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배우던 시절, 기술 습득의 치열한 과정
한국이 잠수함을 독자적으로 건조할 수 없던 1990년대 초,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독일 TKMS로부터 ‘장보고-I급’ 잠수함을 도입하며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단순 도입에 그치지 않고 기술 습득의 기회를 잡기 위해 직원들을 독일 조선소에 파견했다. 독일 측은 핵심 기술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고, 한국 기술진은 현장에서 공정 과정을 직접 눈으로 익히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야 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독일 엔지니어들이 작업할 때 세세한 설명은커녕 기본적인 조립 과정조차도 철저히 통제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한국 기술자들은 밤마다 숙소에서 공책에 몰래 적어둔 메모와 그림을 바탕으로 기술 일지를 정리했다. 이러한 경험이 훗날 한국형 잠수함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첫 수출국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국으로 도약
한국은 배운 기술을 토대로 점차 잠수함 건조 역량을 확보해 나갔다. 전환점은 2011년, 인도네시아에 장보고-I급 잠수함을 수출하면서 찾아왔다. 당시 한국은 독일의 209형 설계를 기반으로 개량한 모델을 건조해 3척을 인도했고, 이후 2019년에도 같은 기종 3척을 추가로 수주했다. 총 6척, 약 2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었다.
이는 한국이 단순한 기술 수입국에서 벗어나 ‘잠수함 수출국’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과거 기술을 베껴오던 나라가 이제 다른 국가에 공급하는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이 경험은 한국 방산업계가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고,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됐다.
독자 기술의 결정체, 도산안창호급 잠수함
한국 잠수함 역사의 또 다른 분기점은 2021년이다. 한국이 설계부터 건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3000t급 장보고-III 배치-I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이 해군에 인도되면서 진정한 독자 개발 시대가 열렸다. 이 잠수함은 공기불요추진(AIP) 장치를 탑재해 수주 동안 잠항이 가능하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능력까지 갖췄다.
이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전략적 잠수함 보유국’ 대열에 합류했음을 의미했다. 단순히 디젤 잠수함을 수입하던 국가가 이제는 자체적으로 전략 무기를 통합한 플랫폼을 운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세계 군사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캐나다 사업 최종 결선 진출, 독일과 맞붙다
최근 한국의 잠수함 경쟁력은 다시 한번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공동으로 참여한 캐나다 초계 잠수함 사업(CPSP)에서 한국은 독일 TKMS와 함께 최종 결선 후보에 올랐다. CPSP는 퇴역 예정인 캐나다 해군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한 사업으로, 최대 12척의 디젤-배터리 추진 잠수함 도입이 핵심이다.
규모는 도입 계약만 약 20조 원, 유지·보수까지 포함하면 총 60조 원에 달한다. 유럽 강자 프랑스 나발그룹과 스페인 나반티아가 경쟁에서 탈락하고 한국과 독일만 남았다는 사실은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 정상급 수준에 도달했음을 방증한다. 과거 기술을 전수받던 독일과 이제는 대등한 입장에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술력과 신뢰성, 캐나다에 제안한 장보고-III 배치-II
한국이 캐나다에 제안한 모델은 ‘장보고-III 배치-II’급 잠수함이다. 기존보다 향상된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과 작전 지속성이 크게 높아졌다.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으로 21일 이상 수중 작전이 가능하며, 최대 항속거리 7000해리(약 1만2900km)로 캐나다 해군이 요구하는 북극해 장기 작전 능력을 충족한다.
이 잠수함은 단순히 성능뿐 아니라 한국이 약속하는 빠른 납기와 합리적인 가격까지 장점으로 내세운다. 현지 생산 및 기술 이전 방안도 포함돼 있어 캐나다 입장에서 전략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방산업계는 이번 결선 진출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잠수함 도입을 검토 중인 국가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라 내다본다.
기술 종속국에서 기술 수출국으로, 한국 방산의 위상
3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잠수함을 수입하고 기술을 베껴오던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과 같은 무대에서 글로벌 프로젝트의 최종 결선을 겨룰 만큼 성장했다. 단순한 군사력 증강을 넘어 방위산업 자체가 국가 기술력과 경제력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캐나다 프로젝트가 단순한 수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분석한다.
한국이 잠수함 기술 자립을 통해 ‘기술 종속국’에서 ‘기술 수출국’으로 전환했음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경쟁에 한국이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산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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