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el터뷰!) 영화 ‘로비’의 하정우 감독을 만나다

「로비」는 배우 겸 작가, 감독인 하정우의 「허삼관」 이후 10년 만의 연출작이다.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대사가 티키타카 활어처럼 움직인다. 10명의 개성 강한 주연급 배우들의 충돌은 산만하기는 하나, 그 또한 하정우 각본과 연출의 시그니처가 되어 개성 강한 작품으로 승화된다.
4월 2일 「로비」를 연출한 하정우 감독을 쇼박스 사옥에서 만나 영화 제작 과정 및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 나누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글이다.
시국, 수술.. 모든 건 자연의 뜻

-지난 3월 25일 언론시사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급성 충수돌기염 소견으로 불참했다. 개봉을 앞두고 액땜이라 할만한 일은 겪으니 감회가 남다르겠다.
“같은 날 저녁, 야심 차게 섭외한 GV도 결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일요일까지 있으라고 했지만 이틀 당겨서 금요일에 퇴원했고 진통제가 세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VIP 시사회에 참석했다. 개봉을 앞두고 주변에서 ‘떨리냐’, ‘긴장되냐’, ‘나라가 뒤숭숭한데 어떠냐’라고 묻는다.
성적은 자연의 흐름과 하늘의 뜻이고 저 혼자 결정할 것도 아니다. 운 좋게 투자 받아 개봉 날짜가 잡혔고 쇼박스가 배급에 참여했다. 「윗집 사람들」(네 번째 연출작)도 제안받아 후반 작업 중이다. 흥행을 예상치 못했는데 잘 되는 것도 있고, 잘 되리라 예측해도 안 되는 작품도 있더라. 나이도 들고 작품 수가 쌓여가니 초연해졌다.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매 작품 열심히 홍보하고 성실하게 살면 되는 거다. 아무리 어려운 세상일지라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해봐야 나중에라도 다음 작품에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연출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오래 걸린 이유가 뭔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가 발 벗고 홍보하러 나오긴 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홍보 활동은 처음이다. (웃음) 「서울타임즈」라는 영화를 2018년 준비했다. 시나리오 3고까지 집필했었는데 잘할 수 있는 작품일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시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시간을 갖던 중 「로비」를 만나게 되었다. 소재는 코로나 때(2020) 골프를 배우면서 필드 나간 경험이 마중물이 되었다. 배경, 환경, 사람들을 묶어서 이야기해 보면 어떨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2021년부터 마음속에서 슬금슬금 그려 놓았던 건데, 그래서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싶다”
-‘골프’와 ‘무선 충전 시스템’이란 소재는 어떻게 떠올렸나.
“골프 라운딩에 나가보면 ‘가식’의 끝판왕이다. 라운딩 전 아침 먹으면서 모두 ‘오늘 몸이 안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필드에서는 각자의 플레이가 나온다. 제가 20대부터 70대 상대랑 다 쳐봤는데 비슷했다. 다들 평상시와 다른 의외의 면모를 보인다. 온순했던 사람이 필드에서는 거칠어지고, 평상시에는 상남자였던 사람도 소녀처럼 골프 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이면도 상황을 마주하면서 캐릭터와 코미디를 떠올렸다. 샷 실수를 하면 걱정해 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잘 치면 ‘나이스 샷’이라며 외치면서도 이내 죽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그게 직장이나 평소에는 숨겨지는데 유독 골프에서는 드러나는 것 같다.
골프를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다면 쇼크가 아니었을 거다. 사회생활도 하고 나이 들어 시작하고 그 안에 들어가 보니, 독특하고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되더라. 그때 골프장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선 충전 시스템이란 소재는 공무원 친구 덕이었다. 가방 네임텍을 아들 이름으로 해놨길래 이유를 물어봤더니. 혹시라도 다른 사람 눈에 오해 살까 봐 조심해야 하고, 접대골프를 막기 위함이라고도 하더라. 무슨 일인가 자세히 물어봤다. 나랏일을 결정할 때 부처마다 액수가 큰데 공무원들이 조심한다고 하더라. 여러 사례를 들려주면서 최근 핫한 소재가 전기차 무선 충전 스마트 주차장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아직 국책사업으로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 스웨덴에서 상용화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가까운 미래에 상용될 거라 했고, 관련 스타트업도 많아 영화에 이식하게 되었다”
10번의 리딩으로 효율적인 촬영 진행

