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률 72%의 전설, 그리고 갑작스러운 미국행…정애리의 인생 리셋
198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랑과 진실’의 주인공
1978년 KBS 5기 공채 탤런트 오디션에서 대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정애리. 그녀는 1984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단숨에 국민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사랑과 진실’은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시즌제 개념을 도입한 작품으로,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72%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주말 저녁이면 전국의 거리가 한산해지고, 수도계량기까지 멈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전국민적 열풍을 일으켰다.
정애리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인기 스타를 넘어 ‘국민 여동생’, ‘국민 며느리’라는 별칭을 얻으며 광고, 인터뷰, 행사 등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당시 정애리의 출연료와 광고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정상의 순간, 모두가 놀란 미국행
그러나 정애리는 인기의 절정에 있던 1985년, 결혼과 동시에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돈방석에 앉을 기회’를 뒤로하고 왜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는지 의문을 가졌다. 최근 방송에서 정애리는 “살려고 갔다”는 짧지만 강렬한 대답을 남겼다. 화려한 스타의 삶에 대한 회의감, 연기 생활의 매너리즘, 그리고 ‘자연인 정애리’로 살아보고 싶다는 갈망이 그녀를 미국으로 이끌었다.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며 3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 작품은 일부러 보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집중했다.

복귀와 새로운 인생의 시작
1988년, 정애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로서 두 번째 전성기를 시작했다. 복귀 후에도 ‘사랑과 진실’의 아성을 이어갈 만큼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아내의 유혹’, ‘너는 내 운명’, ‘사랑의 불시착’ 등 시대를 대표하는 드라마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하지만 연기만큼이나 진심을 다한 일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1989년, 촬영차 방문한 유아원에서 시작된 봉사와 기부 활동이다. 아이들에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년 봉사와 후원을 이어온 정애리는, 35년 넘게 꾸준히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10년간 매달 1천만 원, ‘아이들의 가장’이 된 배우
정애리의 선행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10년 동안 매달 1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기부하며 “내가 이 아이들의 가장”이라는 사명감을 품었다.
연탄은행, 월드비전 친선대사, 사단법인 더 투게더 이사장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는 데 앞장섰다. 그녀의 봉사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직접 현장을 찾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진정성에서 출발한다.

수차례의 인생 굴곡, 그리고 다시 일어선 용기
정애리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에서의 이혼 이후, 2011년에는 민들레영토 대표 지승룡과 재혼했으나 3년 만에 또다시 이혼을 겪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상처는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혼 사유에 대해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밝히며, 상대방과의 가치관 차이와 공감의 부재를 인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에는 난소암 진단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섰다. 복막염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난소암 판정을 받았고, 가슴부터 배까지 개복하는 대수술과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낸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2020년에는 화물차와의 교통사고로 갈비뼈 6개가 부러지고, 차량은 폐차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지만, 열흘 만에 드라마 촬영장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화려함 뒤의 용기, 그리고 진짜 인생의 가치
정애리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시청률 72%라는 전설을 남긴 국민 여배우에서, 돌연 미국행과 이혼, 암 투병, 교통사고 등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선 그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돈과 명예, 화려함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한 정애리.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진짜 인생의 가치와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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