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한산한 런던 시내를 기백 있게 달리는 토요타의 컬트 클래식, AE86 코롤라의 절제된 마법이 가로등 불빛 아래 반짝인다
사진 맥스 에델스톤(Max Edleston)
이웃 모두가 잠들었을 한밤중에 일어나, 차디차게 식은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두 눈이 전방의 캄캄한 어둠에 적응하길 기다리면서 운전하기 좋은 자세로 시트를 맞추는 것보다 감흥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리처드 버튼이 언더 밀크 우드를 암송하는 그윽한 음색과 겹쳐지며 그 멋진 폭스바겐 골프 광고가 생각난다. 딜런 토마스는 이슬이 내리는 소리와 고요한 마을의 나지막한 숨결에 대해 썼다. 비록 그것은 런던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의 풍경이지만.
토마스가 상상했던 웨일즈 어촌 모습과는 달리 런던은 결코 잠이 들지 않는다. 기껏해야 졸음을 적절히 관리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길 아쉬워하는 도시 소년들이 형광등 불빛 아래 표류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 틈을 노려 달려간다. 텅 빈 버스들은 밤을 보낼 차고지로 향한다. 거리가 반쯤 꺼진 네온으로 뒤덮인 지금은 도시에서 운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다.
침묵은 깨지기를 간청한다. 우리는 딱 그렇게 할 수 있는 도구를 가져왔다. 기어를 2단으로 내린 뒤 액셀러레이터를 다시 힘차게 밟자, 고요한 밤을 찢는 트윈캠 소리에 소호 거리가 살아난다. 이 자동차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지도 않고, 가장 빠르지도 않고, 물론 가장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유리창을 내리고 7000rpm에 달하는 엔진에서 나오는 전기음향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뜻밖에도 이 차는 토요타다. MR2나 수프라 같은 토요타 차들만큼 눈에 잘 띄거나 이국적이지도 않은 모델이다.
근래 토요타는 어떤 형태의 맥락을 제대로 건드렸다. 전설적인 수프라는 BMW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Z4와 대부분의 기계 장치를 공유하는 공격적이고 멋진 자동차로 재탄생했다. 스바루와 제휴해 만든 GT86도 널리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후자는 왜 이상한 숫자 이름을 채택했을까? 그리고 강력한 엔진 힘을 거부한 채 가벼운 무게, 균형, 운전자의 몰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평범한 이름, 코롤라에 있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프린터 트루에노와 레빈이다. 일본 시장에서 이 차는 서로 다른 딜러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그래서 스페인어의 ‘천둥’과 고대 영어 단어 ‘번개’에서 파생된 이름을 붙인 트루에노는 팝업 헤드라이트를 가졌고, 레빈은 헤드라이트가 고정형이다. 시승차는 토요타가 실차로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모델들 중 한 대로, 영국 시장용 AE86이며, ‘코우키’로 알려진 1986-1987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막바지 차량이다.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AE86 코롤라는 감흥이 없지는 않지만 확실히 절제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당연히 지루한 앞바퀴굴림 4도어 및 5도어 모델과 이름을 공유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체는 깔끔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쐐기 모양의 앞부분에 고정된 헤드라이트가 달려 있고, 화려하기보다는 사무적인 생김새의 경사진 패스트백이다. 스포츠카를 사겠다고 약속했던 조부모님들이 집에 끌고 오셨을 법한 종류의 차이다. 터보차저나 슈퍼차저가 없고, 특별한 장치나 속임수도 없으며, 5단 수동변속기와 회전성이 좋은 1.6L 엔진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전방 엔진, 뒷바퀴굴림 방식이다. 그러나 겉모습 너머를 들여다보면 부품들의 합계를 훨씬 초과하는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장 가벼운 일본 시장용 GT 모델의 경우 900kg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운 차다. 6.7인치 후륜 디퍼렌셜은 앞쪽에 실린 직렬 ‘4기통’ 엔진의 무게를 상쇄해주어 앞뒤 무게 배분 균형이 완벽하다. 각 바퀴에는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했고 서스펜션은 앞바퀴의 경우 독립식인 맥퍼슨 스트럿 배열, 뒷바퀴는 잘 배치된 4링크 라이브 액슬 및 코일 스프링을 채용했다. 하지만 정말 이 차를 돋보이게 하고 최고 사양 AE86의 명함 역할을 하는 것은 1587cc 더블 오버헤드 캠 4A-GE이다. 정말 특별한 엔진이 코롤라에서 완벽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블루탑’은 1983년 AE86 출시를 위해 선보인 놀랍도록 가볍고 튼튼한 유닛으로 123마력의 출력을 자랑했다. 넓은 밸브 각도와 대형 흡기 포트가 특징인 4A-GE는 레드라인이 7800rpm으로 설정된 고회전 걸작이다. 또한 토요타 가변 흡기 시스템(T-VIS)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어 매우 영리하다. 이것은 버터플라이 밸브에 장착된 듀얼 흡기 러너 사이를 4200rpm에서 전환, 엔진 속도가 증가할 때 공기 흐름을 관리하여 토크와 출력을 극대화한다.
