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분해효소 작용 술 취하는 원인 과정 사람마다 주량이 다른 이유 등과 관련된 이야기
술 한 잔에 얼굴 빨개지는 당신, ‘알콜 분해 효소’가 부족하다는 신호입니다
“너는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안 마시는 거지?”, “마시다 보면 늘어!” 술자리에서 술이 약한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는 것은 단순히 의지나 연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속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알코올 분해 효소(Alcohol Metabolizing Enzymes)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이는 당신의 몸이 “알코올 그만!”이라고 보내는 강력한 경고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알코올 분해 효소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한국인에게 특히 중요한지, 그리고 내 몸의 효소 능력에 맞춰 건강하게 음주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몸의 ‘알코올 처리 공장’: 2단계 분해 과정
우리가 마신 술(에탄올)은 위와 소장에서 흡수된 후, 대부분 간(肝)으로 이동하여 해독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은 크게 두 단계의 화학 반응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마다 핵심적인 분해 효소가 작용합니다.
1단계: 알코올 → 아세트알데하이드 (독성 물질 생성)
-
담당 효소: 알콜 분해 효소 (ADH, Alcohol Dehydrogenase)
-
과정: 간으로 들어온 알코올(에탄올)은 ADH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라는 물질로 분해됩니다.
-
문제점: 이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숙취의 주범이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입니다. 얼굴을 붉게 만들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며, 메스꺼움과 두통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죠.
2단계: 아세트알데하이드 → 아세트산 (무해 물질로 최종 분해)
-
담당 효소: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 (ALDH, Aldehyde Dehydrogenase)
-
과정: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ALDH 효소에 의해 인체에 무해한 ‘아세트산(초산)’으로 최종 분해됩니다. 아세트산은 이후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결론적으로, 술이 강하다는 것은 이 두 가지 효소, 특히 2단계의 ALDH가 활발하게 작용하여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뇌를 속이는 마법, 신경전달물질의 교란 (원인)
술에 취했을 때 나타나는 대부분의 증상은 바로 뇌 기능이 알코올에 의해 교란되면서 발생해요. 우리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뉴런)들이 ‘신경전달물질’이라는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정교하게 작동하는데요, 알코올은 이 메신저 시스템에 슬쩍 끼어들어 큰 혼란을 일으킵니다.
가장 중요한 두 명의 메신저, ‘가바(GABA)’와 ‘글루탐산(Glutamate)’을 기억해주세요!
억제성 메신저, ‘가바(GABA)’의 증폭:
-
가바(감마-아미노뷰티르산)는 우리 뇌를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는,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에요. 알코올은 이 가바의 활동을 더욱 강력하게 만듭니다. 마치 브레이크를 평소보다 훨씬 세게 밟는 것과 같죠. 이 때문에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때로는 졸음이 쏟아지는 ‘진정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랍니다.
흥분성 메신저, ‘글루탐산(Glutamate)’의 차단:
-
반대로 글루탐산은 뇌를 깨우고 활성화시키는, 액셀러레이터 같은 역할을 해요. 그런데 알코올은 이 글루탐산이 자신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즉, 액셀러레이터를 제대로 밟지 못하게 막는 거죠. 뇌의 활동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지면서 생각하는 속도나 반응 속도가 저하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알코올은 뇌의 브레이크(가바)는 더 세게 밟게 하고, 액셀러레이터(글루탐산)는 못 밟게 막아 우리 뇌의 전반적인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술에 취하는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알딸딸함부터 비틀거림까지, 뇌 부위별 증상
알코올의 영향은 뇌의 특정 부위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로 인해 우리가 흔히 겪는 ‘취한 증상’들이 발생합니다.
-
전두엽 (판단 및 이성 담당):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성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이에요.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는 등 ‘필름이 끊기는’ 전조 증상이 나타납니다. ‘술기운에 용기를 냈다’는 말도 사실은 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풀렸기 때문이죠.
-
측두엽 & 해마 (기억 담당):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다음 날, 전날 밤의 일이 가물가물하거나 아예 기억나지 않는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하기도 하죠? 이는 기억의 저장과 출력을 담당하는 측두엽과 해마가 알코올의 공격을 받아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오류가 생긴 것이죠.
