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식습관은 비만의 주요 원인이다. 또한, 이러한 식습관이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즉, 비만과 암 발생 위험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국립암센터 연구팀이 암세포가 직접 지방산을 산화시키며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을 세계 최초로 증명해냈다.
지방과 비만, 그리고 만성 염증
비만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섭취하는 에너지가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많은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 바로 ‘고지방 식단’이다. 비만인 사람들은 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붉은 고기류나 기름진 음식, 또는 트랜스지방 함량이 높은 각종 가공식품을 즐겨먹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원으로서 지방이 갖는 특징을 두 가지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다른 영양소에 비해 에너지 발생량(칼로리)이 2배 이상 높다는 것, 다른 하나는 탄수화물에 비해 대사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에너지원으로서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지방 식단을 자주 섭취하면서 체내 대사가 원활하지 않고 움직임이 적은 사람들은 잉여 에너지가 체내 곳곳에 축적되면서 비만이 되는 것이다.
몸 속에 축적된 지방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저장소’ 역할을 한다. 일정 시간 이상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소모가 가속화될 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다만, 염증 물질을 비롯한 각종 신호 물질을 분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만으로 인해 유발된 저강도의 만성 염증은 암세포 성장과 증식을 비정상적으로 촉진할 수 있다. 면역세포 기능을 약화시킨다거나, 염증으로 인해 세포 DNA에 손상을 입히는 것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이유로 비만은 암 발생 위험의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암세포, 지방을 연료로 쓴다
비만으로 인해 암세포 성장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데는 여러 메커니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기존에는 비만으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암세포 성장이 촉진된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그러나 최근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암세포가 직접 지방을 연료로 사용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다.
국립암센터 암분자생물학연구과 김수열 박사 연구팀은 고지방 식단으로 비만이 됐을 경우, 암세포가 지방산을 직접 산화시켜 에너지 대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호르몬 변화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면, 암세포의 에너지 대사는 직접적인 요인에 해당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IF 12.4)」 2025년 5월호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Loss of SLC25A20 in pancreatic adenocarcinoma reversed the tumor-promoting effects of a high-fat diet (췌장 선암에서 SLC25A20 지방산산화 유전자의 제거는 고지방 식이의 종양 촉진 효과를 완전히 뒤집었다.)”로, 암세포의 지방산 산화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항암치료 전략을 제시했다.
암세포 성장 메커니즘과 치료 전략
그동안 비만으로 인한 종양의 성장은 염증성 호르몬에 의한 간접적 영향 때문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간 또는 지방세포에서 렙틴(Leptin), 또는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1(IGF-1)와 같은 염증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암세포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국립암센터 연구팀은 ‘종양의 에너지 대사가 지방산에 의존한다는 이론(Kim Effect)’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암세포가 직접적으로 지방산 산화(Fatty Acid Oxidation, FAO)를 통해 세포 에너지원인 아데노신 삼인산(ATP)을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기존의 ‘와버그 효과(Warburg Effect)’에 따르면, 암세포는 산소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포도당을 분해해 젖산을 생성함으로써, 주변을 산성화시키고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김수열 박사 연구팀이 제기한 이론은 이와 상보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연구팀은 고탄수화물 식이가 고지방 식이에 비해 암세포 성장을 최대 80%까지 억제할 수 있음을 함께 확인했다.

연구팀은 췌장암에 걸린 마우스 모델에게 23주간 고지방 식이를 제공한 다음, 동일한 열량을 탄수화물로 제공받은 마우스 모델과 비교했다. 확인 결과, 고지방 식이를 섭취한 쥐는 체중이 두 배로 증가했으며, 종양 크기도 두 배 이상 커지는 현상을 관찰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방산 산화를 유도하는 핵심 유전자인 ‘SLC25A20’을 유전적으로 억제했을 때, 암세포의 성장이 고지방 식이에서도 정상식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일부에서는 종양성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완전관해(Complete Remission)가 관찰되기도 했다. 즉, 고지방 식이에 의한 종양 성장 효과가 이 유전자를 조절함으로써 완전히 역전되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면역세포가 살아있는 자연 발생 마우스 췌장암(KPC 모델)에서도 SLC25A20 유전자가 결손된 마우스와 교배할 경우, 전체 생존율이 23주에서 30주로 평균 7주 연장되며 항암 효과를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지방산 산화를 차단하는 것이 암세포 성장을 직접적으로 억제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사례다. 연구팀은 “SLC25A20은 암세포에 지방을 공급하는 핵심 통로로, 이를 차단하면 암이 에너지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게 된다”며 “부작용이 거의 없어 새로운 항암 치료법의 최적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암센터는 현재 자회사 NCC-Bio(대표 김수열)와 함께 SLC25A20 유전자를 표적으로 한 항암 신약 개발 및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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