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강원도 산간지대와 영동 지방을 하얗게 뒤덮었던 폭설이 시작되던 날의 선자령 백패킹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강원도 겨울여행을 떠나며 마침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계속해서 함께 다니고 있는 미스터리렌치 멧카프 배낭에 오랜만에 눈삽도 장착한 뒤 예정되어 있던 강원도 겨울여행을 떠났고 폭설을 만났습니다. 백패킹 성지라는 선자령 백패킹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영상 뒤에 소개하겠습니다.
선자령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산1-134
새봉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마루길 527-35
폭설 강원도 겨울여행 백패킹 성지 선자령 백패킹 영상 1분 29초.
https://tv.naver.com/v/47457820
강원도 겨울여행 동무들을 보내고 혼자서 목적지인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폭설이 잠시도 멈추지 않은 탓인지 제설이 되지 않은 상태고 안전을 위해 통제한다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방향을 바꿔 고성군 죽왕면으로 향했다. 어찌 된 일인지 이곳도 통제 안내 문구가 덩그러니.
하는 수없이 1시간 30분 거리의 백패킹 성지라 불리는 대관령 선자령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렇게 동해대로를 지나 동해고속도로에 올라선지 얼마 뒤부터 고속도로를 점령한 폭설에 의해 진행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차량이 멈춰 서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
대관령마을휴게소 주차장에 주차를 완료한 시간이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 계획보다 5시간 반 정도 늦어졌다.
이제 입고 갈 하드쉘을 찾는데… 아뿔싸!
이번엔 하드쉘을 가져오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어쩔 수없이 평소 입고 다니던 플리스 재킷으로 대체.
헤드랜턴 불빛에 잡히는 눈 송이들이 그리 크지 않다.
아직 폭설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느낌.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
종종 눈이 쏟아지는 야등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로 봤을 때 그들도 백패킹 성지라 부르는 그곳에서 백패킹을 즐기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은 쌓이고 또 쌓이는 중이다.
한동안의 걸음으로 올레 KT 대관령 중계소 앞 국사성황당 갈림길까지 도착.
발자국 흔적은 있으나 눈이 덮여있다.
내일까지 이렇게 눈이 계속 쌓인다면 하산은 이 길로 하면 좋겠단 생각을 하며 다시 선자령을 향해 걸음을 뗀다.
오늘의 목적지는 선자령 정상이 아니다.
대관령 중의 선자령이야 맞겠으나 선자령 정상이 아닌 새봉 정상을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비록 선자령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강원도 겨울여행을 즐기기엔 충분한 장소인 선자령 새봉을 향한다.
플리스 재킷과 장갑에 더 이상의 눈은 쌓이지 않고 대신 체열로 인해 젖고 있다. 당연히 재킷이 무거워진다.
한국공항공사 강원항공 무선 표지소 앞 갈림길 도착.
박배낭을 멘 상태에서는 이 구간이 가장 힘들다.
경사로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낮아진 전나무 가지가 배낭 헤드에 자꾸 걸리기 때문에 허리를 90도로 꺾거나 무릎을 접어 종종걸음으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공항공사 강원항공 무선 표지소의 보안등 조명이 강해 랜턴이 필요치 않은 구간이기도 하다.
눈밭 경사로를 따라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들.
폭설이 쏟아지는 한밤중의 야등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풍경과 감정들이 교차하는 오묘한 순간들이다.
돈 들여가며 이런 개 생고생을 왜 하느냐 물을 때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건 이런 순간들의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도대체 어떻게 전달한단 말인가.
내가 나에게 이 순간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라면 못 한다.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강원도 겨울여행이 아닌 나만의 강원도 겨울여행이라 말하게 된다.
보수적으로 바라보면 미/ 친/ 짓/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위험하다 말하는 폭설이 내리는 날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박배낭 메고 다니며 눈밭에서 잠을 자려고 돈 쓰고, 몸 쓰고, 시간 써가며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오늘과 같은 날은 위험하다기 보다 귀찮은 날일 수 있다. 특히 선자령처럼 위험 구간이 없고, 완만한 능선 길인데다 오가는 이가 많은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대관령 선자령을 찾는 백패커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가 백패킹 성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어찌어찌 도착한 새봉 정상의 자그마한 데크.
백패킹 성지라 부르는 장소는 아마도 선자령 정상 아래 잔디밭만을 생각하실 텐데 나에게는 선자령 새봉 역시 백패킹 성지라 생각된다. 특히 야등을 할 때는 더없이 좋은 장소라 생각하고 있다.
걷는 동안 배낭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이제 피칭 준비를 한다. 언제나처럼 눈삽을 꺼내 평탄화부터.
오늘 바람이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선자령이다.
평탄화를 하며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 눈을 쌓아 놓는다. 그래야 바람이 텐트를 직격하지 않고 눈을 타고 텐트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바람이 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만일 바람의 세기가 심상치 않다면 눈을 그냥 쌓아놔서는 안 되고 구덩이를 깊이 파거나 바람 방향의 눈이 날리지 않도록 다져놓아야 한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백패킹을 즐겨온 이 텐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할 것처럼 느껴진다.