-실생활에서 영감받아 시나리오를 썼다면 최실장 캐릭터도 마찬가지인가.
“최실장은 골프를 떠나서 매체나 주변에서 최악이라 불리는 인물을 짬뽕한 거다. 최실장은 스스로 세련되고 매력적인 아저씨라 생각하지만 불편하고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빌런 아닌 빌런을 만들려고 어릴 때부터 봐왔던 여러 개저씨(?)들을 접목해서 완성했다. 허구 세 스푼, MSG 네 스푼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이 어려운 역할을 김의성 배우에게 준 이유가 있나.
“김의성 배우는 남녀노소,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석에서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본인의 해석과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서인지,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잘할 거라 판단해서 모든 것을 맡겼다. 저는 캐릭터의 디자인과 글만 세팅해 주었다. 감정 표현은 모두 본인이 직접 한 거다. 잘 소화해 주었다”
-진프로 역의 ‘강해림’ 배우를 가장 먼저 캐스팅한 이유도 궁금하다.
“프로 골퍼란 직업 설정 때문에 폼을 만들기 위해 훈련을 최대한 해야 했다. 해림 씨에게 요구했던 건. 화술(대사)은 책을 읽어도 좋으니 폼은 좋아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강력한 배우들의 앙상블 속에서 이 캐릭터만은 일반인, 진짜 운동선수처럼 보이길 바랐다. 연기 표현법이 기술 없이 날 것으로 보였으면 했다. 양극단의 인물 중 해림 씨는 최대한 전 프로같이 보였으면 했고, 마태수(최시원)는 가장 연예인 다운 인물을 캐스팅한 거다. 「롤러코스터」 때 ‘미나미토’ 역에 고성희 씨와 포지션이 비슷하다. 그때 성희 씨도 아무 경험이 없는 신인이었다. 화술을 시켜보니 해림 씨보다 더 심각했었다. (웃음) 큰일이라 생각했던 때 차라리 일본어를 시키자고 설정을 바꿨는데 그게 찰떡이더라. 영화가 끝나고 드라마에 가장 먼저 성희 씨가 캐스팅되었는데 아마 그 드라마 감독이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에서 처음 봤던 호식 역의 ‘엄하늘’ 배우 발굴은 어떻게 진행된 건가.
“호식은 장례식장에서 인사하는 단역이었다. 연기 영상을 보는데 대부분 추천이라는 거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이동휘 배우가 호흡을 맞춰 봤다며 강추라고 하길래 직접 만났다. 알고 보니 단편 영화감독, 배우, 글도 쓰고 소설도 쓰는데 매우 수줍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보석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이 친구를 계속 보고 싶어서 시나리오까지 수정하면서 분량을 늘렸다. 원래는 김이사(곽선영)랑 둘이 다니는 여정이었지만 호식이 끼면 훨씬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키를 가진 구세주 같은 인물로 결국 세팅되었다”
-강말금 배우가 거마비(일종의 교통비)를 받았다고 하더라. (웃음)
“리딩 시간을 더 요청했기 때문에 작은 표현을 거마비로 한 거다. 3-5만 원 정도를 문화상품권, 백화점 상품권, 엔화, 달러 등으로 주면서 작은 재미를 주고 싶었다. 주연 배우들은 귀엽게 생각해 주신 거 같다. 조, 단역분들은 아르바이트하다가 시간 내서 오시는 거니, 차비라도 챙겨 드리고 싶어서 시작했던 거다. 강말금 배우가 인터뷰에서 ‘면이 섰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미 훌륭한 배우임을 알기에 조장관 역을 제안 드려 모셔 온 거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마어마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전체 리딩만 열 번이라는 이야기를 강말금, 김의성 배우에게 들었다. 리딩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있을까.
“홍상수 감독님과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를 17년 전 촬영했었다. (아시다시피) 촬영 1시간 전 아침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감독님 왈 ‘작품의 방향성과 메시지가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라고 했다. 배우를 컨트롤하고 싶어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대사만 숙지하고 올곧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저는 그 정도로 가혹하게(?) 하지는 않았다. (웃음) 리딩 하면서는 애드리브도 나오고 상황도 바뀌어도 괜찮다고 했다. 다만 이 모든 수정 과정이 촬영 전에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촬영 때는 영상만 담는 데 집중하도록 했다. 제가 연기도 겸해야 하니 현장 가면 연기를 지시할 여건도 안 되었다. 촬영 콘티에 맞춰 최대한 집중해서 찍어나가는 데만 주안점을 두었다”
하정우표 웃음 코드 호불호

