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교수]
내가 최근 한국의 최고 대학들이 중국 일본에 비해 순위가 밀린다는 기사에 ‘투자없는 대학의 성과도 없다’는 포스팅을 했더니, 한국 교수들의 연구에 대한 질과 노력을 질타하는 글들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
나도 그 일원이니 변명을 조금 해 보고자 한다.
1. 우선 ‘대학 랭킹’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학 랭킹이 대학의 연구 성과에 좌우되는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연구 성과도 한 부분이지만, 여러 가지 척도를 섞어서 랭킹을 매긴다. 연구 성과 (질을 따지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교수 일인당 국제 논문 수 등의 양적 지표로 측정) 이외에 학생들의 만족도, 국제화 정도, 산업계의 평판, 해외 학자들이 인식하는 평판도 등 수많은 지표들을 종합해서 만든 지표다. 따라서 랭킹을 발표하는 기관마다 랭킹은 뒤죽박죽이다.
경영대학의 랭킹을 발표하는 몇몇 기관들이 있다. 영국의 Financial Times, 미국의 Business Week (미국의 Top 20 MBA program), US World and News 등이 있다.
KAIST 경영대학은 영국의 Financial Times의 Top 100에 최초로 진입한 실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죽어도 Top 10의 비전을 가질 수 없다.
높은 평가 항목이 국제화이고(학생이 외국에서 얼마나 많이 오고, 외국에 취업하느냐 하는 등), 입학과 졸업시의 급여 차이 등이다. 한국의 획일적 호봉에 의한 급여 체계에서 MBA 아니라 어떤 자격을 갖추어도 급여가 급등하는 경우는 없다.
해외는 그렇지 않다. 왕래가 자유로운 유럽대학과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미국 대학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아시아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홍콩 대학의 중국인 학생도 외국 학생으로 취급된다.
우리 기업이나 동문들의 설문 조사도 외국의 그것들과 많이 차이가 난다. 한국의 주관적 설문 조사는 그 어떤 조사를 하든 비판적이고 평가에 인색하다.
학교 랭킹이 낮아진다는 기사만 뜨면 연구 부실을 들고 나오지만 랭킹에 연구 실적은 그리 큰 항목이 아니다. 홍콩이나 중국계 대학이 크게 부상하는데는 해외 대학들과의 활발한 교류가 한몫 한다. 외국 대학과 조인트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외국 대학 교수들을 수시로 방문 교수로 초빙한다. 그래서 외국대학 교수의 연구 실적이 이중으로 잡히기도 하고, 설문조사에서 중국, 싱가포르, 홍콩, 인도의 대학들에 대한 지명도가 학자들 사이에 높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잘 못한다. 왜 돈이 없고, 외국인 정주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 사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이런 랭킹에 신경도 안 쓴다. 이런 ‘랭킹 장사’에 휘둘리는 것 자체가 후진 대학이라는 뜻이다.
2. 한국 교수들의 연구 외에 딴 짓을 많이 하는 이유
댓글을 보면, 방송에 나가고, 학교 밖의 일들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연구는 언제 하느냐는 비난들이 많다. 맞다. 한국의 교수들, 특히 서울 소재 몇몇 대학의 교수들은 많은 사회적 수요에 시간을 할애한다. 나 또한 그 중 하나다.
그럼 이것이 교수들의 선택인가? 미국의 교수들도 사외 이사하고, 주지사나 대통령 자문위원하고, 방송에 출연하고, 내셔널 미디어에 컬럼을 싣고, 방송에 출연하면 자랑 엄청한다. 하버드나 MIT 같은 명문 대학의 교수들은 이런 기회가 종종 있다. 내가 세미나를 위해 하버드 경영대학에 방문했을 때 잘 알고 지내는 시니어 교수가 하버드 대학의 교수들은 학교 밖에서 학교에서 받는 급여의 1-3배의 수입들을 올린다고 자랑했다. 사외 이사나 고문 등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미국 교수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라고 하는 수요가 없으니 못할 뿐이다. 미국의 영연직 교수가 명예와 돈과 권력이 있는 제안을 하면 안할 것 같은가?
