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핸섬가이즈>의 이희준 배우를 만나다
대중은 캐릭터로서의 배우를 실제와 동일하다고 믿기 쉽지만 배우의 연기로 덧씌운 캐릭터와 일상의 개인은 많이 다를 때가 많다. ‘천의 얼굴’, ‘팔색조’란 말이 배우 이름에 붙어 다니는 이유다. 캐릭터와 일치화되어 사랑받거나, 욕을 무진장 먹거나. 대중에게 각인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성공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 프레임이 덫이 될 수 있지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이만한 수직 상승 방법도 없다.
6월 25일 <핸섬가이즈>의 ‘상구’를 맡은 이희준 배우와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얼마 전 [살인자ㅇ난감]의 ‘송촌’으로 만났던 이미지가 선명한데 [지배종]으로 약간 워밍업 하다가 <핸섬가이즈>의 상구로 마음속에 훅하고 들어와 버렸다. 핑크색 점프슈트와 단발머리 반다나의 환상의 조합은 볼수록 사랑스러워지는 이상한 마법이다.
어떤 역할도 이희준 하면 하나로 규정할 수 없어 난감해진다. 인터뷰 장소에 나온 이희준은 사실 긴장했다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진지한 표정에서 언뜻 보이는 미소, 오래되어 보이는 빈티지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멋스러움이 배가 되었다.
대화가 무르익자 시사회의 좋은 반응 때문에 많이 고무되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언론시사회 때 거의 만장일치로 재미있다는 영화는 많지 않은 걸로 안다. 다들 우리 영화를 도와주려고 하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호감형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아직 개봉 전이니, 부담은 많이 되는데, 심호흡하고 명상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애써 기대되는 마음을 다잡았다.
순수한 상구 즐기면서 망가져
-어떻게 끝내려고 그러나 싶을 정도다. 그다음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다. 코미디와 오컬트가 합쳐지는 혼합 장르라 독특함도 큰데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남들을 웃기고 싶고 연기를 잘해서 웃기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극단에서는 코미디 연기를 한 적 있지만 매체를 통해서는 <핸섬가이즈>가 처음이다. 저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해 주시고 제안 준 남동협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단편을 연출해 보니 알겠더라. 캐릭터에 잘 맞아서 캐스팅했어도 막상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기에 여러 리스크를 감안하고 제안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코미디에서 오컬트 장르로 넘어가는 건 순옥(박경혜)이 나오면서부터다. 끝내 신부가 분노의 총알을 쏠 수밖에 없는 혀놀림(?) 센스가 대단했다. 순간 공포로 가도 될 것 같았는데 코미디까지 가져가려는 센스가 놀라웠다. 이런 장르를 관객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그 지점도 적절히 배합하고 보기 쉽게 만들었더라. 원작을 봤으나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다. 원작이 있는 경우 따라가기도 어렵고 새로 만들기도 어려운데 감독님이 그 밸런스를 잘 맞추더라”
-최근 <황야>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살인자ㅇ난감]의 살인마, [지배종]의 국무총리 등 무게감 있는 역할을 연이어 맡아, 순진무구한 상구 캐릭터가 환기되는 것 같다. 오랜만의 코미디 연기라 신났을 것 같은데..
“틀에 박힌 대답 같은데 다 똑같은 마음으로 진지하게 준비했다. [살인자ㅇ난감]의 송촌이나 [마우스]의 고무치 같은 경우 촬영 끝나고 잔상이 커서 치유하는 시간이 걸렸다. 6개월 동안 송촌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애쓰다 보니 부작용이 컸다. 악역을 하면 쾌감도 물론 있다. 감히 일상의 이희준이 해서는 안 되는 게 허용되니까. 욕도 많이 했다. 아직 공개 전인 [악연]을 찍을 때도 못된 양아치 역할이라 욕이 민망했지만 쾌감이 있었다. 그게 배우의 재미 중 하나다.
대신 상구는 부작용 없이 즐겁게 작업했다. 상구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하고, 누구든 안 싸우고 행복했으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다. 실제 부산의 숲에 70여 평 산장을 지었는데 방해 없이 몰입해서 촬영했다. 산장 왼편에 염소 묻고, 뒤에서 톱 갈고, 앞뜰에서 관 만들고 연극 무대처럼 동선이 정해져서 집중할 수 있었다”
-이야기도 있지만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다. 과거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집요한 관찰로 완성해 간다고 했었다. 섹시하고 섬세한, 그리고 러블리한 ‘상구’를 만들어간 과정을 듣고 싶다.
“일단 인물에 다가가려는 질문을 한 후 헌팅을 시작한다. 마치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여행 가는 것과 비슷한데 배우로서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게 재미있다. [살인자ㅇ난감]은 지인 중에 이런 분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서치 했던 거다. [지배종]도 서치가 필요했다. 이희준으로서 국무총리의 마음을 기억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공부했다.
