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미에서 보현스님으로,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수행자의 길을 걷다
1980년대 ‘아이유’라 불리던 가수 겸 배우 이경미
이경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가수와 배우로서 큰 사랑을 받은 스타였다. 그녀는 감성적인 멜로디와 애절한 가창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대표곡인 ‘사모곡’, ‘설마’ 등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특히 KBS 드라마 ‘사모곡’의 주제가를 부르며 배우로서도 주목받았다.

당시 그녀는 ‘80년대의 아이유’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무대 위에서는 밝고 청순한 이미지로 사랑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경쟁과 화려한 삶 속에서 느낀 정신적 허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생방송 도중 갑작스러운 사라짐과 행방 묘연
이경미가 대중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사건 중 하나는 한 음악 방송 생방송 도중 갑자기 “화장실에 간다”며 무대에서 사라진 일이다. 당시 그녀는 머리를 모두 밀고 나타나 충격을 안겼으며, 이후 몇 년간 공식적인 활동이 전무해 팬들과 대중의 궁금증을 키웠다.
이 사건은 단순한 돌발 행동이 아닌, 그녀가 연예계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감과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무대에서의 화려함과 달리 내면의 상처와 고통이 컸던 그녀는 결국 즉흥적으로 무대를 떠났고, 그 후 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행자의 길, ‘보현’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삶
이경미는 연예계 생활을 접고 출가하여 ‘보현(普賢)’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보현’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행하라는 뜻으로,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상징한다. 수행자로서 그녀는 세속의 번잡함을 떠나 마음의 평온을 찾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봉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배우 최수종이 SNS를 통해 그녀의 근황을 전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KBS ‘한국인의 노래’에 출연한 보현스님은 “세상이 내 세상 같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절에 가면 평온하고 좋았다”며 “그럴 바엔 아예 스님이 돼야겠다”고 털어놓았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7남매의 맏이
이경미는 7남매 중 맏이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돌보며 성장한 그녀는 연예계 활동과 가족 부양 사이에서 많은 부담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수행자의 삶을 택했다.
법명을 받고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가족과 주변 이웃을 위한 봉사와 기부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선택을 넘어,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새로운 삶
보현스님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조용하고 내면적인 삶을 선택했다. 그녀의 삶은 대중에게 직접적인 화려함을 보여주지 않지만, 오히려 깊은 울림과 희망을 전한다. 수행자로서의 삶은 매일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위로와 조언을 전하는 일로 가득하다.
그녀는 “속세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절에 가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곳에서 진짜 나를 만났다”며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임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경미에서 보현스님으로, 삶을 다시 쓰다
이경미는 가수와 배우로서의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하고,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생방송 도중 갑작스러운 사라짐, 머리를 밀고 스님이 된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은퇴가 아니라, 깊은 내면의 치유와 평화를 향한 여정이었다.
7남매의 맏이로서 가족을 책임지며 겪은 고통과 부담, 그리고 연예계 경쟁 속에서 느낀 정신적 허기를 극복하고, 그녀는 ‘보현’이라는 법명을 받아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조용하지만 진실된 삶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고 있으며,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이경미에서 보현스님으로, 그녀의 새로운 길은 이제 또 다른 빛을 발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