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입대 시즌마다 울려 퍼지는 남한 노래, ‘이등병의 편지’
북한에서 인민군 입대 시기가 돌아오면 청년들 사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남한에서 온 ‘이등병의 편지’다. 원래 1980년대에 발표된 이 곡은 한국에서 군 입대와 이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담아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최근 북한에서도 신병 모집 시즌이 오면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 노래를 단체로 부르며 입대를 준비하는 현장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제목만 바꿔 전해진 남한 명곡, 단속에도 막지 못한 확산
초모생(입대 예정자)들 사이에서 ‘상등병의 편지’ 혹은 ‘떠나는 날의 맹세’라 제목만 바꿔 불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원곡 가사와 멜로디를 그대로 전수받아 ‘이등병의 편지’가 다시 유행 중이다. 실제로 국경 지역 도시나 시골부대에서는 입대 환송 모임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친구와 가족, 마을사람들이 함께 이 노래를 떼창하는 모습도 등장했다. 단속과 검열이 강화된 이후에도, “죽은 사람이 배워줬다”, “한국 노래인 줄 몰랐다”는 식의 변명으로 실질적 처벌은 막아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입대 전 마지막 추억, 공감과 위로의 문화로 자리잡다
남한보다 훨씬 긴 복무 기간, 자주 돌아올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이등병의 편지’에 담긴 불안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공감한다. 군에 가는 친구에게 이 노래를 선물하는 것이 공식 문화처럼 자리잡아, 일부 학교나 동네에서는 스승이나 퇴역 군인이 직접 이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입영을 앞둔 어느 집에서는 가족 모두가 모여 이 노래를 합창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음악의 힘, 단속을 넘어선 위로의 상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각종 법령과 보위부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등병의 편지’는 여전히 북한 청년들에게 위로와 힘,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실제로 단속이 있어도 곡의 정체를 숨기거나, 운이 좋으면 “이미 세상을 떠난 어른한테 배웠다”는 핑계로 처벌을 피하는 일화가 곳곳에서 전해진다. 이는 사회, 체제를 막론하고 청년기와 가족, 이별, 불안을 대중문화로 풀어내는 동아시아 청년 정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남·북 청년이 한 마음으로 부르는 시대의 노래
결국 ‘이등병의 편지’는 제도와 분단, 체제를 넘어 두려움과 희망, 인간적 유대라는 인류 보편의 감정을 음악으로 이어준다. 북한에서 몰래 떼창되는 이 곡은 단순한 대중가요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남북 모두 청춘들에게 위로를 주는 하나의 상징적 언어가 되었다.
노래가 금지되어도, 청년과 가족, 우정의 힘은 어떤 억압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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