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나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사람들을 예전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됐다.
그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들이 대화 상대방이 자기를 깊이 알아봐준다고 느끼게 할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알게 한 가장 끔찍한 만남은 오랜 친구인 피터 마크스가 이 병에 걸렸을 때다.
피터와 나는 열한 살 때부터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농구, 소프트볼, 깃발 잡기, 럭비를 하면서 놀았다. 서로의 어설픈 춤과 연애, 그 밖의 온갖 것들을 흉내 내며 놀았다. 그렇게 우리는 50년 세월을 함께 지냈다.
나의 아내는 피터를 두고 평범함과 특별함이 드물게 조화를 이룬 사람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그는 남성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 엄청난 힘을 지니기도 했지만, 동시에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아버지라고 할 때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으로 끝없이 헌신하면서도 유머와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남편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으로 퇴근해 돌아와서는 세상에서 가장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으로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가 직장 동료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2019년 봄의 어느 주말을 함께 보내기 전까지 나는 그가 겪는 일들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아내는 피터에게 나타난 변화를 곧바로 알아챘다. 그가 전원이 꺼진 전자제품 같다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조롭고 그의 눈은 고요했다. 그리고 6월의 어느 맑은 오후에, 피터는 우리 부부를 한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우리가 눈치챈 것을 털어놓았다.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제일 좋아하는 농구나 호수 수영을 해도 도무지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족과 자신을 걱정하면서, 우리 부부에게 앞으로도 우정과 지지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피터를 나는 처음 보았다.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그때 나는 미처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은 질문에 맞닥뜨렸다. 우울증을 앓는 친구를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피터는 결국 2022년 4월 1일 우리 곁을 떠났다.
겉으로만 보면 피터는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가장 낮아 보였다. 성격은 쾌활했고 결혼 생활은 행복했으며 직업에서 보람을 느꼈고 오웬과 제임스라는 두 아들까지 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의 고통을 내가 알던 것보다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고, 결국 그 트라우마가 그를 지배했다
나는 피터가 어떤 사람인지 머릿속으로 명확하게 알지만, 우울증은 내가 피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상관없이 내 친구를 갉아먹었다.
철학자 세실리 화이틀리와 조너선 버치가 썼듯, 우울증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자신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의식 상태다. 저널리스트인 샐리 브램턴은 우울증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울증은 차갑고 검고 공허한 풍경이다. 그곳은 지금껏 가보았던 그 어떤 곳보다 무섭다. 악몽 속에서 보았던 풍경보다도 끔찍하고 무섭다.
처음에 나는 피터가 우울증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실수였다.
몇 년 전에 피터는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수술 봉사를 하려고 베트남에 갔다. 피터가 보람을 느꼈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봉사 활동을 또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당시에 나는 그에게 부족한 것이 보람과 성취 같은 것들이 아니라 에너지와 욕망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회복될지 조언하는 것은 당신이 그와 그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일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피터에게 어쭙잖은 조언을 했던 것이다.
나는 피터가 과거에 누린 놀라운 축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즉 심리학자들이 ‘긍정적인 재구성’이라고 말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과거에 누리던 일을 지금은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환자에게 역효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책을 통해서 알았다
우울증 환자의 친구가 할 일은 기운을 북돋아주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아주 천천히 배웠다. 친구라면 그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그를 존중하며 사랑해야 한다. 그를 포기하지 않았고 버려두고 떠나지 않았음을 그 친구에게 보여야 한다.
피터는 “우울증은 지독하게 끔찍해.”라고 말하며 나에게 그 질병의 진실을 일러 주곤 했다. 하지만 내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겪는 끔찍한 공포의 전부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많았다. 마지막까지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말을 도구로 삼으면서 말과 씨름하면서 살아왔지만, 피터를 돕기 위한 나의 말들은 힘이 없었다. 점점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이런 무력감은 나에게 실존적인 것이었다.
얼마 뒤에 나는 평소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피터가 나에게, 내가 피터에게 보였던 예전의 모습으로, 느긋하고 편안한 친구로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고립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바랐다.
피터는 아내와 아들들이 자기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친구들이 자기를 아낀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혹독한 집착에 갇힌 듯했다. 그건 우울증의 일부였고, 우울증 환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터가 우리 곁을 떠난 뒤로 나는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는 행위가 발휘하는 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배우 스티븐 프라이는 썼다.
당신 주변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이유가 뭔지 묻는 짓은 절대 하지 마라. 그가 힘들어할 때 그저 곁에 있어줘라. 우울한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은 어렵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하고 고귀한 일이다.
피터는 늘 나보다 용감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도 그랬고, 모닥불 앞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용기를 냈다. 누구라도 무릎 꿇었을 무서운 적에 놀라운 용기와 굳건함으로 맞섰다. 그는 매분, 매시간, 매일, 1000일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싸웠다. 하루하루 1000일에 걸쳐 싸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의 힘으로 그렇게 싸웠다
마지막 날에 피터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지리라고 상상하지 못한다는 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만일 내가 비슷한 상황에 다시 놓인다면, 그때는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굳이 달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행동할 것이다.
그가 어떤 아픔을 견디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가 자기 경험을 털어놓을 분위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사람을 안다는 것』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신의 오랜 친구 피터를 우울증으로 잃은 후 비통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꾸지 못했다고 실패했다고 느끼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그저 곁에 있어 주세요. 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소설가 발자크는 이렇게 썼습니다.
친구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감각이 우리가 지닐 수 있는 것의 전부인 순간이 있다. 고통의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위로의 말 아래 우리의 상처는 아물어간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지는 힘을 우리는 너무 과소 평가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더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 을 꼭 읽어보세요.
*위 내용은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인용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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