다 사실상 영토 강탈 시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러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푸틴의 계산
최근 미·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을 협상 조건으로 언급했다. 돈바스는 도네츠크주와 루한시크주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불법 병합 이후 지속적으로 이곳을 점령하려 해왔다.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루한시크는 대부분 러시아 수중에 들어갔지만 도네츠크의 상당 지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다.

푸틴은 이 미완의 목표를 평화 협상 카드로 내세우며 크라마토르스크, 슬로우얀스크 등 전략 요충지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승자’인 양 영토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협상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사자 유족과 시민들의 분노
푸틴의 요구는 특히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 전사자의 아들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크림반도와 동부 전역을 되찾는 것을 소망으로 삼았다”며 “그 땅을 러시아에 양보하는 것은 아버지의 희생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키이우 시민들 역시 불신을 드러냈다. 한 주민은 “우리는 푸틴을 믿을 수 없다. 그는 이미 약속을 깨고 침공을 강행한 인물”이라며 “영토를 내어주면 새로운 공격이 뒤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시민은 “우리는 테러리스트에게 영토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며 푸틴을 ‘국제적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여론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와의 영토 협상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 불거진 의전 논란
이번 회담을 둘러싸고 미국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의전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이어진 것이다. 특히 미군 장병들이 러시아 대통령 전용기 계단 아래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장면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일부 네티즌은 제2차 세계대전 이오지마 전투에서 미 해병대가 성조기를 세우는 사진과 해당 장면을 나란히 게시하며 “과거의 희생과 지금의 굴욕을 대비시킨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을 진행하던 활동가들도 “수치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트럼프가 푸틴에게 지나치게 굴종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 대한 논쟁과 맞물리며 정치적 파장을 키우고 있다.

젤렌스키, 트럼프와의 담판 앞두고
푸틴의 요구가 공개된 직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는 18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논의에 나설 예정이다. 젤렌스키는 평화 협상 조건에 대해 강력히 반대 입장을 전하고, 우크라이나가 지켜야 할 영토적 원칙을 재차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국제 사회가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하는 순간, 침략을 통한 영토 확장이 정당화된다는 점을 부각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젤렌스키의 워싱턴 방문이 향후 전쟁의 방향뿐 아니라 미국의 대외 정책에도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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