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이겨볼 소장각 공포영화 ①
「포제션」 시작부터 끝까지 광기의 에너지
점점 더워지는 여름 날씨는 어느덧 참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잠시만 서 있어도 지치는 더위는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우기 바쁘다. 한 달 이상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지 않겠나. 곧 녹아버릴 듯한 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닌 요즘 날씨. 한풀 꺾이겠으나 9월 중순까지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폭염을 날려 버릴 나만의 방법을 공유한다. 필자는 호러, 공포, 고어, 오컬트, 슬래셔 등 장르물을 고전영화보다 더 빨리 접하며 자라왔다. 그때 단련되었던 무쇠 심장은 훗날 믿음직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지만. 그럼에도 멘탈을 뒤흔드는 영화는 여전히 존재하고 트라우마로 남아 가끔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막바지 더위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호러 영화 애호가도 찝찝하고 무서워서 며칠 동안 시달렸던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남은 더위 시원하게 보내길 기원하며 공포에 맞서는, 혹은 함몰되어가는 여성 캐릭터의 하드캐리에 끌려가 보길 바란다.
「포제션」은 1981년 공개되어 제34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자벨 아자니’는 퇴폐적인 ‘안나’, 순수함을 겸비한 ‘헬렌’을 오가며 1인 2 역했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를 만들 때 태주 역의 김옥빈에게 안나를 레퍼런스로 일러준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란 말 그 이상은 생각나지 않는 양극단을 훌륭히 소화했다. 아마 영화사 100년에 남을 만한 캐릭터 해석력이라 할 법하다.
4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여전히 회자되는 지하철 장면은 시청만으로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기 충분하다. 파란 원피스를 입고 빙의인지, 변신인지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동작을 취하면서도 쾌락을 탐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흥분. 무척 괴로워 보이지만 그것마저도 즐기는 듯한 광기가 폭발하며 보는 사람의 영혼까지 잠식해 버리기에 충분하다.
이자벨 아자니는 촬영 종료 후 정신적인 치료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작품은 아무나 도전할 수 없고, 누구나 소화하기 힘든 극강의 피폐함이 살아있다. 덕분에 상대역이었던 ‘샘 닐’의 경우 생고생했음에도 티가 나지 않아 안쓰럽다. 그만큼 이자벨 아자니의 장악력이 크다.
전쟁 중 스파이로 활약했던 마크(샘 닐)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 안나(이자벨 아자니)는 문전박대다. 오랜만에 집에 왔건만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차가운 냉대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내 집에 들어가겠다는데 애걸복걸해야 하는 상황, 뭔가 달라진 아내가 낯설기만 하다. 아내는 점점 더 가혹해진다. 당신 몰래 바람을 피웠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도 모자라, 나가 줄 것을 요구한다. 이 상황이 어리둥절한 하지만 어린 아들을 위해 일단 참기로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변하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어 사립 탐정을 고용해 미행 붙인다. 거듭된 추궁에 집을 나간 아내를 쫓던 탐정은 주검으로 돌아오고, 그사이 마크는 아내의 내연남 하인리히(하인츠 베넌트)를 만나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편, 아직 돌봄이 필요한 아들을 수시로 놔두고 집을 비우자 유치원 선생님 헬렌(이자벨 아자니)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둘은 심적으로 가까워지게 되고 아내와 닮은 헬렌과 교감하며 대리만족을 키워간다. 결국, 마크는 아내를 백방으로 찾던 중 또 다른 불륜 상대와 동거 중인 아파트에 다다른다. 아내는 그것에게 완전히 몸과 마음을 잠식당해 버린 후였고 마크는 점차 미쳐간다.
영화는 크툴루 신화(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시)에서 영감받은 듯한 촉수 괴물을 등장시켜 기이함을 더한다. 처음부터 엑셀만 밟아가는 강력한 에너지가 마치 화산 분출 과정처럼 폭발하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른다. 그 때문에 특별한 줄거리나 사건의 개연성, 캐릭터의 존재 이유 등을 따지는 게 의미 없을 정도다. 그저 흘러내리는 용암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듯이 광란의 에너지에 탑승하기만 하면 만신창이가 되어 끝난다.
내가 무엇을 본 건지, 왜 그런 건지 굳이 따지기보다. 무언가에 사로잡혀 빠져나올 수 없어 발버둥 치는 고통을 체험하는 영화다. 광란에 사로잡혀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안나는 남편, 내연남, 괴물과 몸과 마음을 섞으며 변한다. 행복하지만 않은 결혼생활에 빗댄 은유로 해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다. 특히 베를린 장벽 붕괴 전의 서독이 배경인 탓에 기괴한 분위와 미장센도 함께 시너지를 이룬다.
최근 할리우드 IP의 재해석 바람에 「포제션」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직 많은 것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샘 닐 역할에는 ‘로버트 패틴슨’이 물망에 올랐으며 제작에도 관여한다고 한다. 이자벨 아자니 역은 미정이다. 과연 21세기 「포제션」은 어떤 감성으로 다가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장혜령
사진: IMDB
포제션 감독 출연 칼 뒤링,숀 로튼,맥시밀리안 루슬레인,토마스 프레이,안드레이 줄랍스키,마리-로레 레이어,안드레이 코르친스키,브루노 누이땅,수잔느 랑-빌라르,마리-소피 디비스,홀저 그로스,장-호세 리처,잉그리드 조레 평점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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