-
소뇌 (균형 및 운동 담당): 몸의 균형 감각과 미세한 운동 조절을 담당하는 소뇌가 알코올에 영향을 받으면,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고 혀가 꼬여 발음이 부정확해집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똑바로 걷지 못하고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연수 (생명 유지 담당):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연수는 호흡, 심장 박동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 만약 혈중 알코올 농도가 매우 높아져 연수까지 마비되면 호흡이 멎거나 심장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급성 알코올 중독’이 매우 위험한 이유입니다.
아시안 플러시 (Asian Flush) – 한국인의 숙명?
유독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동아시아인 중에 술만 마시면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를 아시안 플러시(Asian Flush)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전적으로 2단계 분해 효소인 ALDH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아예 없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
원인: ALDH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ALDH2)에 변이가 생긴 경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6천만 명, 한국인의 약 30~40%**가 이러한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증상: 1단계에서 생성된 독성 물질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제대로 분해되지 못하고 몸속에 쌓이면서 혈관을 확장시켜 얼굴, 목, 가슴의 피부가 붉어지는 안면 홍조를 일으킵니다. 이 외에도 심계항진(가슴 두근거림), 메스꺼움, 두통 등이 동반됩니다.
얼굴 빨개지는 건 혈액순환이 잘 돼서 좋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는 내 몸이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성 물질을 처리하지 못해 보내는 위험 신호이며, 이러한 사람이 억지로 술을 마실 경우 건강에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알콜분해 효소 부족 시 건강 위험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한 사람이 음주를 지속할 경우, 아세트알데하이드에 장기간 노출되어 다음과 같은 질병의 위험이 크게 증가합니다.
-
식도암 및 구인두암: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입과 식도의 점막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는 발암물질입니다. 효소 능력이 낮은 사람의 암 발생 위험은 정상인에 비해 수십 배까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
-
알코올성 간질환: 간의 해독 능력에 과부하가 걸려 알코올성 지방간, 간염, 간경변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습니다.
-
고혈압 및 심혈관 질환: 아세트알데하이드는 혈관 확장뿐만 아니라 심박수를 높여 심혈관계에 부담을 줍니다.
-
알츠하이머 치매: 최근 연구에서는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뇌세포를 손상시켜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왜 사람마다 주량이 다를까요? (치료 및 예방)
똑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유독 얼굴이 빨개지고 금방 취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이렇게 주량이 다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 (효소의 차이):
-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간의 알코올 분해 효소, 특히 2단계에서 작용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ALDH)’의 활성도 차이 때문입니다. 유전적으로 이 효소의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에 더 오래, 더 많이 쌓이게 되어 적은 양의 술에도 심한 숙취와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 중에 이 효소의 기능이 낮은 사람이 많다고 알려져 있어요.
성별과 체중:
-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사람이 많이 나가는 사람보다 빨리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체내 수분량과 관련이 있는데, 체중이 적거나 체지방률이 높을수록 체내 총 수분량이 적어 같은 양의 알코올을 마셔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높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알코올 분해 효소(ADH)의 활성도가 낮은 경향도 있습니다.
음주 속도와 음식 섭취:
-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술을 마시면 간이 미처 분해할 시간을 갖지 못해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 빨리 취하게 됩니다. 반면,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마시면 알코올 흡수가 지연되고 간이 분해할 시간을 벌 수 있어 덜 취하게 되죠.
내 몸을 지키는 현명한 음주 관리법
건강하게 음주를 즐기고 싶다면, 자신의 주량을 정확히 알고 그 이상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또한, 물을 충분히 마셔 알코올을 희석하고 탈수를 예방하며, 단백질이 풍부한 안주와 함께 천천히 마시는 습관이 간의 부담을 덜고 급격히 취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답니다.
알코올 분해 효소의 능력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므로, “술을 마셔서 늘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술을 계속 마시면 내성이 생겨 취기를 덜 느끼게 될 수는 있지만,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독성은 몸에 그대로 축적됩니다.
내 주량 알기:
-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그것이 당신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입니다. 즉시 음주를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음주 전 식사하기:
-
빈속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 흡수가 빨라져 간에 부담을 줍니다. 반드시 식사를 먼저 하여 위장에 음식물이 있는 상태에서 마시세요.
물 많이 마시기:
-
물은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하이드를 희석시키고, 이뇨 작용을 통해 독성 물질의 배출을 돕습니다. 술 한 잔에 물 한 잔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세요.
억지로 권하지 않기:
-
특히 상대방의 얼굴이 빨개졌다면, 더 이상 술을 권하는 것은 상대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알코올 분해 효소 능력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정확히 알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