7만2000km를 주행한 토요타 제공 시승차의 사양은 대부분 순정 상태이지만, 키를 돌리는 순간부터 이 보석이 더 잘 숨 쉬고 왕왕거릴 수 있도록 더 시끄러운 스포츠 배기장치와 튜브형 흡기관이 설치되었다. 너무 많은 침실 조명이 켜지기 전에 소심하게 막다른 골목을 떠나려다 보니 처음에는 이 차가 조금 부담스럽게 –혹은 시끄럽게 –
하지만 편안한 운전석에 앉아 나만의 왕국을 둘러보면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바뀐다. 파란색 천으로 된 좌석과 검은색 플라스틱이 많이 있는 딱 80년대식 실내 공간이다. 전형적이지만 헤드라이트 다이얼 주변에 자리 잡은 대시보드 조명 링 등 세련된 터치가 몇 가지 있다. 큰 타코미터와 넉넉하게 시속 225km 이상을 표기한 속도계를 어두울 때 더 잘 보려면 그것을 돌려 켜야 한다.
대부분의 AE86은 어느 정도 튜닝을 거쳤다. 토요타에서 제공한 이번 시승차도 예외는 아니어서, 흡배기 시스템 외에도 더 단단하고 낮은 서스펜션과 프런트 타워를 가로지르는 스트럿 브레이스를 자랑한다. 심하게 몰아붙여지고 잔뜩 쏠리는 것을 즐기는 종류의 자동차인 셈. 승차감이 다소 불편하지만 익숙해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조장치가 없는 스티어링은 알맞은 무게감을 자랑한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기어 변속과 멋진 엔진 소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도시에서의 활기찬 드라이브를 위한 완벽한 레시피다. 너무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차의 내면으로부터 새어나오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과거 서킷 레이싱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의 드리프터들과 언더그라운드 레이서들이 하치로쿠(86)에 심취해 있을 무렵, 이 차는 가장 높은 수준의 유럽 대회에서 기록적인 전적을 쌓고 있었다. 1984년부터 유럽 투어링카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시작한 토요타가 제조사별 점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까지는 단 세 시즌 밖에 걸리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 190E 코스워스, BMW E30 M3들을 포함한 어마어마한 경쟁자들의 무리를 물리친 것이다.
같은 해, 토요타는 영국 설룬 카 챔피언십(BSCC) 출전자들에 대한 회사 차원의 뒷받침을 마련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는 크리스 호제츠, 앨런 민쇼, 배리 신이 모두 코롤라 GT를 선택하는 결실을 맺었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호제츠였다. 그는 1986년 브랜즈 해치에서 미카엘 순드스트롬의 푸조 205 GTI에게 단 한 차례만 우승을 내주었을 뿐, 아홉 번의 경주 중 여덟 번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집계된 운전자 점수에서 호제츠는 각각 그룹 A와 B를 지배했던 앤디 라우스의 무시무시한 시에라 RS 코스워스, 리처드 롱먼의 포드 에스코트 RS 터보를 모두 앞섰다.
1987년 시즌은 BSCC가 영국 투어링카 챔피언십(BTCC)으로 바뀌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클래스도 개편됐지만 AE86의 놀라운 경쟁력은 다시 입증됐다. 호제츠는 그룹 D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마크 헤일스와 존 둘리를 앞서며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과급장치를 탑재한 채 그룹 B에서 격렬하게 싸운 이들의 차는 RS 터보와 알파로메오 75 터보였다. 1988년 경주차를 코롤라에서 수프라로 바꾼 호제츠의 우승 행진은 막을 내렸다.
