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출신의 아티스트 알프레도 데 라 마리아(ALFREDO DE LA MARIA)는 모터스포츠 역사의 극적인 순간을 생생하고 매력적인 화풍으로 포착한다
1906년 밴더빌트 컵(Vanderbilt Cup)에서 강력한 로레인-디트리히(Lorraine-Dietrich)를 타고 먼지 가득한 롱 아일랜드 트랙을 질주하는 아서 듀레이(Arthur Duray)나 황혼의 르망 피트에서 긴장한 필 힐(Phil Hill)의 모습 등 알프레도 데 라 마리아(Alfredo de la Maria)의 웅장한 그림은 정말 매혹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남미의 거장은 상상력이 풍부한 관중, 사실적인 주차장 디테일, 화려한 건축물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극적인 조명과 결합된 이 작품들은 관객을 끌어당기는 영화 같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알프레도의 방대한 라이브러리는 세부 사항과 장소에 대해 주요 참고 자료를 제공하지만, 그의 작품 중 어떤 것도 특정한 역사적 이미지를 모방하지 않는다. 알프레도가 ‘우승했어야 했다’에서 생생하게 표현한 것처럼 빗속의 르망에서 재규어 D 타입을 드리프트하는 스털링 모스가 스쿠데리아의 거친 페라리 375에 쫓기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는 사진가는 아무도 없다. 들라이예 135 스페셜 오너였던 알프레도의 운전 경험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이디어에 영감을 주지만, 자동차든 드라이버든 그의 피사체는 항상 진정성 있게 보인다.
알프레도는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건축을 공부한 후 우루과이 수도에 있는 에스쿠엘라 나시오날 데 벨라스 아르테스(Escuela Nacional de Bellas Artes)에서 회화와 조각에 집중했다. 18세 때 알프레도의 일러스트는 지역 신문에 실렸지만, 부유한 폴로 선수들을 위한 첫 번째 그림 의뢰를 받고 푼타 델 에스테에서 데뷔전을 열게 된 것은 승마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초기에는 해양과 항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1966년, 아직 21살의 나이였던 알프레도는 유럽으로 건너가 3년간 파리에 정착했다. 파리의 유명 갤러리는 특히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호아킨 소롤라(Joaquín Sorolla)의 작품을 통해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다. 남미로 돌아온 알프레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고향으로 삼고 잡지 , , 의 드라마틱한 표지 아트 등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알프레도의 이력에서 생명을 불어넣는 재능은 자동차를 주제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자동차 행사인 산 이시드로에서 열린 오토클래시카(AutoClásica)에 작품을 전시하면서 정기적인 수입과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유화와 대형 캔버스로 작업하는 알프레도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유럽 무대의 경쟁을 받아들였다. 역사적인 건물, 붐비는 항구, 꽉 찬 관중석의 복잡한 배경도 인물과 건축에 능통한 알프레도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모나코를 둘러싼 웅장한 클래식 파사드부터 시칠리아의 메마른 산길까지, 알프레도의 작품 속 레이싱 액션은 흡인력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실주의적인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효과는 인상주의 기법으로 포착되었다. 회전하는 와이어 휠에 대한 그의 연구를 따라잡을 수 있는 자동차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 레트로모빌, 테크노클래시카, 카발리노 클래식 등 최고의 클래식 자동차 쇼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의 전시회는 언제나 주요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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