일단 상구는 외모 망가뜨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웃음) 유년 시절의 친구 중에 느낌이 비슷한 친구를 참고했다. 덩치는 큰데 말은 좀 느리게 하고 고향에 있을 법한 특정인이 떠올랐다. 배역 안 맡을 때는 일부러 헤어 손질을 안 하는데 해외 촬영 후 공백이 길어져서 상구의 단발머리 기장도 완성되었다. 상구를 보고 성민 형이 꽁지머리를 떠올렸고 셔츠 목탄 자국을 집중해서 설계하더라. 저도 이에 질 수 없어서 부황 자국을 만들었다. 키득거리면서 창작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우리들끼리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웃겨서 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박지환하고 염소 사체 들고 만나는 장면을 찍는데 (저랑 형의 모습을 보고) 놀라더라. 그 장면이 박지환과 처음 대면하는 거였다. 처음 봤는데 연기도 이상하지, 강아지도 안고 있지, 핑크색 점프슈트 입고 있지.. (웃음) 저희를 본 상대방이 더 당황스러워했다.
감독님은 슈퍼마켓 장면에서 ‘불편하고 긴장해서 인상 쓰는 표정’을 요구했다. 상대방의 오해를 부르는 인상인데 세 가지 버전으로 보여드렸고 더 재미있는 컷이 쓰였다. (지나고 보니)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하면 더 잘할 것 같다. (웃음)”
-상구를 만난 아내 이혜정은 어땠는가.
“아내는 언제나 응원해 주기 바쁘다. 공연에서 키스 장면이 있는데 질투하는 척하다가도 역시 응원해 주더라. 다만 ‘집에서 더 뽀뽀하고 가라’고 하긴 했다. (웃음) 오랜만의 코미디라서 아내도 반가워했다. 살인자 역할 할 때는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져 있으니까”
대놓고 웃겨주자 작정
-애착 반려견 봉구와의 케미도 남다르다. 한시라도 상구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따르더라.
“봉구가 표정 연기를 좀 하더라. 영화 안에서 춤출 때 같이 한 게 있는데 연기를 참 잘했다. 봉구 주인님이 봉구 특기를 여러 개 말씀해 주셨고 그중에서 할만한 걸 찾았다. 그게 설거지 댄스 중 엉덩이 치는 동작이다. 너무 잘해서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
-두 분은 경북 출신이자 극단 차이무 때부터 함께 해와서 남다른 케미가 느껴진다. <남산의 부장들> 이후 이성민 배우와 또다시 만났다. 이성민 배우는 앙상블 연기가 익숙해서 서로의 포지션을 잘 지켰다고 했다. 남동협 감독은 둘이 죽이 맞아서 편집실에서 한 컷을 고르는 데 고심했다고 했다. 연극에서는 코미디 물을 해봤지만 영화에서는 처음이라 들었다.
“저랑은 연기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저는 상황이 이해되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움직이는 데 성민 형은 감독님의 요구 몇 초 만에 몸을 던져 버린다.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한번 성민 형과 작업하면 다음번에 무조건 찾겠구나, 감탄했다.
형이랑 워낙 코미디 연극을 많이 했었다. 관객의 웃음을 받아서 넘어가는 경험을 서로 잘 알고 있다. 형하고 진지한 작품으로 호흡 맞출 때도 좋지만 이번에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벌통을 건드려서 벌에 쏘여 입에서 벌이 나오는 장면은 CG다.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게 어려운 거다. 성민 형은 벌이 식도 어디쯤부터 올라오고 나와서 어디로 날아가는지를 표현하더라. 요구사항의 120%를 해주는 배우는 누가 마다하겠나. 밤이고 낮이고 연기 생각만 하는 선배다”
-14살 차이를 극복한 공승연 배우와 자연스러운 설거지 댄스도 즐거워 보였다.
“시나리오에는 ‘상구가 미나와 설거지 춤을 춘다’라고만 적혀 있었고, 음악만 정해진 상태였다. 안무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전날까지 아무 말도 없어서 불안했다. 방에 혼자 들어가서 음악 틀어 놓고 안무를 짜보는데 갈피를 못 잡겠더라. 새벽에 김설진 안무가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말하니까. ‘플러팅 하는 상황, 사랑 고백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더라. 그 말을 듣고 쉽게 풀렸는데 막상 화면으로 보니 부끄럽다. 호주에 사는 큰 새가 구애하는 것처럼 보여서 불편했다. (웃음)
승연이는 질문이 많은 친구다. 선배들한테도 잘한다. 한참 아저씨인데도 항상 이야기도 들어주고 웃어주는 리액션 왕이다. 저희끼리 속없이 진짜 재미있는 줄 알고 실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셋의 사이가 좋아서 영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던 거다”
-단순히 ‘웃겨주자’고 작정한 연기 같아도 숨은 의도, 메시지를 찾을 수 있어 매력이다. 혹시 일상에서 외모 때문에 겪었던 해프닝이 있나.
“주제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외모가 다가 아니다’,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자’ 정도겠다. 제가 덩치도 큰데 편하게 생겼는지 왜 절 만만하게 보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여러 명이 있어도 꼭 취객이 저한테 시비를 건다. 예전에 김동현 선수라고 오해하던 분이 계셨는데 정정하지 않고 사인까지 해드렸다. 이번에 [놀라운 토요일] 나가서 직접 김동현 선수에게 말해줬었다”
-남동협 감독은 살짝 2편이 만들어지면 미나와 상구의 러브라인을 생각해 보겠다고도 했다. 원작은 두 사람의 키스 장면으로 마무리되고 감독은 재필과 상구가 유튜버가 되는 장면을 찍었었는데 삭제했다고 하더라. 아쉬운 마음은 없나.
