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의 송중기 배우를 만나다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이하= 보고타)은 IMF 직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가 한인 사회의 실세 수영(이희준), 박병장(권해효)과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국에서 떠밀려 어떻게든 살려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기회의 땅에서 맞은 음모와 배신, 고군분투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흔히 남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마약’ 소재를 배제하고 ‘속옷 밀수’라는 독특한 설정이 보고타의 이국적인 풍광이 조화를 이룬다. 현지 상인, 세관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입지를 다져간 한인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타국에서 뿌리내리고 자생한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이민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극 중 베트남전에서 아버지의 은혜를 받았다는 박병장을 찾아 콜롬비아로 흘러든 소년 국희를 소화한 송중기와 23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나 영화와 근황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어려운 시기, 한국 영화 모두 잘 되길..
송중기는 「화란」 이후 극장 영화 개봉에 떨림과 마지막 날 개봉 날짜의 기대와 기우가 교차하는 듯 보였다. 앳된 얼굴을 했지만 한층 온화하고 차분하며,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최근 결혼과 출산으로 가장이 된 이유 때문이 것 같았다.
하지만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여파인지 겹치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다. 「화란」은 저예산 영화이자 조연, 제작자로 참여했던 만큼 오랜만에 메인 주인공의 책임감이 커 보인다. 팬데믹 이후 조금씩 회생하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관객의 선택을 받기 힘든 한국 영화의 현실과 맞물린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평가가 호든 불호든 일단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열심히 홍보하는 이유도 개봉하기까지 부침이 따랐던 까닭이다. “「보고타」가 완벽한 영화라고 장담할 수 없겠지만 힘들게 고생한 스태프의 노고, 눈물이 깃들어있는 작품이다. 메인 자리라면 절실한 책임감이 따르기 마련이다. 당연히 홍보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남다른 애틋함을 전했다.
글로벌 OTT 시대를 맞은 시점은 극장에 걸리는 영화하고만 경쟁하지 않는다. 12월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먼저 개봉한 「하얼빈」을 시사회로 봤는데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이 먹고살아야 한다. 서로 양보, 협업, 응원하려 노력한다”며 업계의 어려움 속에서 상생하는 길을 모색했다.
이어 “저도 경험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제는 호불호 리뷰도 다 본다. 좋은 것만 찾아보면서 가두어 버리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각자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 이런 게 좋으니 봐달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 없다. 개봉하면 슬쩍 영화관에 섞여 들어가 관객 반응을 살펴보는데. 좋은 반응이든, 주무시든, 어떻든 직관하려고 한다. 저만의 노하우”라고 답변했다.
「보고타」의 한인은 여러 이유로 타지의 정착을 꿈꾼다. 촬영 시기와 개봉 시기가 일치하지 않지만 대중에게는 연이은 누아르, 범죄 장르인 탓에 「화란」, 「로기완」, 「보고타」가 성장 삼부작처럼 보이는 이유다.
“영화의 시작은 워터멜론 영화사의 신범수 대표의 기획이라 간접적으로 들었다. 상업 영화의 특성상 자극적인 소스를 넣었지만 캐릭터들은 실존 인물에서 착안했다. 보고타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유학 시절 겪은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라는 거다. 희준 형이 맡은 수영 캐릭터는 고려대 출신들로 결성된 경험을 녹여 냈다. 대우에 파견된 직원, 주무관, 유학생 등도 등장한다. 각자 계획과는 다르게 현지에 눌러앉아 버린 사람들의 삶을 기억해 두었다고 한다. 오랜 시건이 흐른 후 시나리오 전문 작가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다”
「하얼빈」과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한국인의 고난과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공통점이다. 불안한 정국에 피부로 와닿는 이야기란 접점도 있다. 「보고타」는 1997년 IMF를 겪은 한인이 어렵게 콜롬비아로 떠나 정착한 이민 역사를 다룬다. 여러 국난을 극복하며 지금까지 이어온 한국인의 정서가 스며들어가 있다.
“타사 영화를 말해서 여러 군데서 눈치 주고 있는데.. (웃음) 우리 영화와 「하얼빈」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한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국민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려는 정서가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팬데믹 변수로 촬영 중단, 아찔했다
송중기는 ‘「보고타」는 배우 송중기, 인간 송중기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준 작품’이라며 확신과 애정이 드러냈다. 콜롬비아의 날것과 거친 분위기, 현지 사람들과 이민자의 삶의 밀도가 그대로 담겼다. CG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공기, 분위기의 현장감이 전해진다.