유럽의 모터스포츠에서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코롤라 AE86은 MR2의 미니 슈퍼카 같은 외관이나 닛산 스카이라인 같은 명백한 고성능을 갖추지 못했다. 그 차들은 일본 내수시장의 중력으로부터 좀 더 쉽게 벗어나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대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대중문화와 얽혀 있는 AE86에 대한 숭배는 1970년대에 구니미쓰 다카하시가 개발한 옆으로 미끄러지는 주행 방법 이후 생겨나기 시작한 독특한 일본식 스포츠에서 비롯되었다. ‘드리프팅’이라고 알려진 이것은 1980년대에 가속화되어, AE86을 위한 완벽한 시기가 찾아왔다. 이 차는 전방 엔진, 후륜구동 배치와 가벼운 무게로 빠르게 인기를 끌었다.
일본을 벗어난 지역에서 이 모델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커진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마침 시게노 슈이치의 인기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니셜 D가 출시됐다. 두부 배달 소년이자 독학한 드리프트 선수 후지와라 타쿠미와 그의 아버지 분타의 스프린터 트루에노 GT-에이펙스가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군마현 거리와 하루나산 고갯길을 가로지르는 흰색과 검은색 트루에노를 그린 시게노의 생생한 삽화에 전 세계 독자들이 매료됐다.
말하자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자동차 만화 미셀 베이앙과 비교할 수 있는 일본 작품이 당시 젊은 층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미국에서 관심의 물결을 일으켰다. 몇 년 후 컬트 비디오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에 이 차가 등장하여 더 많은 주류 미디어에 그 매력을 더했다.
그러나 AE86의 매력은 소수의 흥미를 충족시키는 저작물이나 자동차 경주의 부분 집합을 훨씬 뛰어넘는다. 시내에 겨우 몇 시간 주차했을 뿐인데도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1990년대 수입품이라고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차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몹시 알고 싶어 하는(아니, 이건 드로리언이 아니다), 자동차보다도 젊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생각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최근 영국 시장에서 열린 경매에서 AE86이 5만 파운드(약 8000만 원)에 낙찰된 걸 보면 새로운 세대의 취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적시에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런던 여행은 그저 제한적으로 재미있을 뿐이다. 이 차의 ‘미드나잇 클럽’ 길거리 레이서 협회들에도 불구하고 혼잡 구역에서는 밤에도 열광적인 운전을 할 수 없다. 딜런 토마스의 저세상 평온을 결코 이루지 못한다. 코로나19 기간 동안에도 이곳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이며, 길거리 청소부, 재활용품 트럭, 우버 운전자들의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오늘에서 내일로 넘겨진다. 사진기자와 헤어지고 코롤라의 앞머리를 남쪽으로 향하자 비로소 혼란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케닝턴, 브릭스턴, 스트리섬, 크로이던을 지나면서 거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셔터를 내린 상점들은 서리 힐즈 경계까지 더욱 넓게 펼쳐진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리는 짙은 어둠과 안개로 뒤덮인다. 수 마일에 걸쳐 도로가 나무 사이로 굽이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차의 성능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신호등과 도로 공사 사이에서 재빨리 분출했던 힘을 긴 코너와 매력적인 직선도로에서 쏟아낸다. 묘기산에서 알게 되는 것처럼 이런 외부에선 허구와 실제의 레이서들처럼 AE86과 손발이 착착 맞는다. 바늘이 치솟아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코롤라를 이해하기 위해 만화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 당신은 바로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Toyota Corolla AE86
판매/생산량 1983-’87/2717 구조 스틸 모노코크
엔진
최고출력 123마력/6600rpm 최대토크 14.8kg·m/5200rpm 변속기 수동 5단, RWD, LSD
서스펜션
앞뒤 안티 롤 바 스티어링 랙 앤 피니언 브레이크 디스크 위드 서보
길이 4210mm 너비 1630mm 높이
0→시속 100km 가속 8.3초 최고시속 196km 연비 13.0km/L 가격 신차 £6995 현재 £50,000
글·그렉 맥클만(Greg Mac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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