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정치인들이 반려견과 함께 찍은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부쩍 많이 올라온다. 어떤 후보는 전직 대통령과 함께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4월 10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실감 나는 대목이다. 후보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에는 ‘펫펨족’, ‘반려동물 공원’, ‘반려동물 진료비’와 같은 단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올라오고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도 동물 관련 공약을 속속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동물의 지위를 물건과 구분하는 민법 개정과 동물복지기본법 제정, 동물학대범의 동물 소유권·사육권 제한, 동물원 동물복지 향상, 농장동물 복지 개선, 동물대체시험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은 동물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녹색정의당은 반려동물 유통·판매 금지, 동물학대 축제 폐지, 로드킬과 조류충돌 저감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3일 ‘국제 강아지의 날’을 맞아 후보들이 일제히 반려동물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정당 차원에서는 동물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는 정책공약이 늘었지만, 여전히 지역구 후보들의 공약들은 반려동물 놀이터, 장례식장 등 반려동물 전용 시설 확충, 반려동물 의료제 개선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지역민의 표심을 겨냥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다시 말해, 동물보다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공약의 초점이 맞춰졌다는 뜻이다.
물론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회에서 시민들이 반려동물과 불편 없이 살아갈 환경을 갖추는 것은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동물복지’라고 이름으로 앞세우는 공약이라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지만, 지역구 후보들은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듯해 아쉽다.
복지의 수혜는 가장 힘든 처지에 놓인 동물부터 받아야 한다. 정책을 세울 때는 복지가 가장 취약한 곳은 어디인지, 동물복지에 위해를 미치는 문제는 무엇이며 영향을 받는 동물의 숫자와 고통은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동물복지 공약이 반려동물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반려동물 복지’를 위한 공약이라면 아플 때 보호자가 동물병원에 데려가 줄 수 있는 동물보다는 최소한의 수의학적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없는 동물이 먼저 복지정책의 고려대상이 돼야 한다.
반려동물 공약을 내놓은 후보라면 자신의 선거구 내에서 발생한 유실·유기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보호받고 관리되고 있는지도 알아봤으면 좋겠다. 매년 10만 마리 이상 발생하는 유실·유기동물 중 40% 가까운 동물들이 보호소에서 폐사하거나 안락사된다. 정부가 발표한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소는 총 239개소다. 이 중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은 64개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민간 운영자의 입찰을 받아 위탁 운영하고 있다.
민간이 위탁 운영하는 시설 중에는 농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악한 시설도 많고, 도심에서 발생하는 유기동물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시설로 위탁해 ‘처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름 최선을 다해 동물들을 보호하고 싶어도 부족한 자원과 인력으로 허덕이는 시설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동물보호소를 직영으로 전환해 관리 수준을 높이고, 이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후보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동물보호소 환경을 개선하고 입양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지역민들과 함께 모색한다면 분명히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버려지는 동물이 줄어들도록 반려동물의 무분별한 번식과 판매를 제한하고 동물 양육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반려동물테마파크’, ‘반려동물 놀이터’를 짓는 일보다 더 시급한 문제다.
우리 사회에 동물이 반려동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숫자로 따지면 사람보다도 훨씬 많은 농장동물이 사육되고 도축된다. 농장동물의 복지는 동물뿐 아니라 국민 건강과도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인증 농장은 전체 축종을 합해 500개도 되지 않는다.
물론 동물복지 인증을 확산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농가는 투자비용과 수익 저하의 부담으로 인증을 주저하고 있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축종별, 사육단계별 동물복지 기준이 정립되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 일반 농장의 동물복지 기준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정부의 ‘2020~2024 동물복지 종합계획’은 ‘농장동물 복지 개선’을 6대 분야 중 하나로 선정하고 산란계 배터리 사육방식 전환을 위한 로드맵 마련 등 세부과제를 제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반 농장의 축종별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준수하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정당 공약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농장동물 사육 농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 정치인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덜 기울이고 있는 듯해 아쉽다. 이들이 정당 소속 의원으로서 제대로 된 입법을 해야 정당의 공약이 실현될 수 있다.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철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공약 구호다. 후보자들이 내민 공약이 동물 입장에서도 ‘공존’인지, 동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유권자들이 꼼꼼히 챙겨 보면 좋겠다. ‘조화로운 공존’이 구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정치권에서 내건 공약을 앞으로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는지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시민들이 늘어난다면, 공수표 공약, 복지와는 동떨어진 동물복지 공약이 선거 때마다 반복해 등장하는 현실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글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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