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믿고 보는 배우’ 고창석”
고창석은 2001년 데뷔 이후 20년 넘게 스크린과 브라운관,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굳건히 지켜왔다.
‘카운트’에서 고등학교 교장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기술자들’, ‘늑대사냥’ 등 굵직한 영화에서
특유의 유쾌함과 진중함을 오가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 ‘굿 닥터’, ‘킬미, 힐미’, ‘남자친구’ 등에서도

“초엘리트 가족사,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명문가”
고창석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엘리트 종합 선물세트’라 불릴 만하다.
형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 법대까지 진출,
현재는 국내 3대 로펌 중 한 곳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28년째 근무 중이다.
큰형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
하버드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5개 국어에 능통한 법조계 레전드로 명성을 떨쳤다.
누나 역시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모님·할아버지까지…교육·지성의 뿌리”
고창석의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 건설업계 종사자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
어머니는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문학도 출신으로,
가정 내에서 언어와 인문학적 감수성을 심어준 인물이다.
할아버지는 학교 교장까지 역임한 교육계 인재로,
가족 모두가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명문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연에서 시작된 연기 인생, 가족의 만류에도 꿋꿋하게”
이런 ‘초엘리트 집안’에서 고창석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채 깨어난 곳이 연극반이었다는 일화는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순간이었다.
가족들은 처음엔 연기자의 길을 반대했지만,
고창석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자신의 꿈을 꿋꿋이 밀고 나갔다.
결국 그는 자신만의 색깔과 존재감으로

“연기력+인간미, ‘국민 배우’로 우뚝”
고창석은 명문가의 배경에 안주하지 않고,
철저한 자기 노력과 뚝심으로 연기 내공을 쌓았다.
작은 배역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유쾌함과 진중함, 코믹과 감동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현장에서는 후배들에게도 늘 따뜻한 선배로,
동료들에게는 ‘믿음직한 형님’으로 통한다.

“가족의 성공과 내 길, 그리고 진짜 행복”
고창석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집안은 모두 엘리트지만, 나는 내 길을 선택했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진짜 성공 아니겠냐”며
자신만의 행복론을 밝혔다.
그는 가족의 명성과 성공에 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개척하며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명문가, 그리고 유쾌한 반란”
고창석의 가족사는
대한민국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엘리트 집안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는 그 틀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유쾌한 반란’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명문가의 품격과 유쾌함,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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