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라인 침공전 (下)
네이버가 공들여 키운 글로벌 메신저 ‘라인’이 일본 정부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놓였다. 미국의 틱톡 강제매각법처럼 각 나라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를 넘어 외국 플랫폼 사냥에 직접 뛰어드는 시대, 한국 IT산업이 처한 상황과 대처 방안을 짚어본다.
日서도 ‘갸우뚱’…미국 틱톡 매각법과 결 다른 일본 ‘라인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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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 숏폼(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대한 강제매각법을 시행한 가운데, 일본은 국민 메신저 라인을 보유한 ‘라인야후(LY코퍼레이션)’의 대주주인 한국 네이버를 겨냥해 지분 축소 압박에 나섰다. 양국의 움직임은 공통적으로 자국민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일본의 조치는 세계 각국의 데이터 주권 보호 흐름에 편승해 라인야후를 한·일 합작이 아닌 일본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개인정보 문제 제기를 줄곧 반박한 틱톡과 달리 네이버가 보안 문제 해결책을 제시했음에도 일본 정부의 추가 압박이 나왔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미국 정치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국내법에 따라 바이트댄스(틱톡 모기업)에 미국 사용자의 정보를 공유하도록 강요할 수 있어 틱톡 사용이 국가 안보 위협이 된다며 ‘틱톡 강제매각법’을 추진했고, 법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식 발효됐다. 이에 따라 바이트댄스는 법 시행일부터 270일(대통령 권한에 따라 90일 연장 가능) 이내에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해야 한다. 기간 내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 내 틱톡 서비스는 중단된다.
이와 관련해 중국 국가정보법 제7항을 보면 “모든 조직과 시민은 국가정보활동을 지지·지원·협력해야 하며, 제공된 모든 정보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기업 등에 개인정보 공유를 요구하면 수용하고 이를 비밀로 해야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의심을 하는 데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도 “이례적” 반응…”네이버 떼내려는 의도”
일본 정부도 라인야후의 개인정보 유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라인야후의 모바일메신저 라인이 사용하는 네이버 클라우드에서 약 51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과 관련해 지난 3월 행정지도(1차)를 내렸다. 이후 라인야후는 2026년까지 네이버(
NAVER)와 시스템 분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보고서를 지난달 1일 제출했다.
하지만 같은 달 16일 총무성은 2차 행정지도에 나서며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50%씩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 ‘A홀딩스’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데, 네이버 지분을 조금이라도 줄여 일본 업체가 합병기업을 주도하도록 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일본이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을 기회로 삼아 다른 국가보다 뒤처진 디지털화 실현과 자국 대규모 플랫폼 기업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다.
국내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라인야후가 총무성이 제기한 보안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제시하고 시행하기로 했음에도 2차 행정지도를 통해 자본 관계 재검토를 재차 요청한 것은 (지분 매각으로) 네이버의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라인의 플랫폼화를 경계하면서 한국기업 네이버의 지배력을 약화하기 위한 건수를 노리던 중 개인정보 유출 이슈가 걸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미국의 틱톡 강제매각법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틱톡과 달리 네이버는 한국에 라인 이용자의 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틱톡 강제매각법과 결은 비슷하지만 그에 비해 근거가 약한 일본의 잇단 행정지도는 진짜 속내가 있을 거라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일본 내에서도 당국의 이번 조치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일본 비즈니스 전문매체 다임(DIME)은 “당국이 행정지도를 통해 기업에 ‘경영체제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이번 조치에 다른 목적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캐논 글로벌 전략연구소의 미네무라 겐지 주임 연구원은 산케이신문 산하 인터넷매체 자쿠자쿠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라인의 이용자는 약 9600만명에 달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행정 서비스에 이를 이용할 만큼 ‘공공 정보 인프라’로 여겨진다. 이런 플랫폼이 (네이버 의존) 상태에 계속 노출되는 것을 당국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여러 논란에도 일본 정부는 이번 행정지도가 지분매각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외국기업 ‘뒤통수’ 역사…재팬리스크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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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라인’의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가운데, 앞서 해외 기업의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해온 일본 행정당국의 행태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외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온 연장선상에서 이번 라인 사태 역시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소재 수출 금지’
가장 최근 사례는 2019년 있었던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건이다. 2018년 10~11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한국 대법원이 내리면서 시작된 한-일 양국 간 외교적 마찰은 이듬해 7월 일본의 ‘공업 소재 수출 규제’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총무성은 “보복이 아닌, 기존 수출구조의 재정비”라면서도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서”라는 허황된 명분을 내세웠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일본이 자유무역 기조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전 세계적으로 잇따랐다.
제재 초기에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소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결과적으로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분야의 자립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수출 제한 조치의 실효성이 없어지자 지난해 7월 슬그머니 이 조치를 철회했다.
