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원전 드라이브, 한국을 부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세대 에너지 전략으로 원자력 확대를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50년까지 미국 원전 설비용량을 현재 약 100GW에서 400GW로 네 배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300기 이상의 신규 원전이 필요하며,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착공하겠다는 단기 목표도 제시되었다. 업계는 “현실적으로 전례 없는 물량”이라며 난색을 보였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화석연료 부활과 함께 원전을 미국 에너지 정책의 양대 축으로 삼으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를 수행할 실제 건설 역량이 미국 내에서 크게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스리마일섬 이후 무너진 미국의 원전 산업
미국이 원전 기술 종주국임에도 한국에 손을 내민 배경에는 1979년 발생한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있다. 이 사고로 미국은 수십 년간 신규 원전 인허가를 중단했고, 그 결과 원전 건설 생태계가 사실상 붕괴했다. 설계 기술은 남아 있지만 시공 경험과 공급망은 사라졌으며, 최근 수십 년간 미국 내에서 원전이 본격적으로 지어진 사례조차 드물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국 내 대규모 원전 확충에 나설 경우, 결국 해외 건설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는 미국이 조선업에서도 한국과 협력을 모색하는 상황과 닮아 있다.

한국에 쏟아지는 협력 요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에너지 당국 간 접촉에서는 미국 고위 관계자가 한국에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국 측은 “한국이 제3국 시장보다 자국 내 원전 확충 문제를 우선 지원해주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1월 한미 간 지재권 분쟁이 해소되면서 양국이 원전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양국은 수출 통제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민관 합동 형태로 협력 구체화를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상황이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합작 논의 본격화
이 같은 기류 속에서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는 합작회사를 세워 미국과 글로벌 원전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최근 국회 보고에서 “유럽보다 미국 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더 전략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현재 양사는 출자 비율과 사업 범위를 두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지재권 분쟁 해소 합의 이후 공동 사업 추진의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단가를 보장하는 시장인 만큼, 한국 기업이 진출할 경우 전례 없는 수익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 본다.

기회의 문일까, 또 다른 굴욕일까
미국 시장 진출은 분명 한국 원전 산업에 새로운 기회다. 건설, 기자재, 운용 등 전 분야에 걸쳐 수십 년간 안정적 일감을 확보할 수 있으며,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한다면 한국 원전 기술의 글로벌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려도 존재한다. 합작 구조에서 지분 비율과 의사결정권이 웨스팅하우스에 과도하게 기울 경우, 한국이 또다시 “하청” 위치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된 협력 사례를 떠올리며 ‘제2의 굴욕 협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나온다. 결국 이번 협력의 성패는 한국이 얼마나 주도권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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