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장을 지배하는 드론의 감시망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선에는 눈에 띄는 교착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 교착의 한복판에는 드론이 존재한다. 양국 모두 드론을 전방에 대량 배치해 적군의 동선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최전방 병력이 한 발짝만 잘못 움직여도 드론의 시야에 포착돼 곧바로 자폭 드론의 표적이 된다. 이로 인해 지상군의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며, 전선의 변화는 점점 느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드론의 감시망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기본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드론 없이 작전을 계획하거나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력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 된 상태다.

웨딩 드론에서 살상 무기로
전쟁 초기만 해도 드론은 단순한 감시 수단에 불과했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아마추어 드론 운용팀이 러시아군의 탱크 행렬을 포착해 우크라이나군의 매복 작전에 기여한 사례는 상징적이다. 이때 사용된 드론은 일반인이 결혼식 촬영에 사용하는 ‘웨딩 드론’ 수준의 상용 제품이었다.
하지만 불과 1~2년 만에 드론은 살상 무기로 진화했다. 소형 폭발물을 탑재해 정밀 타격이 가능한 형태로 개조되면서, 적 보병은 물론이고 기갑 차량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전투 장비가 되었다. 이는 정규 무기의 부족을 보완하는 동시에, 전쟁의 성격을 바꿔 놓았다.

FPV 드론이 전쟁을 바꿨다
전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꾼 것은 FPV(1인칭 시점) 자폭 드론의 등장이었다. 처음에는 2022년 말경 실험적으로 등장했지만, 202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량 투입되기 시작했다. FPV 드론은 단순한 정찰 장비와 달리, 조종자의 시점으로 실시간 전장을 파악하며 고속으로 목표물에 돌진할 수 있다. 정확도는 로켓보다 우수하고, 조립 단가는 저렴해 물량 투입이 가능하다.
2023년 우크라이나는 약 80만 대의 FPV 드론을 생산했고, 2024년에는 이 수치를 220만 대 이상으로 늘렸다. 올해 목표는 450만 대. 탄약 공급이 어려운 시기에, 국산 드론이 우크라이나군의 ‘생명줄’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의 반격, 광섬유 드론 도입
우크라이나군이 드론 전략을 선도하던 중, 러시아는 ‘광섬유 드론’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반격에 나섰다. 이 드론은 조종사와 드론을 광섬유 케이블로 직접 연결해 조종하는 방식이다. 이동 반경은 케이블 길이에 제한을 받지만, 전파 방해(jamming)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2025년 러시아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이 광섬유 FPV 드론을 적극 투입했고, 우크라이나군의 재밍 전략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양국 모두 드론 기술 고도화를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한 셈이다.

전투 드론에서 수송 드론까지
드론은 단지 전투용 무기만이 아니다. 전선이 고립되거나 보급로가 드론 감시에 노출되면서, 드론이 보급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024년부터는 우크라이나군이 야간 투시 기능과 수송 능력을 갖춘 ‘뱀파이어 드론’을 투입해 식량, 탄약, 보조배터리 등을 실어 나르고 있다.
또한, 드론은 공중형뿐 아니라 차량형·선박형·ATV형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무인 수송 차량과 오토바이를 통한 전장 지원은 물론, 향후 무기 탑재까지 검토되고 있다. 지상 드론은 앞으로의 전쟁 양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드론 없는 전쟁은 없다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첨단 기술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드론은 그 중심에 있으며, 감시·정찰·공격·수송 등 거의 모든 군사 활동을 대체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 전술이 바뀌고, 전술에 따라 전략과 외교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제 ‘드론이 없다면 전쟁도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향후 군사전략의 핵심은 드론의 성능과 운용 능력에 달려 있다. 드론은 단지 무기체계가 아니라, 현대전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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