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특수부대 600명 격퇴”…한국 최초 군함 ‘백두산함’의 전설적인 부산 해전
1950년 6월 25일, 동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첫 번째 군함 ‘백두산함’은 국가 운명을 좌우한 역사적 교전을 치렀다. 북한 특수부대 600명이 탄 적선이 부산항을 목표로 남하하다가 백두산함과 정면으로 충돌한 이 사건은, 한국 해군 창설 이후 첫 실전이자 바다를 지켜낸 상징적 승리였다.

해군 ‘무(無)에서 유(有)’로…백두산함의 탄생 과정
1945년 해군 창설 당시 한국은 군함 한 척조차 없었다.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중심으로, 장병들은 월급 10%를 모으고, 고철을 팔고, 부인들은 바느질까지 해가며 1만5000달러를 모았다. 당시 대통령의 결제를 받아야 외화 20달러도 쓸 수 없었던 시절, 감명받은 대통령은 추가로 4만5000달러를 지원해 총 6만 달러로 미국에서 실습용 중고 군함을 구입했다. 이후 이를 직접 개조, 함포와 태극기를 달아 ‘백두산함’으로 명명, 드디어 1950년 4월 국내 배치에 성공했다.

6·25 발발…동해안 ‘적선 격파’의 운명적 해전
불과 두 달 후, 6.25전쟁이 발발했고 백두산함은 실질적으로 ‘해군 전력의 전부’였다. 당시 북한 특수부대 600명을 태운 적선이 부산항을 노리고 남하했는데, 백두산함이 이를 발견하고 치열한 교전 끝에 적함을 명중·침몰시켰다. 부산항은 UN군 보급선, 국민 피란, 최후 반격의 거점으로, 북한군이 상륙했다면 대한민국과 UN군 방어선 전체가 무너지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다.
해군은 포탄 부족으로 나무 모형으로 장전훈련만 겨우 하던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첫 실전에서 죽을 각오로 싸운 끝에 바다의 안위를 지켜냈고, 국가 핵심 거점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백두산함 전투의 영웅…최후까지 지킨 해군 장병
이 교전에서 두 명의 해군이 전사했다. 이들은 파편을 맞고도 끝까지 포를 지휘하며, 적선 침몰을 끝까지 본 뒤에야 총을 놓고 눈을 감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이들의 희생은 백두산함의 승리뿐 아니라, 대한민국 해군의 애국심과 근면·헌신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국가적 위기, 국민의 힘으로 일궈낸 해양수호
백두산함의 탄생과 첫 전투는 국가의 극한 위기 속에서 국민과 군이 함께 꿈꾸고 이루어낸 해양수호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월급, 바느질, 고철까지 모아 만들어진 첫 함정이 곧 대한민국 해군의 정신과 전통의 뿌리가 됐다. 이 한 번의 승리는 이후 동해와 남해, 부산항을 지켜낸 결정적 ‘신의 한 수’였으며, 오늘날까지 해군의 뼈아픈 교훈과 자부심으로 남았다.

해군 첫 군함의 죽음의 결투, 바다를 지켜낸 대한민국의 시작
북한 특수부대 600명 침투적선 격파사건은, 한국 해군력의 상징인 백두산함의 탄생부터 최초 교전, 장병의 희생, 바다안보 사수까지 국가사적 전설로 남았다. 국민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첫 군함이, 국가 운명을 걸고 지켜낸 첫 승리의 주인공이었던 그 날의 해전, 대한민국의 바닷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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