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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작품 선택 기준은 임팩트, 죽는 캐릭터도 의미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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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배우 김갑수(67)는 선한 역과 악한 역을 가리지 않고 연기한다. 망가지는 코미디 연기도 썩 잘 어울린다. 오랜 기간 사극에 강점을 보여왔으며, 중간에 죽는 배역, ‘사망연기 전문 배우’로도 유명하다. 목소리는 중저음 톤의 울림이 좋아 지금도 EBS ‘극한직업’ 등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김갑수는 최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여주인공 해인(김지원)의 할아버지이자 퀸즈그룹 회장인 홍만대 역으로 열연했다.

그는 선역, 악역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데 대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한 가지 이미지가 생겨야 한다. 그래서 나쁜 역을 하면 그걸로 한동안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다 확 바꿔야 하는데. 그렇지만 연기자는 다양한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12회에서 사망하며 중도하차했다. 혼수상태와 치매에 빠졌던 그가 여러가지 인생의 의미를 함축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해 여운을 남겼다.

“작가는 대본에 ‘죽어’라고 썼지만, 홍만대 입장에서 마지막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봤다. 어려서 구두를 닦아 그룹을 이뤘지만 결국에는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 돈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 그 기분이 어떨지를 생각했다. 인생에 대한 회한을 느꼈을 거다.”

김갑수는 “홍만대를 보자. 그룹 오너에게 중요한 건 후계자다. 큰 아들은 배신하고 떠났고, 작은 아들 범준(정진영)은 인정하기 힘들다. 범자(김정난)도 그렇고. 큰 손자는 어려서 죽고 작은 손자 수철(곽동연)은 어리버리. 결국 손녀인 해인(김지원)이 맡게됐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어렸을때 홍만대의 말동무, 비서처럼, 부인처럼 믿었던 모슬희(이미숙)가 그런 일을 벌였다면 어떠했을까? 홍만대 입장에서는 회한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모슬희를 미워할 수가 없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애증이 교차한다. 어린 시절 이 집에 들어와 하녀처럼 살면서 홍만대만이 인정해준 거다”고 설명했다.

배우가 나이를 들면 분량이 줄어들고 존재감도 약화되기 쉽다. 하지만 김갑수는 그렇지 않다. 그는 “죽는 역할이라도 지나가면서 죽는 역할은 안한다. 죽어도 의미 있어야 한다”면서 “내가 작품 고르는 기준은 작품의 임팩트다. 임팩트가 없으면 하나마나다. 시청률이 낮아도 기억하는 것은 임팩트”라고 말했다.

김갑수는 ‘눈물의 여왕’의 박지은 작가가 “재밌게 잘 쓴다”고 했다. 홍만대 집안이 돈은 많지만 개판 5분전이다. 해인은 죽을 거라는 의사 판정을 받았고, 모슬희는 음모를 꾸민다. 그럼에도 재밌는 이유는 작가가 심각하지 않게 잘 풀어내고 있기 떄문이라고 했다. 그는 “상황은 판타지 같은데 현실이 깔려 있다. 거기에 재밌는 얘기를 얹어놓았다”고 말한다.

마담뚜인 그레이스 고(김주령)가 재벌 집안을 다 말아먹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김갑수는 “작가는 그런 이야기 보다는 인간과 인간관계, 부부관계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얘기에 초점을 맞췄다. 때로는 슬프게 바라보고, 미워하면서, 또 이해하면서 바라본다”고 말했다.

김갑수는 배역이 납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물이 좀 풍부해야지. 사냥하러 가서 수현이에게 총 못 쏜다고 할때, 나도 장난을 친다. 재벌 회장이 항상 점잖은 게 아니다. 기업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때 회장의 모습이 나오지, 밥 먹을 때는 보통 사람이다. 수현을 놀릴때 나도 놀리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살짝 삐치고.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됐으면 한다.”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해인과의 교감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홍만대 회장은 손녀인 해인에게 모든 걸 물려준다. 그렇다면 해인과 할아버지의 관계나 교감 같은 게 필요했다. 일의 책임감, 손녀로서의 입장 등이 포함된 대화의 장면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김갑수는 촬영 현장에 나가면 ‘어른’이다. 하지만 폼 잡지 않는다. 농담을 해서 현장 사람들을 웃게 한다.

