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과 엘리트 코스, 그리고 대기업 입사
허성태는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수능 200점 만점에 135점을 받아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LG전자 해외영업부에 입사, 러시아와 동유럽 시장 TV 영업을 담당하며 사회 초년생으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았다. 이후 대우조선해양 관리직으로 이직, 연봉 7천만 원을 받으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LG전자·대우조선해양, 모두가 부러워한 ‘성공한 직장인’
LG전자에서는 마케팅·영업직으로, 대우조선해양에서는 관리직으로 근무했다. 30대 중반에 이미 과장 진급이 유력했고, 안정적인 연봉과 복지, 사회적 지위까지 갖췄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영업직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한증까지 겪었다. 그는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어울리는 삶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배우가 꿈이었지만…” 현실과 타협했던 30대
허성태에게도 꿈이 있었다. 바로 배우였다. 하지만 이미 35세, 가족이 있는 가장으로서 꿈을 포기한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배우냐, 그냥 회사 다니자”는 마음으로 일상을 이어갔다. 그 시절 그는 ‘꿈’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술김에 지원한 ‘기적의 오디션’, 인생의 대전환
그러던 어느 날, 회식 후 집에서 TV를 보다가 SBS ‘기적의 오디션’ 광고를 접했다. 술김에 지원서를 작성했고, 오디션에 합격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놀랍게도 심사위원 전원에게 호평을 받으며 최종 합격했다. 허성태는 “아마 그때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회사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퇴사 결심과 가족의 응원, 그리고 첫 발걸음
오디션 합격 후, 허성태는 아내와 밤새 소주를 마시며 깊은 대화를 나눴다. 가족의 생계와 미래가 걸린 문제였기에 고민이 컸지만, 아내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며 응원을 보냈다. 다음 날, 그는 사직서를 내기로 결심했지만 전날 과음으로 회사에 2시간 지각했다. 상사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동료들은 처음엔 놀랐지만 점차 그의 용기를 응원하며 배웅했다.

단역·아르바이트, 월급 15만 원의 혹독한 시기
배우로 첫발을 뗀 허성태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단역 출연료로 월 15만 원을 받으며, 생계를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와 집안일도 도맡았다. “돈이 필요하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단역 시절에는 수입이 거의 없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작은 배역부터 차근차근 쌓아갔다.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스타가 되기까지
허성태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밀정’, ‘남한산성’ 등에서 조연과 단역을 거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그러다 2021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장덕수 역을 맡으며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이렇게 잘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허성태의 후회와 진심, 그리고 대중의 반응
허성태는 “힘들 때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평생 부장 정도로 회사에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기가 대단하다”,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우로도 성공해 다행”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약
- 허성태는 연봉 7천만 원의 대기업을 퇴사하고, 30대 중반에 배우의 길에 도전했다.
- 단역과 아르바이트, 월 15만 원의 수입에도 포기하지 않고 연기 내공을 쌓았다.
-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으며, 후회 없는 선택과 가족의 응원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 허성태의 도전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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