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하얼빈’의 현빈 배우를 만나다
2002년 방송된 SBS ‘깜짝 스토리 랜드’에서 ‘한이 서린 남편’이자 ‘지리산 귀신’을 연기한 이 재연배우는 힘든 무명시절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연기하다 지금의 우리가 아는 톱배우 현빈이 된다.
이번에 그는 신작인 영화 「하얼빈」을 내놓게 되었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을 지난 19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모두가 알고 있는 안중근 장군을 쫓는 3일간의 기록이 담긴 영화다. 시대극 장인 우민호 감독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위대한 영웅의 면모, 거사 이후 재판받는 올곧은 모습은 없다. 거사를 치르기 전 먼저 간 동지들의 목숨 빚과 미안함에 사로잡힌 군인, 동지를 의심하다 불안감에 갇힌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두려움과 슬픔, 부채감이 가득한 안중근의 모습을 담아 색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현빈은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서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했다. 아내와 아이가 인생의 공동 1순위고 자신은 2순위라며 정적인 사랑꾼의 면모도 드러냈다. 17년 만에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사적인 소식도 전했다.
하지만 ‘늘 시험대 위에 서 있는 기분’이라며 인물의 무게감 때문에 선뜻 참여하지 못하고 세 번이나 거절한 사연도 설명했다. 특히 어수선한 시기에 개봉하는 만큼 「하얼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각인되는 한 해의 마무리가 될 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얼빈」은 한국 영화 최초로 IMAX 포맷으로 특별 제작된 작품이다. 언론시사회를 IMAX로 본 소감이 어땠나.
“토론토에서 처음 봤는데 어제 아이맥스로 처음 보니 편집이 바뀐 부분이 있었다. 큰 스크린에서 압도당하는 풍경, 풍광이 좋았고 아이맥스로 봐서 더 좋은 장면도 있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글로벌 인기와 성공 이후 차기작으로 영화 「하얼빈」을 택했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저보다 다들 맞는 선택이냐고 주변에서 걱정했다. (웃음) 우민호 감독님의 목적 중 하나가 흥미로웠다. 안중근의 거사 이후 보다, 거사를 치르는 과정을 다루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안중근 이면의 궁금증이 시작이다. 무척 흥미로웠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야만 하는 밑거름에 관한 이야기였고, 남은 사람들이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게 느껴졌다”
-오프닝의 홉스골 호수 장면이 인상적이다. 겨울이 배경이기도 해서 매우 추웠을 것 같다. 촬영 방식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스태프의 사전 답사 후기만 듣고 상상만 했었다. 직접 가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얼음판 위에 서 있으면 희한한 소리가 난다. 호수가 1m 넘게 얼어 있었다. 현지 분들이 차로 이동할 수 있는 루트를 개척해 줘서 베이스캠프에 모든 스태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후 혼자 한복판으로 걸어가는데 공포감이 컸다.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은 실제 바람 소리가 믹싱된 사운드다. 혼자 올라서서 걸어가다 보면 끝도 없는 빙판길과 산 몇 개만 보인다. 그때 문득 독립군들도 끝을 모르는 곳을 향해 한발씩 내딛고 있었을 심정이 전해졌다. 외롭고 고독하고 춥고 쓸쓸했을 거다. 영하 40도의 추위, 복잡한 감정이 오히려 연기에 도움 요소로 작용했다”
-초반부 치열했던 신아산 전투의 액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이전투구의 아수라장과 혼란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곳은 사실 눈이 많이 오지 않는 도시(광주)라는데 그날 몇십 년 만의 폭설이 왔다. 스태프가 장비를 올리기 힘들 정도였고, 길을 개척해 가면서 촬영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눈, 바람, 자연 현상 모두가 CG가 아니다. 눈이 오다 그치면 고사를 지내면서 눈을 기다렸는데 운 좋게 다 이루어졌다. 눈밭에서 촬영하다가 뒹굴다 보니 진흙밭으로 바뀌었고 그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열흘 정도 찍었는데 액션팀이 짜온 동선과 합을 수정하게 되었다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 캐릭터에 맞는 액션으로 수정되었다. 홍경표 촬영감독님의 앵글에 맞게 잘 잡혔던 것 같다”
-신아산 전투 후 일본군 포로를 살려준 안중근과 내내 대립하는 이창섭(이동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가 ‘네가 시작한 일이니 네가 끝내야지’라고 툭 건네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목적은 같은 거다. 군인 안중근은 원리원칙주의자로서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를 풀어 준 것이다. 거기에 동지들의 희생에 미안함과 괴로움이 내포되어 있었다. 모든 배우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의지로 교류하고 뭉쳤다. 제가 느낀 압박감과 비슷하게 다른 배우도 힘들었고 각자 외로워하며 몰입해가고 있었다. 개인 시간을 보낼 때도 그 마음이 전해지고 힘이 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안중근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해석을 보였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면서 중점 둔 부분이 있나.