◇닛산 위협 받자 카를로서 곤 회장 일본에 강제 억류
2018년 11월 일본 검찰이 구속시킨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은 일본 정부를 속인 ‘긴급 탈출’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건의 배경에도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총동원 된 일본의 행정·사법당국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의 닛산은 합작기업인 닛산-르노 얼라이언스를 갖고 있었다. 이후 대주주 의결권을 강화하는 ‘플로랑주 법’이 프랑스에서 발효되면서 르노의 영향력이 커지자 닛산의 지배력 약화를 우려한 일본 당국이 비위 혐의 등을 씌워 르노에서 내려보낸 곤 전 닛산 회장을 재빨리 구속시켰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 검찰은 곤 회장이 100억엔(약 900억원)의 보석금을 내고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자, 별건 수사를 통해 또다시 잡아 가두는 행태를 반복했다. 곤 회장이 처음 체포된 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CEO가 그를 비판하는 심야 기자회견을 여는 등 겅찰과 닛산이 획책한 ‘기획수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르노와 얼라이언스의 안정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일본 당국에 항의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서구 언론에서는 곤 회장에 대해 “기괴한 종교재판을 받고 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후 닛산의 지분구조 개선 요구 등이 잇따랐다. 곤 회장은 2019년 12월 전세기를 이용해 몰래 레바논으로 탈출하며 1년여 억류 생활을 마쳤다. 43%에 달하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의 르노 지분율은 2022년 10월 15%까지 낮추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이로써 르노가 주도하던 얼라이언스 지배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번에는 네이버 노린 ‘라인 찬탈’ 시도
라인의 모회사 A홀딩스의 자본관계를 재조정하라는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 역시 외국 기업의 성장을 억제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과거 기조에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국민메신저’의 위상과 함께, 동남아 등을 포함해 이미 2억여명의 글로벌 사용자를 확보한 라인을 지배함으로써 신규 플랫폼을 키워내는 데 드는 시간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선 일본 총무성과 A홀딩스 주주인 소프트뱅크 등이 애초부터 라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작업’을 해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라인야후(LY코퍼레이션) 대표가 지난 3월 31일 스톡옵션 3000만주 가량을 포기한 것도 일본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 교수는 “일본이 7월에 1만엔 지폐 인물을 기업가정신의 상징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로 바꾸고, 경제활력을 높인다며 창업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 역행해 외국 기업의 지분을 강제로 조정한다면 과연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일본에 주저 없이 진출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기시다 정부의 지지율이 엄청나게 낮고 보궐선거도 패배하는 상황에서 일본 우익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한국 때리기를 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며 “궁극적으로 라인 지분 조정이라는 선례를 남긴다면 과연 일본에게 득이 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투자기업에 대한 보호, 당연한데…아직은 시기 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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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본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 일본 현지 투자에 대한 우리 기업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우리 기업에 대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양국 협정에 따라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일본정부가 해당 기업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보완·개선을 요구한 상태인 만큼 기업 단위에서의 대응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일본 정부가 행정지도 차원에서 접근한 상태인데, 일각의 우려대로 ‘지분을 팔고 나가라’는 수준이 된다면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내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불이익이 발생하거나 자본적 통제 등이 가시화되면 양국이 맺은 협정 등에 의거해 공식적으로 대응하고 국제사회 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 3월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나섰다. ‘자본 관계 재검토’라는 부분이 포함돼 네이버에 지분을 팔고 일본에서 떠나라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장 논란이 가속화되면서 일본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일본 총무성 관계자는 행정지도의 목적이 ‘적절한 위탁관리를 위한 거버넌스의 재검토를 요청한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매각에 따른 철수가 아닌 경영·조직 관리 등에 대한 강화를 요청했다는 의미다. 자본의 재검토를 ‘특정’한 것이 아니라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아직 적극적으로 개입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일본 총무성의 라인야후 행정지도는 한일 외교관계와는 별개의 사안으로, 과기정통부는 네이버와 협의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네이버 편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다. 이어 “행정지도가 7월1일까지라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 등 네이버 입장에서도 고민할 부분이 많다”며 “네이버 입장을 생각해서 행동해야하기 때문에 (일단) 계속 소통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 협정으로 경제 관계가 얽혀있다. 2003년 1월 투자협정(BIT)이 발효됐다. 한일 투자협정은 양국 투자자가 상대국에 투자를 하는 단계에서부터 내국민대우(자국투자자와 동등한 대우)를 부여하도록 규정한다. 2020년 11월에는 한·일·중을 포함해 호주, 인도네시아 등 15개국이 역내 무역자유화를 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을 최종 타결했다. 현지 투자에 대한 기업의 권리 보호 구제책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은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화 등의 부분에서 상호 협조해야 하는 관계”라며 “아직까지 양국이 맺은 협정을 검토하거나 일본 정부에게 공식 항의할 만한 단계가 아니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긴밀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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