바닥 찢김은 심실링 테이프와 동전 파스 등으로 때워 사용하고 있지만 슬리브도 많이 닳은 상태이고 스킨 자체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오래되지 않은 라푸마 중등산화가 지난번에 맛이 갔다. 나의 동계산행, 동계 백패킹에 더해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도 함께 했던 녀석인데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풀칠해 놓은 곳이 벌어져 조치가 필요한 상태. 다른 등산화가 없는 것도 아닌데…
내겐 구관이 명관인가 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나만의 만찬을 즐기는 시간.
오늘 강원도 겨울여행을 하며 들렀던 강원옥 강릉샌드 직영점에서 구매한 강릉 기념품과 편의점표 와인 한 잔.
187ml가 담긴 호주산 와인과 강원옥 강릉샌드 3가지 맛을 아무도 사용해 본 적이 없을 눈삽 만찬 테이블 위에 예쁘게 놓아두고 스마트폰의 최애 음악 리스트 중 하나인 재즈 카테고리를 등장시킨다.
“도대체 백패킹을 왜 해요?”
“혼자서 무섭지 않아요?’
“힘든 걸 왜 땀 뻘뻘 흘리고 추위에 떨며 그래요?”
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경험하지 않은 이런 감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어느 관광지를 가나 엇비슷한 기념품을 판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해당 지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매우 특징적인 기념품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강릉샌드가 아닐까 싶다. 제주에는 마음샌드가 유명하고 경주에는 찰보리빵이 유명하고 여수에는 거북빵이나 동백빵이 유명하듯이 강릉에는 강릉샌드. 백패킹 성지에서 맛보는 와인과 강릉샌드가 좋다.
이런 변화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안 그래도 늦은 시간인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다.
내일 산객들이 올라오기 전 정리를 마치고 가능한 한 하룻밤을 보낸 흔적을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게의 산객들께서는 고생했다 수고했다 하시지만 일부의 산객들 중에는 자신들의 무언가를 뺏겼다 생각하는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백패커를 바라본다. 되도록 그런 시선이나 단어들을 마주하지 않도록 빠르게 정리하고 내려가는 것이 좋은 기분을 망치지 않는 방법이다.
백패킹을 가능한 범위에서 청결하게 하는 것은 많이 먹지 않는 것이다.
뱃속에 많이 들이밀지 않으니 나오는 것도 적다.
당연히 해우소를 찾아 고생할 일이 없다.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 정도의 아쉬움은 백패킹에서 얻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음 날, 잠이 깨 멀뚱하게 텐트를 바라보는데 텐트가 이상하게 보인다. 폴이 부러진 건가 살펴보니 폴은 멀쩡하고 쌓인 눈으로 인해 텐트가 좁아진 상황.
옆구리도 눈이 밀려들어와 텐트를 누르고 있다.
텐트 안에서 눈을 힘껏 밀어내며 공간을 확보하고 밖으로 나선다.
아직도 내리고 있는 눈.
올해의 강원도 겨울여행 최고의 날이지 싶다.
2014년이었던가? 16년이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때 눈이 쌓인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이 쌓였다.
그동안의 선자령 백패킹 중 두 번째로 많은 눈이 내린 것.
텐트 문을 닫지 않았더니 그새 눈이 날려 들어와 에어매트 위에 쌓인다.
후다닥 텐트 안으로 들어와 짐을 정리한다.
우선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와 보조배터리 충전 케이블 어제 먹고 대충 던져놓은 강릉샌드 포장지와 비어 있는 와인 잔 등을 정리한 뒤 에어매트의 바람을 빼고 침낭을 먼저 배낭 바닥에 안착시킨다.
대부분의 패킹 순서가 비슷하겠지만 나의 경우 발포매트를 안에 패킹하기 때문에 침낭을 넣은 뒤 다시 당겨 배낭의 앞 공간을 어느 정도 비우고 발포매트를 밀어 넣은 뒤 침낭을 눌러 하단 패킹을 완료하는 편이다.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사용 중에 있는 미스터리렌치 멧카프 75L은 1박 2일 선자령 백패킹에서는 큰 배낭이라 항상 공간이 남는다. 발포매트를 매달지 않고 안으로 패킹하는데도 그렇다.
여유롭게 바닥을 다졌었는데 밤새 쏟아진 눈으로 인해 딱 텐트만큼의 공간만 빼고 눈으로 덮였다.
그 잠깐 사이에 그라운드시트 위에 쌓인 눈.
이렇게 눈이 계속 내리니 하나 길도 즐거울 듯하다.
패킹 완료.
이번에도 헤비 다운을 입지 않았지만 등산을 가든 백패킹을 가든 항상 헤비 다운 한 벌은 꼭 챙긴다.
지난번 선자령 백패킹에서도 이번 선자령 백패킹에서도 입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항상 패킹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쌓인 눈이 얼추 25cm~30cm 정도 되는 것 같다.
게다가 골바람이 불었을 등산로는 더 많은 눈이 쌓였을 테니 이제부터 하산 길은 러셀을 즐기는 시간.
내어딛는 걸음걸음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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