-김의성 배우가 인터뷰에서 시나리오가 ‘하드 코드’라는 말을 했다. 「롤러코스터」도 유머의 호불호가 갈린다. 「로비」는 전작에 비해 조금 대중적으로 변했지만 유머의 톤 앤 매너 맞추기에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제가 생각하는 유머란 ‘타이밍’과 ‘템포’다. 「롤러코스터」의 경우 김우일 편집 기사와 작업했다. 사실상 제 템포를 가져다 모두 썼다. 최근에 다시 보니,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영화’더라. 그래서 「로비」의 김상범 편집 감독에게는 템포 조절을 부탁했다. 현장에서 편집본을 많이 보다 보면 (저는 전체적인 걸 다 알고 있으니까), 간극(템포)이 점점 빨라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현장 편집본을 두고 어떤 멘트도 하지 않았다. 편집 감독에게 모든 소스를 주고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걸 조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거렸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편집본을 보면서 템포 조절을 해놨다. 개봉하는 결과물이 베스트로 조절된 영화다”
-마지막에 진프로의 어려움이 응축된 토사물로 상징된다.
“나중에 「바빌론」에서 마고 로비가 토사물을 쏟아내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을 더 많이 할껄 그랬나?’ (웃음) 살짝 후회했다. 진프로가 최실장에게 당한 걸 그 정도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간 피로도와 그걸 지켜본 관객에게 카타르시스, 반전은 있어야 했다.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이 영화의 포인트였다. 토사물과 함께 토해내는 말, 감정이 중요했다. 토사물과 욕설 장면을 총 3번 촬영했다. 감정 연기와 강행군을 잘 견딘 해림 배우가 대견스러웠다”
-거듭 「롤러코스터」와 비교되니 DNA를 공유하는 영화란 생각이다. 특히 두 작품 모두 욕설이 많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의 ‘삑사리 미학’ 같은 ‘욕설의 미학’을 추구하는 건가.
“사실 모니터 시사회 때 욕이 너무 많다는 의견을 수용해서 초고보다 욕설을 줄여 타협한 게 지금의 결과다. (웃음) 욕은 일종의 추임새 같은 거다. 타인에게 부정적인 의도로 내뱉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다. 박해수 씨가 가장 많이 하는 인물인데 소리의 한 부분이지 큰 의미는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도 ‘퍽’이란 욕설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데 유희의 일부로 반복한 게 아닐까 싶다”
위대한 감독들에게 모든 걸 배워

-배우 하정우와, 감독 하정우의 다른가.
“어제 SNL 촬영을 하고 왔다. 그 매체만의 연기 표현법이 있어 최선을 다해 원하는 톤으로 연기하게 되었다. 작품, 감독, 매체마다 디렉션 분위기가 다른데 배우는 그때마다 맞춰 주는 게 임무다.
감독일 때 저는 ‘심플’하다. 콘텐츠에서 배우나 연예인의 표정이 많지, 인간의 보통은 무표정에 가깝다. 그게 제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또 사람들은 생각보다 말을 빨리하는데 오히려 콘텐츠의 템포가 느리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수많은 영상 매체에서 본 것과 실표정의 간극이 있다. 실제로 자기 표정을 영화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 때도 그랬고, 사람 이면에 감춰진 속마음, 욕망, 욕구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배우로서 최고의 감독과 호흡을 맞추면서 받은 영향이 많을 것 같다.
“연출 방법을 책상에 앉아서 배웠다기보다, 배우로서 훌륭한 감독의 디렉션을 서당 개처럼 어깨너머로 배워왔다. 모든 것을 잘 배워서 제 것으로 체화해서 만들어 놓은 게 저만의 스타일로 굳어졌다.
최동훈 감독은 배우 사랑이 유난하다. 실제 성격이나 말투를 기록하고 기억해서 캐릭터에 녹여 내려 한다. 그래서 저는 애정 어린 마음을 장착하고 찍으려고 했다. 류승완 감독은 액션 장면 찍을 때, 날아다니면서 효율적으로 찍는 분이다. 10회차 분량을 3회차에 찍어 버리더라. 「베를린」 때 참고하겠다고 생각했다. 배우에게 절대 무리한 강요를 하지 않는다. 무술팀으로 데리고 그 장면을 다 찍는다.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다 체크해 둔다. 배우가 들어가야만 하는 부분만 찍도록 해준다. 배우 입장에서는 안전이 보장되어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저도 「로비」에서 카트 체이싱도 있었고 최시원과 현봉식의 액션도 있었는데 삭제하게 되었다.
나홍진 감독, 박찬욱 감독은 꼼꼼한 콘티와 프리 프로덕션을 활용하는 감독이다. 윤종빈 감독은 어쩌면 연출적 가르침과 영감, 디렉션을 알려준 사람이다. 시나리오 접근부터 프로덕션, 촬영, 후반 작업 등 여러 작품을 경험하면서 틀을 만들어 줬다. 김용화 감독은 현장 지휘법, 배우 디렉션 방법을 배웠다”
-세 번째 연출작 「로비」가 감독 필모그래피에 어떻게 남길 바라나.
“제 방향성의 시작이고 의미 있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다. 「롤러코스터」와 비슷한 노선을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차기작 「윗집 사람들」도 비슷한 결이 될 것 같다. 관객들에게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낯설 수 있지만 웃고 가셨으면 좋겠다. 다행히 앞선 영화 「롤러코스터」가 있어서 이 상황을 설명하기 편해졌다. 감독은 영화 한 편이 다 의미 있고 소중하지만 관객 입장은 소비하는 입장이니, 코드에 맞으면 재미있게 즐기다 가시길 바란다”

글: 장혜령
사진: 쇼박스

로비 감독 출연 강말금,시원,차주영,박해수,곽선영,현봉식,엄하늘,김경찬,하정우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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