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도, 차례도 없다”는 남편의 말…현실은 달랐다
최정원은 결혼 전 남편으로부터 “우리 집은 제사도, 차례도 없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예비 신부들이 결혼을 앞두고 시댁의 명절 문화에 대해 궁금해하고, ‘제사가 없다’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최정원의 경우, 막상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이하자 현실은 전혀 달랐다.
시댁은 공식적으로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시아버지가 집안의 맏이였기에 명절마다 동생 가족들까지 모두 모이는 대규모 음식 준비가 필수였다. 특히 전을 비롯해 7~8가지의 명절 음식을 새벽까지 준비해야 했고, 이는 오히려 전통 제사상보다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최정원은 “임신 중이었지만 맏며느리라는 책임감에 물러설 수 없었다”며,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새벽 3시까지 전을 부치고 정리까지 마친 뒤 탈진한 몸으로 방에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맏며느리의 눈물, 그리고 ‘착한 며느리’의 딜레마
최정원이 명절 새벽까지 전을 부치고 방에 들어섰을 때, 남편은 미안한 표정으로 “잠도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서러움과 피로가 한꺼번에 터지며 결국 남편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이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맏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가족의 안녕과 시댁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정원은 이후에도 시어머니를 시간적·경제적으로 살뜰히 챙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섭섭한 마음이 커졌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녀는 두 달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이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단순한 노동 부담을 넘어 정서적 소진과 상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명절 노동의 현실, 그리고 ‘맏며느리’의 사회적 의미
한국 사회에서 명절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맏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희생이 존재한다. 최근 10년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명절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명절 기간 중 가사노동의 80% 이상이 여성, 특히 며느리에게 집중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음식 준비, 상 차리기, 설거지, 손님맞이 등 대부분의 명절 관련 업무를 여성들이 도맡아 하는 문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맏며느리는 ‘집안의 대표’라는 이유로 모든 일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러한 현실은 1인 가구 증가, 가족 형태의 변화, 젠더 평등 의식 확산 등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점차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명절에 시댁 가지 않기’, ‘가족끼리 음식 배달 시켜먹기’, ‘가사노동 분담’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는 전통적 역할 분담이 강하게 남아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갈등, 그리고 세대 간 인식 차이
최정원 사례에서 드러나듯,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단순히 ‘일의 양’ 문제만이 아니다. ‘맏며느리’로서의 책임감, 시어머니의 기대, 그리고 며느리의 자기 희생이 반복되면서 감정적 소진(burnout)과 섭섭함이 쌓이게 된다. 전문가들은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가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많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잘해야 한다”, “남편 가족을 내 가족처럼 챙겨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게 만들고, 결국에는 관계의 단절이나 심리적 거리감을 초래할 수 있다. 최정원 역시 “맏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섭섭함이 커졌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가족 상담 전문가들은 “이제는 착한 며느리 말고, 시어머니에게 귀엽게 유세 좀 떨어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즉, 며느리도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거나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건강한 관계를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명절, 그리고 새로운 가족 문화의 모색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명절 문화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맏며느리’ 역할에 대한 거부감, 가사노동의 공평한 분담, 가족 간의 소통과 배려가 강조되고 있다. 일부 가정에서는 명절 음식을 외부에서 주문하거나,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문화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관계도 점차 수평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어머니-며느리’ 관계가 엄격한 위계질서에 기반했다면, 최근에는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존중하는 ‘동반자적’ 관계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명절 노동의 분담을 넘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변화다.
‘착한 며느리’에서 ‘행복한 가족’으로
배우 최정원의 명절 에피소드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맏며느리’의 부담, 그리고 명절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도 함께 제시한다. 착한 며느리로서의 자기 희생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감정과 역할을 존중하고,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족 문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앞으로도 한국 사회가 명절과 가족, 여성의 역할에 대해 더 열린 논의와 변화를 이어가길 기대한다. 최정원의 고백이 수많은 여성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한편, 가족 모두가 함께 행복한 명절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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