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 도로로 나와도 되는 거야?” 88세 노인이 소유한 단 한 대의 자동차

(래디언스리포트 신재성 기자) 2025년 6월 6일, 프랑스 르망 인근 도로에서 전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장면이 펼쳐졌다.

포르쉐가 자사의 최첨단 하이브리드 경주차인 ‘963’을 바탕으로 단 한 대만 제작한 도로 주행 가능 하이퍼카 ‘963 RSP’를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의 키를 쥔 이는 바로 올해로 88세가 된 전설적인 레이싱 팀 오너, 로저 S. 펜스케였다.

이날 보도자료는 포르쉐 AG, 포르쉐 펜스케 모터스포츠, 그리고 포르쉐 북미법인의 공동 프로젝트 결과임을 명시했다. 특히 6월 6일 오전(현지 시각), 24시 르망 경기를 앞두고 진행된 이 공개는 단순한 신차 출시를 넘어, 브랜드 역사와 인간 헌신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았다.

“세상에 단 하나,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차”

펜스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이 차량은 단순한 양산차도, 개조차도 아니다. 이른바 ‘레이스카를 도로 위로 끌어낸’ 순도 높은 원-오프(One-Off) 모델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그 기반이 되는 963은 IMSA 및 WEC에서 실전 우승을 거둔 현역 경주차다. 이를 일반 도로에서도 주행할 수 있도록 개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며, 이 역사적인 도전을 가능하게 한 인물이 바로 펜스케다.

포르쉐는 이번 963 RSP 프로젝트를 통해 1975년 포르쉐가 카운트 로시(Count Rossi)를 위해 제작했던 ‘917 스트라센버전’에 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50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도 레이스카를 거의 그대로 일반도로에 올리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외형은 마티니 실버 컬러로 마감되었고, 실내는 고급 탄색 가죽과 알칸타라로 덮여 있다. 엔진은 4.6리터 V8 트윈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약 680마력의 출력을 내며 포르쉐 918 스파이더의 파워트레인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이 차량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도로 주행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당국의 특별 허가를 받아 일시적으로 일반 도로 주행이 허용되었으며, 실제로 프랑스 르망 근교 도로에서 ‘917’과 함께 주행에 성공했다.

운전대는 르망 3회 우승자인 티모 베른하르트가 잡았고, 그는 “경주차가 아닌 도로에서 917과 나란히 달린 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일반 963보다도 부드럽고 친근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도로 위를 달리기 위한 레이스카의 비밀 조율”

이 차량은 겉모습만 보면 여느 레이스카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극한의 기술과 정성이 숨어 있다. 차량의 카본-케블라 차체는 도색 자체가 어렵지만, 오리지널 917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페인트로 마감했으며, 번호판 장착, 전조등 및 후미등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조정, 방향지시등 기능 통합 등 실제 도로 주행을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또한, 운전자의 편의를 고려해 컵홀더와 탈착식 노트북 거치 패널, 그리고 펠터 통신 헤드셋까지 마련되어 있다.

차량의 기계적 세팅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트랙 전용이었던 멀티매틱 DSSV 댐퍼는 가장 부드러운 설정으로 조절되었고, 전기 모터 출력 역시 일반 도로 주행에 적합하게 부드럽게 재조율됐다. 무엇보다도 이 차량은 고급 휘발유로 주행이 가능하도록 엔진이 개조되었으며, 모든 작업은 포르쉐 클래식 아틀란타 시설에서 진행됐다.

단 한 대뿐, 그리고 누구도 살 수 없다

‘RSP’라는 명칭은 ‘로저 S. 펜스케’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으로, 이번 차량은 오직 그를 위한 선물이다. 포르쉐는 이 차량을 누구에게도 판매하지 않을 것이며, 동일한 사양으로의 재생산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 차량의 가치를 수십억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가격 책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펜스케는 포르쉐와의 50년 인연을 통해 레이싱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일궈낸 인물이다. 그의 팀은 인디500 최다 우승, NASCAR 챔피언십, IMSA 및 WEC 등 다양한 대회에서 수백 회 이상의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공로에 대한 포르쉐의 보답이 바로 이 963 RSP인 셈이다.

도로 위 예술,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상징

963 RSP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닌, 모터스포츠와 기술, 장인정신,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결정체다. 포르쉐는 이번 차량을 24시 르망 기간 동안 서르트 서킷에 전시한 후,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며, 2025년 7월에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오리지널 917과 함께 전시된다.

“이차, 도로로 나와도 되는 거야?”라는 의문은 이 자동차가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반문으로 바뀌었다. “이런 차가 도로에 나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지?” 전례 없고, 다시 없을 자동차. 그리고 그 중심에는 88세의 노인, 로저 펜스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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