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러스의 표면에 위치한 당분은 바이러스가 면역 체계를 회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당분이 바이러스의 외부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체내 정상적인 세포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이로 인해 체내 면역 시스템은 바이러스를 잘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의 스크립스 연구소(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TSRI)는 지난 23일(일)부터 진행 중인 미국 화학학회 춘계 학술회의(ACS Spring 2025)에서 바이러스 표면의 당분을 표적으로 삼는 범용 백신에 대해 발표했다.
‘범용 백신’으로서의 가능성
TSRI 연구팀은 동물 연구를 통해 이 백신의 효과를 검증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영역에서 당 분자를 제거하고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하는 항체를 생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 번의 예방 접종으로도 변이 바이러스에까지 대응할 수 있는 저항력을 갖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감염병 백신은 평생 단 한 번만 접종을 받으면 되는 데 비해, 독감과 같은 바이러스는 매년 새로운 예방 접종을 필요로 한다. TSRI의 화학 교수인 치후이 웡에 따르면, 이는 SARS-CoV-2와 같은 바이러스가 복제 과정에서 높은 돌연변이율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의 수용체 결합 도메인(RBD)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로 인해 계속 새로운 백신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기본 구조’를 표적화
치후이 웡 교수의 연구팀이 개발한 백신은 돌연변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바이러스 내 스파이크 단백질의 ‘줄기 영역’을 표적으로 한다. 이 줄기는 ‘글리칸’이라고 하는 당 분자 사슬로 코팅돼 있으며, 이 코팅이 면역 체계의 인식과 공격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의 백신은 이른바 ‘저당(low-sugar) 백신’으로, 줄기를 보호하는 당 분자를 표적으로 삼는다. 연구팀은 햄스터와 쥐 등을 대상으로 한 동물 연구에서, 저당 백신으로 SARS-CoV 변종 뿐만 아니라 MERS-CoV(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더욱 다양한 항체를 생성했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이 백신이 범용 백신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말했다.
저당 백신 기술, 암 치료 연구에도 활용
한편, 치후이 웡 교수 연구팀은 저당 백신을 개발한 기술을 응용해 다양한 유형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암 세포에도 특정 단백질이나 항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을 표적으로 하여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특히 줄기 영역을 표적으로 하는 저당 백신의 접근법은 ‘변이가 적은 영역을 겨냥한다’라는 근본적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암 세포가 변이를 일으키더라도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양한 면역 회피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난치성 암 세포에게도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연구팀은 이 암 치료를 위한 범용 백신 연구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최근 암 세포의 글리칸 표적에 관한 연구, 그리고 암 세포의 글리칸 합성과 관련된 효소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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