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의 자취, 서울 한복판 치욕의 상징
경복궁과 광화문 사이에 우뚝 서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물리적으로 드러난 대표 건축물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일제는 전통 궁궐의 앞마당을 침탈해 대형 근대 관청을 세웠다. 흥례문과 각 행각을 철거하며 궁궐의 상징 공간을 철근 콘크리트로 뒤덮었다. 이후 해방 뒤에도 건물은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가 핵심 공간으로 활용되며 대한민국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 등 격동의 역사 현장과 함께했다.
잊지 못할 치욕의 흔적, 해체 결단의 배경
일제의 구 총독부 건물은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행정청사와 박물관으로 이용됐으나, 민족 기억을 짓누르는 역사적 상징으로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치욕도 역사’라는 보존론과 ‘자존과 정기 회복’이라는 청산론이 맞섰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민족 자존심의 회복을 명분으로 청사 해체를 전격 결정했다. 전국적 여론과 국민적 요구, 그리고 새 시대 개막의 역사적 분위기가 이를 밀어붙인 배경이었다.
철거 과정과 일화, “폭발”이 아닌 상징적 해체
총독부 청사의 철거는 단순 폭파가 아니었다. 정부는 1995년 광복 50주년 삼일절을 기점으로 중앙돔 첨탑부터 해체하는 상징적 방식으로 철거를 시작했다. 첨탑은 크레인으로 분해돼 광장에 일시 전시된 뒤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일본은 건물 통째 이전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거절됐고, 일부 ‘폭파’ 관련 일화나 대통령의 전설적 발언 등은 실제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치욕의 흔적 뒤, 복원된 경복궁과 국민의 공간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흥례문 복원 등 경복궁 재정비 사업이 진행됐다. 철거 이후에는 서울의 역사공원이자 시민들의 포토존, 산책로로 공간이 재탄생했다. 과거 총독부 건물로 인해 가려졌던 경복궁의 위용과 전통 경관이 다시 드러나면서, 민족적 상처를 치유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치욕의 역사와 자존의 선택, 오늘의 의미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논쟁은 단지 건축물 문제에 머물지 않았다. 일제의 침탈과 민족정기 회복,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시대 선택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정체성을 결정지은 분수령이었다. 수백억 원 규모의 근대 건축물이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건은, 오늘도 광화문과 경복궁을 찾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와 국가 정체성, 치욕과 자존의 복합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역사를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민족적 결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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