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만들어낸 러시아의 비정상적 경제 성장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금융, 원자재 수출, 무역 등 다양한 제재가 이어졌지만 러시아 경제는 2022년 일시적으로 주춤한 뒤 곧 회복세를 보였다. 특히 2023년과 2024년에는 4%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서방의 예상과 달리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성장은 방위 산업 덕분이었다. 24시간 가동되는 무기 생산 공장과 이를 지원하는 철강, 전자, 화학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경제 지표까지 끌어올렸다. 러시아가 전쟁을 쉽게 멈추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동력이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전쟁이 중단된다면 단기간에 성장률이 곤두박질할 것이란 두려움이 크다.

방산 호황 속에 불거지는 각종 비리 사건

그러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의 방산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그만큼 부정부패와 비리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외 군사 전문 매체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보병 전투차량 제조업체의 전 고위 관리자를 구금했다. 그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특정 금속 공급업체와만 독점 계약을 맺으며 최소 36만 달러, 한화 5억 원 이상의 손실을 초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국방부와 방산 업계를 대상으로 12건 이상의 형사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현지 언론에서는 “방산 호황이 사실상 뇌물과 불법 계약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시 군수 공급망, 신뢰성에 의문

이처럼 비리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러시아의 군수 공급망이 과연 효율적이고 투명한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방위 산업체의 관리직뿐 아니라 군부 고위층까지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법원은 데니스 푸틸로프 소장에게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는 군사 장비 유지·보수 계약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약 12만 달러, 한화 1억7천만 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형뿐 아니라 군 계급 박탈, 6년간 국가 기관 관리직 취임 금지 처분까지 내렸다. 이는 단순한 개인 비리가 아닌, 전시 군수 체계 전반이 부패로 얼룩져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산복합체의 ‘돈잔치’, 전쟁 지속 요인 되나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략적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 특수로 인해 경제 성장을 이룬 동시에, 군산복합체가 막대한 이익을 얻는 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무기 생산은 국가 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 그 속에서 관계자들이 사익을 챙기며 비리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러시아 내부에서조차 “전쟁이 끝나면 경제도 추락하고, 동시에 방산 카르텔의 이권도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결국 전쟁의 지속은 단순히 군사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와 부패 네트워크가 얽힌 복합적인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배경은 러시아가 전장에서 치러야 할 대가 못지않게, 내부적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전쟁 경제의 그림자, 러시아 체제에 부담으로 작용

단기간의 경제 성장과 군수 산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맞닥뜨린 부패 문제는 체제 전반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군사 장비 생산과 유지 보수 과정에서 비리가 만연하다면 전장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결국 실전에서 병사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더불어 국제 사회에서도 러시아의 방산 비리에 대한 정보가 잇따라 공개되면서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쟁을 장기화하며 경제 지표를 유지하더라도, 내부의 부패 구조를 혁파하지 못한다면 결국 자국 체제 자체가 무너질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으로 성장한 경제가 오히려 러시아의 미래를 좀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