“안중근 장군은 국민 각자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생각을 벗어나도 안 되고, 똑같이 따라 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톤과 밸런스를 맞추는 게 힘들었고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연구하고 상상했다. 독립투사의 모습보다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포로를 풀어준 결과에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던 과정, 그 이후 더 힘들어져 눈물 흘리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토 히로부미 저격 거사는 행했지만 같은 목적을 품었던 동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남은 사람은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믿었던 동지의 배신도 포함이다. 분노보다는 아픈 마음이 더 컸을 거 같았고 마음 상태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대중은 안중근의 투사적 모습과 카리스마를 기억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특히 동지 다수를 잃고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어둠 속 후미진 곳만 찾아 숨어 있는 듯 보였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촬영 당시 그분의 존재감과 상징성의 무게감이 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짓누르는 마음이 엄청났다. 확고한 신념으로 가족보다 나라를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가. 가족을 위하는 것도 결국 나라를 위하는 일이니, 목숨까지 내놓으면서까지 하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없다. 촬영을 끝내고 나서 상상 이상의 압박감이 내려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도 힘겹게 고뇌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배우들 때문이다. 지금은 압박이 없어지지는 않았고 다소 벗어났다는 정도다. (웃음)
안중근의 가장 나약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듬직하고 강직한 리더의 모습이 아닌 초라하고 불안함 휩싸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 공간에 오래 머물면서 세트장의 공기와 에너지를 느끼려고 했고 아이디어도 냈다. 원래 있던 의자를 없애고 구석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부탁해서 그 장면이 탄생했다. 계속해서 실패의 연속이었으며 본인 결정 때문에 희생도 감내했어야 하니,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을 거 같았다”
-마지막 교수형을 받고 흰 천을 뒤집어쓰는 장면을 찍을 때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
“거사 후 ‘코레아 우라’를 외치다가 잡히고 나서도 목이 갈라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는 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바람이었을 거다. 암전이되면서 소리가 귀에 박히게 되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알아듣길 바라는 연출이다. 내레이션을 쓴 이유도 비슷하다. 원래의 문서에서 각색한 것들인데 과거, 현재, 미래에도 힘든 일을 겪을 테지만 그때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이겨내 보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여겨주길 바랐다.
교수형 장면을 찍을 때 세트장이 제법 높았다. 뚜벅뚜벅 위로 올라가면서도 공포감이 생기는 곳이었다. 두렵기도 하고 미안함이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고난과 역경이 끝나지 않은 상황. 나 아닌 누군가는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아는데 나만 빠졌다는 미안함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안중근은 서른한 살에 거사를 치렀다. 본인의 서른한 살 때와 비교해 접점을 떠올려 보자면.
“접점이라.. 전혀 없다. 전 그분의 발톱도 따라갈 수 없다고만 확인하게 되었다. 그 나이에 생각할 범주도 아니고, 나라면 할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연기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 흉내라도 내자 싶은 마음으로 임했었다. 그래도 굳이 찾는다면.. 아! 「시크릿 가든」 하고 입대했었다. 접점이라면 ‘군인’이라는 신분이겠다. (웃음)”
-이토 히로부미 역의 ‘릴리 프랭키’와 대면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촬영장에서 실제로 만나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현장에서 처음 만나 뵈었다. 릴리 프랭키의 팬으로서의 마음과 놀라움이 교차되더라. 기차 안, 기차 밖, 건물 안 정도로 매우 한정된 공간에서 연기해야 했었잖냐. 공간에서 뿜어내는 분위기에 놀랐다. 표현 방법, 연기의 포인트가 너무 다르다. 편하면서도 힘 있는 연기다. 실제로는 너무 좋으신 분이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웃음)
어제 언론 시사회 때 함께 관람했었다. 의미 있는 작품에 함께 하게 돼서 좋았다고 했다. 아이맥스라는 큰 화면에 놀랐던 거 같았다. 이후 일반 시사회 무대인사에도 참석해 주었는데, 일본에서 혹시 개봉하면 반대로 직접 무대 인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해주더라”
-결혼과 출산 이후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다. 그 일환으로 ‘유퀴즈’에도 출연한 건가.
“사실 영화 홍보 때문에 나갔던 게 큰 이유다. 제 이야기를 하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 자제했던 거다. 오랫동안 안 했으니, 팬들에게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마음, 좋아해 주실 거라 믿었다. 양쪽에서 잘 리드해 주셔서 많은 덕을 봤다”
-「하얼빈」이 주는 메시지는 한 발 한 발 조금씩이라도 나아간다는 끈질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려, 혹은 나아가려 하는 게 있나.
“음.. (한참 고민) 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한 발씩 나아가려고 한다. 「유퀴즈」도 그 일환이다. 이십 대, 삼십 대 일하면서 스스로 가시 돋쳐 있었다면 이제는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표현해야 안다는 점을 새삼 느끼면서 조금씩이라도 더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실 「하얼빈」 고사 지내고 다음 날 아이가 태어났다. 그동안은 내 중심으로 살았다면 나의 첫 번째 분신인 아이를 위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하얼빈」을 만난 영향, 차기작 소식도 들려 달라.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길 바란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일상은 독립투사분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되새기며 찾아보는 계기,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올해 12월 내년 1월 초중순까지는 「하얼빈」으로 홍보 활동을 할 예정이다. 우민호 감독님과 「메이드 인 코리아」도 촬영 중이라, 일정 없을 때는 현장에서 보고, 홍보 일정으로 만났을 때는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연히 감독님과 두 작품을 하게 되었는데 (영화와 드라마의) 색깔이 확연히 달라 재미있게 찍고 있다. 내년 하반기쯤 공개 예정이다”
글: 장혜령
사진: CJ ENM
하얼빈 감독 출연 유재명,릴리 프랭키,이동욱,홍경표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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