“2-3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콜롬비아 생활 자체가 재미있었다 안 그래도 흥이 많은 곳에서 현지 크루의 흥까지 더해지니까 저까지 텐션이 올라갔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영화가 사랑을 받이 많아서 콜롬비아까지 개봉 소식이 이어지면 무대 인사를 가고 싶다. 촬영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의 인기는 아니었는데 남미에서도 인기가 많다. (웃음)”며 한국 콘텐츠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한국 영화 최초 콜롬비아 로케이션을 담은 만큼 이국적인 풍경의 장점도 있겠으나. 지구 반대편에서 어렵고 불편한 점은 점점 늘어났을 거다. 열심히 했는데 편집된 부분도 있을 거고, 힘들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온 부분도 있기 마련일 거다.
“보고타가 워낙 고도가 높은 도시다. 하필이면 첫 촬영이 오토바이 강도를 쫓는 장면이었다. 이미 2,900m의 고도였는데 산꼭대기를 올라 3,000m 이상이 되니 숨쉬기가 힘들었다. 현지 날씨나 기후, 고산병 적응 때문에 애먹었지만. 안전 문제나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크루들과 친해져서 회식도 많이 했다. 그때 ‘한국인들은 경직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위계질서가 있고 깍듯하게 인사하는 게 딱딱하다고 생각한 거 같다. 현지 크루들은 그런 게 없더라. 감독, 어른, 막내든 서로 볼 뽀뽀하면서 스킨십에 적극적이다. 여유 있고 친근한 문화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저도 박지환, 김종수 배우에게 볼 뽀뽀를 해봤지만 참.. 어색했다. (웃음)”며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결과물의 만족도에 대해 “대본 보다 훨씬 뜨겁게 나와 만족한다. 수치상으로 말하자면 80% 정도다. 나머지 20%는 편집된 장면인데 다 이유가 있어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89%라고 말하려다가 건방져 보일까 봐 말한 거다. (웃음) 100점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가 제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고 할까 봐.. 참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덧붙여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 영화에서 처음 보는 그림이 차고 넘쳤지만 다 담지 못해 개인적인 아쉬움이 크다. 개봉이 늦어진 이유도 팬데믹으로 중단된 영향이 크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드라마, 영화 촬영이 있었지만 다른 국가는 아예 못했으니까. 저는 그 시기에 「빈센조」도 촬영했고 「재벌집 막내아들」이 제안 왔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거절했었다. 혹시 엎어질지도 모를 「보고타」부터 찍어 두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감독님은 계속 붙잡고 있겠지만 저는 그 사이 5-6 작품을 찍었으니 그럴 만하다. 다시 촬영을 재개한다고 해도 배우들 스케줄 맞추기도 힘들지. 미술 소품, 차량도 다 현지에 있어 두려움과 책임감이 커지기만 했다”며 아찔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해외 촬영을 여러 번 해 본 능숙한 경험자도 예상치 못한 상황은 속수무책이라고 토로했다.
“해외 촬영이란 변수가 컸다. 드라마 촬영차 3주 정도 해외에 나가봤지만 올로케이션으로 계획된 건 처음이었다. 5개월 정도 해외에 체류했던 「로기완」 보다 시점상 「보고타」가 앞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처음 도전해 보는 매력이 강했다. 결국 팬데믹으로 올로케이션은 무산되었지만 현지 배우와 협업 경험, 생소한 문화권을 배울 기회였다”며 설명했다.
아내와 두 아이의 축복, 그리고 내적 성장
송중기는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앳된 동안의 대표주자다. 「보고타」를 촬영할 당시는 35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이질감이 줄여 놀라움을 안긴다. 부모님과 낯선 땅으로 이민 온 19세 국희에서 출발해, 20대, 30대까지 선보였다. 한 남성의 얼굴에 굴곡진 한인 서사를 녹여냈다.