“현장은 예민, 민감,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주변에서 소리만 좀 나도 NG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서 할 때는 집중해서 하고, 나머지는 웃자. 현장이 재밌어야 하는 게 나의 지론이다. 워낙 힘든 곳이라 항상 긴장할 수는 없다. 드라마를 같이 해본 사람들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눈물의 여왕’을 촬영하면서 김수현의 연기를 새롭게 봤다고 했다. “1~2회가 끝나고 김수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현아 너 진짜 잘한다’. 너 또래 젊은 연기자 중에 탑이야. 이 역할 쉽지 않아. 집은 시골 출신, 데릴사위 비슷하게 들어와, 부인 해인은 죽는다고 그러고, 개판인데도 복합적인 연기를 잘해. 이 놈이 (문화계를) 끌고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진심이야.”

“연기자에게는 잘한다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 연기는 객관적이 아니고 주관적이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만들어주는 게 감독이다. 감독을 믿어라. 내가 주관적으로 연기하지만 내가 옳게 연기하는지는 감독에게 맡겨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연기한다. 감독께 이렇게 생각하면 안될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김갑수는 ‘신데렐라 언니’ 등에서 함께 연기했던 배우 이미숙과 오랜만에 만나 멜로 연기까지 하게돼 좋았다고 했다. 김갑수는 “특히 작가가 나이 먹은 노인네들 이야기를 추하지 않고, 젊은 애들의 섬씽, 인간적인 믿음과 연민까지 다 넣어 선을 넘지 않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김갑수는 어떻게 에너지와 열정을 유지할까? 그는 “삶의 열정이 있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러지 않으면 힘들다. 나도 감정연기가 너무 힘들어 50대초반에 연기를 못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 신이 끝나면 혼자 앉아있기도 했다”면서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뛰어넘을까가 아니다. 세월이 가니까 다음 작품을 만나면 이걸 어떻게 만들어 낼까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역시 열정을 가지게 된다”고 전했다.

김갑수는 사망연기 전문배우로 특화돼 있다. 그만큼 죽는 연기도 효과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는 “탄생도 중요하지만 죽음도 중요하다.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죽느냐? 그가 죽음으로 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드라마에서는 특히 이런 게 중요하다. 이번에도 죽는다는 걸 알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좀 더 왔다”고 했다.

궁예 최측근 보좌관인 종간 역을 맡은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70회에 죽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150회까지 갔다. 시청자들이 재밌어 하니까 죽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연개소문’에서는 수 양제를 맡아 빌런 역할을 너무 잘해, 한동안 당나라로 넘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김갑수는 연기경력만 47년이다. 나는 그가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나 취재를 한 것 같다. 그는 매체연기로 받은 출연료를 극단 운영에 쓰기도 했다. 지금은 극단 활동을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에미넴 등 세계 유명 힙합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요즘은 비비킹 등 블루스 음악에 빠져있다고 했다. 시간이 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몇년전부터 일렉 기타를 배우고 있다.

2년동안 작품을 안하고 뭘 했는지를 물어보자 ‘극한직업’ 내레이션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드라마는 픽션이지만 다큐는 현실을 알 수 있다. 배에서 뭘 끓여먹는 것만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김갑수에게 또 해보고싶은 역은 없는지 물었다. “없다. 할아버지, 아버지, 사장님 역할이 별로 없다. 사극할 때부터 하인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좌의정 밑으로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마당을 쓸 줄 모른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는 벌써 차기작들을 준비하고 있다. 중년과 노인들에게 정보도 주고 얘기도 나누는 유튜브도 구상중이다. 설렁설렁 하는 듯 하지만 엄청 일을 많이 하는 김갑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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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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