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청난 관객들 불러모을것 같은 이병헌 주연의 신작 韓 영화

필더무비 2025.03.25 조회수

영화 ‘승부’ 후기

세계 최고 바둑 대회에서 국내 최초 우승자가 된 조훈현. 전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던 그는 바둑 신동이라 불리는 이창호를 제자로 맞는다. 제자와 한 지붕 아래에서 먹고 자며 가르친 지 수년. 모두가 스승의 뻔한 승리를 예상했던 첫 사제 대결에서 조훈현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세를 탄 제자에게 충격적으로 패한다. 오랜만에 패배를 맛본 조훈현과 이제 승부의 맛을 알게 된 이창호. 조훈현은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을 되살리며 다시 한번 올라갈 결심을 하게 되는데…

2021년 촬영이 완료된 작품이었지만, 코로나와 주연배우 유아인의 문제로 개봉 방식과 시기를 놓고 고심하다 뒤늦게야 개봉을 확정했다. 1990년대 초 한국 바둑이 살아있는 전설인 조훈현과 이창호가 치렀던 바둑 대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바둑 영화다. 바둑의 묘미를 영화로 그려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구권에서 영화 ‘세기의 매치’와 넷플릭스 시리즈 ‘퀸즈 갬빗’등의 작품에서 체스 게임의 묘미를 각종 룰과 체스말의 형태를 통해 흥미를 높인 대목을 생각해 본다면 바둑 영화 또한 이 방식이 제격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바둑의 형태를 영상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바둑은 체스와 장기와 달리 여러 개의 수를 놓고 하는 게임이기에 이와 관련한 용어와 룰이 담겨있다. 그리고 바둑기사가 한 수를 내다보는 방식을 묘사하는 방식도 쉬운 편이 아니다. 그나마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진 ‘신의 한수’ 시리즈가 바둑룰에 무협영화식 도장 깨기와 액션을 섞어 흥미를 높였지만, 이 작품이 전통 바둑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점에서 본다면 ‘승부’는 이전에 바둑을 소재로 한 작품 중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바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가 중점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게임의 법칙이 아닌 인물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바둑 프로기사가 된 조훈현과 신동으로 불리며 그의 제자가 된 이창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사제지간이 된 그들의 달라진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조훈현과 이창호는 사제지간이 되지만, 조훈현의 훈련 방식과 그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한 채 바둑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창호의 고민이 깊이 있게 그려진다. 얼핏 보면 평범한 사제지간의 이야기이자 그로 인한 갈등을 다루는 익숙한 이야기를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제자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을 이기게 된 이후의 이야기에 있다.

그동안 패배를 몰랐던 조훈현이 그것도 함께 숙식하던 제자에게 패배하게 되자 스승과 제자의 처지가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스승이 제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이야기가 되었기에, 이 상황이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후 ‘승부’는 조훈현의 슬럼프 탈출기와 그 과정으로 인한 고뇌, 스승을 이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이창호의 내면을 유심히 다루며 프로 바둑 기사들의 고뇌와 그들이 사는 세상을 의미 있게 다루며 바둑 영화가 지닌 특유의 정서를 다루게 된다.

이전의 여러 스포츠 영화들이 다뤘듯이 승부의 세계는 냉철하고 잔인하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존재하면서도, 승자가 패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예의는 확실하게 짓밟아주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이 바둑 세계에서도 그려지지만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감정을 감추지 않는 바둑 세계의 모습이 이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불러오게 한다. 게임 내내 서로의 수를 읽고 감정을 숨기며 경기가 끝난 이후에 자신의 바둑을 복기하며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모습이 바둑 세계에 담겨진 매력과 묘미를 불러오게 한다.

프로 바둑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만큼 전문적인 바둑 용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바둑을 전문적으로 좋아하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의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용어에 대해 자막을 표기해 설명해 주는 친절한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말하는 용어가 무 슨뜻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럼에도 ‘승부’는 마니아 관객들만 보는 영화가 아닌 철저한 대중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바둑을 전혀 모르지만 한수 한수를 읽고 돌 하나를 둘때마다 그 다음 놓은 돌들을 예측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묘사한 대목이 이 영화만의 재미와 바둑이라는 게임의 묘미를 불러오게 만든다. 특히 크게 제한적이지 않은 바둑 경기의 특징을 생각해 본다면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경기 장면이 바둑이라는 스포츠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대목이다.

이렇듯 바둑 기사들이 엄청난 두뇌 싸움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경기 내내 흡연을 하며 게임에 집중하는 조훈현과 별명 그대로 ‘돌부처’ 표정으로 시종일관 분석하고 마인드컨트롤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이창호의 모습 등 각자의 방식과 루틴으로 게임을 이끄는 기사들의 모습과 이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이처럼 바둑이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잘 표현한 연출, 편집과 바둑기사들의 내면과 고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명연기의 향연이 ‘승부’를 더욱 흥미롭게 보게 만드는 요인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다소 지루할 것 같았던 바둑 경기가 보는 내내 긴장감을 불러오게 만든다. 이병헌은 역시나 믿고 보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최강자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패배자가 된 인간 조훈현의 내면을 정말 공감 있게 표현해 다시 한번 감탄을 불러오게 한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없을 거라 생각한 이창호 기사를 인간미 있게 표현한 유아인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영화속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결처럼 우위를 가늠할수 없는 명연기의 향연이었기에 그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이처럼 연출력, 연기력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로 다가온 ‘승부’는 바둑 영화만이 지니고 있는 재미있는 볼거리와 이 영화가 지닌 독특한 드라마까지 선보이면서 오랜 여운을 남긴 정서까지 전해준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이후 현실을 돌아본다면 두 사제 지간의 치열한 승부 이후의 여파로 한국 바둑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새로운 사제지간의 대결과 청출어람이 반복되면서 한국 바둑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승부’는 한국 바둑의 전성기와 그 의미를 다룬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그점에서 이 영화는 바둑인과 팬들에게 자부심으로 다가올 작품이 될 것이다.

‘승부’는 3월 26일 개봉한다.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