“캐릭터 자체를 표현하는 어려움보다 10대를 연기하는 게 염려가 되었던 건 사실이다. 대표님에게도 솔직히 ‘이건 아닌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국희가 보고타에 갔을 때가 19살이다. 도착해서 23, 24살 언저리의 청년 서사가 주를 이루는데 당연히 민망한 거다. (웃음) 그럼에도 그걸 뛰어넘어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았다”
꼭 하고 싶었던 이유를 묻자. “주연의 부담은 당연히 극복해야 하는 거다. 올로케이션이 매력적이기도 했다. 다만 그것보다 타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고 대본의 깊이감과 공감이 커지면 하게 된다. 스스로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자’, ‘하고 싶어도 역할을 주지도 않는다’면서 다독이면서 촬영에 임했다. 제가 같은 감독님과 두 번 이상 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두 번 작업했던 분은 「아스달 연대기」를 했던 「성균관 스캔들」의 김원석 감독님, 「승리호」도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님 정도다. 그분들과 언젠가 또 하게 될 수 있지만. (웃음) 당장은 새로운 분들과 협업하는 즐거움을 선호하는 편이다”
정체되길 거부하는 배우답게 늘 새로운 시도, 낯선 경험, 돌파구를 찾아 나서는 성격이 이번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빈센조」에서는 이탈리아어를 소화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스페인어에 도전했다.
“「빈센조」 때 배운 이탈리아어보다는 「보고타」의 스페인어가 쉬웠다. 어감이 예쁘기도 하고 리듬감이 저와 잘 맞았다. 아기도 할머니나 엄마의 영향으로 스페인어를 할 수도 있잖냐. 그때 말이 안 통하면 큰일이다. 미리 공부 욕심을 부려 열 올렸더니 성취감도 남달랐다”고 설명했다.
아내의 영향도 컸다. 결혼 전 배우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생활한 경험이 힘이 되었다. 아내와 대화는 영어로 하지만 평생 아내가 살았던 이탈리아어, 장모는 스페인 사람이라 스페인어까지 배우는 기회가 된 것이다. 아내와 아이 이야기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사랑꾼, 아빠 미소가 튀어나왔다. 다소 긴장되었던 초반 모습과는 다르게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한층 여유로운 표정이 등장했다.
“너무 행복하다, 그러니까 둘째가 태어났겠지.. (웃음) 아내의 한국 생활 만족도가 높다. 배달 앱이며, 일상생활에 뭐든 잘 갖춰져 있고 안전도 보장된다며 좋아한다. 제가 밤늦게 나가도 걱정이 없긴 하다. 아내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불어도 할 줄 안다. 지금은 한국어 수업도 받아서 말도 꽤 한다”며 자세히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로기완」 제작에도 이름을 올린 만큼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계속 여러 업계, 해외 작품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성사될 뻔했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오디션에 떨어지기도 했다. 계속 물 밑에서 발을 젓고 있는 셈이다. 그 와중에 인맥도 많고 해외 경험도 많은 아내의 도움이 컸다. 지금은 배우 생활을 은퇴했지만 동료로서 조언을 듣는다”고 말했다.
“올해는 「정숙한 세일즈」, 「조립식 가족」, 「미스터 플랑크톤」 등 회사(하이지음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저는 천우희 배우와 「마이 유스」로 호흡 맞게 되었다. 다 회사에서 제작하는 작품이다”라며 소개했다.
영화는 직접 공동제작에도 참여했다. “「화란」, 「로기완」으로 프로듀싱도 해봤다. 막상 해보니 성취감도 들고 재미있다. 제가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 개발부터 참여하는 기획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출연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로만 참여하고 싶은 작품도 꽤 있다. 계속 공부해 나가면서 머릿속에 담은 것을 실현해 보려 한다. 다만, 연출에는 뜻이 전혀 없다. 연출이 제일 힘든 일이다. (웃음) 「헌트」의 이정재, 「조명가게」 김희원 배우가 연출까지 잘하시는 건 부럽지만. 저는 그럴 깜냥이 안 된다. 한다면 기획, 제작만 뜻을 두고 싶다”며 확실한 선을 그었다.
올해 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열일 행보를 보였다. 앞으로의 행보를 듣다 보니, 송중기의 마흔, 인생 2막을 상상해 보게 했다.
“데뷔 전부터 늘 새로운 분야의 도전을 즐겼다. 요즘 데뷔하는 나이에 비하면 저는 스물여섯에 시작했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조바심도 들었다. 동기들은 언론 고시 봐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배우 한답시고 군대도 미루고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다녔으니.. (웃음) 정해진 거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생겨 이 일을 시작했고 선택권이 생겼다. 그때마다 제 기질이 툭하고 나오지 싶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한편,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12월 31일 2024년 마지막 날에 개봉한다.
글: 장혜령
사진: 하이지음스튜디오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감독 출연 김종수,김태백,강숙,황성구,김성제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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