미국의 교수들이 연구에만 전념하는 이유는 연구에 대한 충심에서 오는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기회(수요)가 많지 않고, 학교 일에만 전념해도 충분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두 가지가 겹치기 떄문이다. 수요가 적은 이유는 사회가 성숙해서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축적되고 그들의 선택과 발언을 사회가 존중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문가들이 있어도 사회적, 정치적 위협과 논란의 가능성 때문에 나서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분들이 그러하다. 우리 기업인들이 공개적으로 하고 싶은 말 하고 사는 분들 지극히 적다. 사회(정치)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도 글로 쓰고, 말로 발표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신뢰 부족이다. 담당자의 전문적 선택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의사결정을 외부 위원회를 만들어 의사결정을 전가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신뢰 부족이 만들어내는 교수들의 과외활동의 수요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면에 학교에서의 노력은 보상이 낮다. 연구한다고 연구비라도 지원 받으면 서류작업과 감시의 눈초리에 대응하느라 열불이 난다. 연구비가 교수들 수입인줄 아는 분들이 태반이다. 아니다 연구 설비를 사고 연구원(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대부분 투입된다.
3. 한국 대학의 연구의 질
많은 분들이 한국 교수들이 학생 논문에 이름이나 올리고 질 낮은 연구나 하고 등등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많은 비판들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과장해서 하고 있다.
나는 한국 대학의 평균적 연구를 대변할 입장에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KAIST 경영대학의 요즘 젊은 교수들은 국제적으로 Top 저널 (해당 분야의 Top 3)에 논문을 몇 편 실어야 영년직에 임용될 기본 자격을 갖춘다. 이들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명성을 갖는 연구자들이다.
우리 민간 기업은 입사가 영년직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성과로 퇴출을 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속한 경영대학의 신임 교수들의 생존 확률은 미국의 주립대학에 비해 높지 않다.
그런 교수들이 지도한 토종 박사들이 전세계 대학에 정규직 교수로 진출한다. 나도 최근 매년 그렇게 졸업생을 미국, 캐나다, 유럽, 싱가포르로 보냈다. 카이스트 재학생, 졸업생이 국제 학회에서도 가면 펄펄 난다.
너무 옛날 편견이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들 하는 것 같아서 변명을 해보았다.
문제가 많다. 하지만 일방적인 편견으로 매도하는 것 또한 옳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강조하지만 나는 한국 대학 전체를 대변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 두 군데에서 오랜 교수 생활을 해본 나로서는 구조의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 던져지는 일방적이고 단순한 도덕적 비난들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모든 게 빨리 변화하는 사회다. 대학도 그 중 하나다. 규제의 족쇄만 풀어주면 더 빨리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족쇄를 푸는 구조적 개혁은 안하고, 교육부의 노예화는 가속되고 있다.
그리고 자유를 주었다가도 소수의 일탈이 생기면 더 큰 규제가 덮친다. 어느 집단이나 기회주의적인 소수는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인정하지 못한다.
카이스트가 어렵게 정립한 엄격한 교원 인사제도가 외부에 의해 와해되고 있다.
학교가 실력이 안 되어 퇴출 결정한 교수들이 외부의 ‘교원인사소청위원회’에 사안을 끌고 가면 학교가 내린 퇴출 결정을 번복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립대학들이 과거 재단 비리를 고발하는 교수들을 인사제도를 악용해서 퇴출 시키고 겁박했다는 과거가 만들어낸 제도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대학의 결정마저 믿지 않는다. 이게 한국의 신뢰 수준이다. 이 기구는 조속히 폐지되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 랭킹에 목매는 것도 한국적 현상이다. 그리고 대학 랭킹을 올리는 모든 노력에는 돈이 든다. 그래서 투자 이야기를 한 것이다.
미국의 원로 학장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It is impossible to motivate faculty members but can be incentivized” (교수들을 동기 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직 인센티브로만 움직일 수 있다)
결론: 대학 부실, 도덕의 문제 아니다. 제도와 재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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