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에서 CEO까지, 안선영의 인생 역전 실화
화장실 없는 집에서 시작된 꿈
안선영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녀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 살던 집에는 화장실조차 없어 이웃집을 빌려 써야 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것도 꺼릴 정도로, 생활은 늘 팍팍했다. 하지만 안선영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수석 입학하며,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웠다.

대학 시절, 영국 단기 유학을 위해 시급 1,200원의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 만에 500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어머니의 화장품 가게가 망하면서 1억 4천만 원의 빚이 생겼고, 유학의 꿈도 산산조각 났다. 안선영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잠시 접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개그맨 시험, 300만 원 상금이 절실했던 이유
안선영이 공개 개그맨 시험에 도전한 계기도 남달랐다. 당시 MBC 11기 공채 개그맨 시험의 상금이 30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빚 1억을 갚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상금이라도 타야 했다”는 절박함이 그녀를 무대에 세웠다. 2000년, 당당히 합격하며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안선영은 ‘미녀 개그우먼’이라는 별명과 함께 예능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연기와 방송, 다방면에서 빛난 재능
경성대 연영과 수석 입학자답게, 안선영은 개그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1년부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맛깔나는 연기로 작품의 감칠맛을 더했다. 그녀의 유쾌한 에너지와 센스는 예능, 드라마, 시트콤을 넘나들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세대 연예인 쇼호스트의 탄생
안선영의 진짜 인생 반전은 홈쇼핑에서 시작됐다. 연예인이 홈쇼핑에 나와 물건을 파는 모습은 당시만 해도 생소하고, 일부 선배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안선영은 “내게는 생계가 더 중요했다”며 개의치 않았다. 특유의 입담과 신뢰감으로 1시간에 2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고, 누적 판매액이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쇼호스트로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홈쇼핑에서의 성공은 단순한 매출 기록을 넘어, 연예인 쇼호스트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안선영은 “방송이든 홈쇼핑이든, 내게 주어진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고객의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사업가로의 변신, 그리고 또 한 번의 도전
방송과 홈쇼핑에서 승승장구하던 안선영은, 더 큰 도전을 선택했다. 아들 이름을 딴 ‘바로스 코퍼레이션’을 창업, 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세일즈 홍보 대행 사업을 시작했다. “떠돌아다니는 삶을 그만두고, 내 공간에서 출근하고 싶었다. 내 이름을 건 내 상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 창업의 이유였다.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연 매출 50억 원, 연봉 20억 원, 마포에 4층짜리 신사옥까지. 안선영은 연예인에서 사업가로, 또 한 번의 인생 역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 뒤에는 예상치 못한 시련도 찾아왔다. 건물주가 된 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후군, 조기폐경 등 건강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진짜 성공과 행복의 의미
안선영의 인생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화장실 없는 집에서 시작해, 빚 1억을 갚기 위해 개그맨 시험을 보고, 홈쇼핑 누적 1조 원의 신화를 쓴 뒤, 연 매출 50억 CEO에서 다시 건강과 가족을 위해 속도를 늦춘 그녀. 이 모든 과정이 모여 ‘진짜 안선영’이라는 한 사람을 완성했다.
진짜 성공이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용기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일상임을, 안선영은 몸소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녀의 새로운 도전과 성장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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