“일단 잘 돼야 2편도 나올 거다. (웃음) 감독님이 할 생각이 있다면 저도 믿고 따라가야겠다. 나라마다 귀신이 있으니 글로벌로 가도 좋지 않을까. 속편이 만들어질 여지는 많다.
유튜버가 되는 장면이 있었나.. (촬영한) 기억이 안날 정도면.. 아쉽지 않다.(웃음) 원작이 있고 그걸 보게 되면 아무래도 종속되어 버린다. 송촌도 웹툰 분위기를 실사화하는 캐릭터 조절이 연출자의 판단이었던 것처럼, <핸섬가이즈>도 원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창작물이 나온 거 같다.
저도 연극을 영화 시나리오로 옮겨 보려고 노력했는데 원작을 쉽게 벗어날 수 없더라. <대학살의 신>처럼 한정된 집안에서 8명의 가족이 떠드는 수다 코미디를 한편 만들었는데 후반 작업 중이다. 오랜 친구인 오인식, 진선규가 도와주었다. 매체적인 각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연극은 한정된 사람만 보게 되니까 연극을 영화적으로 각색해서 다양한 인물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무대는 놀이터이자 안정제
-영화, 드라마, 예능까지 접수했다. 최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하루가 바쁠 것 같은데 꾸준히 연극 공연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리고 있다. 20년 넘게 연기했던 동료랑 만나면 행복하고 즐겁다. 오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까 하루 종일 재미있고 치유되는 것 같다.
경력이 있다 보니 주변에서 이런저런 모니터링을 잘 안 해 준다. 그 친구들은 서로 너무 잘 알아서 각자 연기 멘토링도 해주고 그런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냐. 응원뿐만 아니라 무례하지 않게 따끔한 충도 한다. ‘그런 연기는 가짜 같다고’ 솔직히 말해준다.
무대는 놀이터다. 공연을 평생 하고 싶을 정도로 저에게 소중하다. 특히 진선규가 어릴 때부터 노력했던 결심이 열매 맺는 것 같다고, 멋지다고 응원 문자를 주었다. 오랜 동료가 해주는 말이 감동이 더 큰 법이다”
-평소 후배들의 질문에 끝없이 답변해 주는 선배, 쉽게 설명해 주는 선배로 알려져 있다. [살인자ㅇ난감] 인터뷰에 최우식 배우가 질문을 많이 했었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저도 질문이 많았는데.. 손석구, 최우식이 질문이 더 많았었다. 어려웠다. 웹툰을 실사로 옮기는 싱크나 톤도 조절해야 했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까도 고민했다. 그런데 워낙 스스로 질문을 좋아하고 연기 토론하는 것도 즐긴다. 내가 겪은 어려움을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해서 쉽게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주변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선배들에게 받은 게 많다. 여기 앉아서 인터뷰하고 있는 것도 다 선배님들 덕분이다. 공연 때도 문성근, 강신일 선배가 작업했던 감독, PD에게 소개해 주고 그러셨다. 저도 그분들에게 받은 만큼의 2배는 못 해도 조금이라도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최근 <대치동 스캔들>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안소희’ 배우가 연극 <클로저>를 하게 된 이유가. 이희준의 추천이었다고 하더라.
“지난주에 연극 봤는데 첫 연극을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싶을 정도로 잘하더라. 가수 출신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짧게 연기할 기회는 있었겠지만 연극처럼 그 시간을 장악해야 하는 연기는 다르니까 추천했다. NG 없이 한 호흡에 캐릭터 전체를 책임지는 것을 해봐야 배우로서 더 성장하는 거 같다”
-이성민 배우가 라디오에서 ‘<극한직업>을 넘어서는 재미’라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핸섬가이즈>를 통해 배우 이희준은 어떤 점을 얻었나.
“성민 형이 그렇다면 저도 그렇다. (웃음) <극한직업>은 진선규가 더 유명해진 아름다운 영화지만 <핸섬가이즈>는 완전히 색다른 형식의 영화라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웃음)
후대까지는 모르겠고 동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제 연기가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 기부하거나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아티스트니까 재능을 살려 작게나마 영향을 주고자 한다. 제가 맡은 역할이 선역이든 악역이든, 웃긴 역할이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삶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다. <핸섬가이즈> 찍을 동안 행복했고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괴롭지 않고 행복하면 됐다.
육아할 때도 6살 아이와 함께 보낸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도 피곤했지만 대다수가 즐겁게 본 영화 인터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현상이라, 여전히 긴장을 되지만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즐기려고 한다. 잘 부탁드린다”
글: 장혜령
사진: BH엔터테인먼트
핸섬가이즈 감독 출연 장동주,강기둥,빈찬욱,김도훈,박정화,박경혜,이서환,송유현,제이미 호란,진태건,우현,복 순,남동협 평점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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