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병→저격수, 전쟁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카를로스 노먼 해스톡 2세(1942–1999), 닉네임 ‘화이트 페더(White Feather)’는 미 해병대 저격수 중에서도 가장 전설적인 존재로 꼽힌다.
처음엔 헌병으로 복무했지만, 사격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저격수로 차출됐다. 그의 첫 베트남 투입 이후, 연이은 사격과 특수 작전으로 93명의 공식 확인 저격 킬수를 기록했다.

M2 브라우닝에 장착된 망원경, 2.5㎞ 거리 명중
해스톡은 단순 소총이 아닌, .50 구경 M2 브라우닝 기관총에 망원경을 장착해 저격 임무를 수행했다.
이 무기로 2.5㎞ 거리의 적을 명중시키며, 당시 공식 최장 사거리 킬 기록을 세웠다.
나아가 자신을 겨냥한 적 저격수의 조준경을 꿰뚫는 헤드샷 명중으로 적 저격수를 처단하며, 전설 속 신기록을 써내려갔다

고속으로 달리는 보트, 포복으로 700m 명중
해스톡은 보트 위에서 시속 약 20㎞의 속도로 이동 중인 적을 700m 거리에서 저격했다.
이는 단순한 실력이 아니라 움직이는 표적에 대한 신속·정확한 판단력, 집중력, 그리고 실전력의 집합체였다.

1.4㎞ 포복 전진 – 가장 전설적 임무
가장 유명한 임무로는 3박 4일간 포복으로 1.4㎞ 전진,
적 월맹군 작전 기지에 침투해 장교를 정확히 사살하고 탈출한 사건이 있다.
열대 밀림의 스컬드 드래그(crawling drag) 기법을 사용했으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침묵 속에서 움직이며 은밀히 목표를 제거했다.

전설이 된 기록, 현대 저격술의 초석이 되다
해스톡의 기록은 현대 미군 저격교범의 기준이 되었다.
특히 “스코프 관통 저격”, “엄폐 없이 장거리 침투 사살”, “움직이는 보트를 겨냥한 저격” 등은
미군 및 특수부대 훈련의 표준 전술 모범 사례가 되었다. 그의 별명 ‘화이트 페더’는 그가 항상 흰 깃털을 모자에 꽂고 다닌 데서 유래했으며, 적에게 두려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전후 삶과 유산 – 질병과 명예의 아이러니
베트남 전쟁 후 해스톡은 스나이퍼 교관으로 활동했으며, SEAL Team Six 등에게 저격 기술을 전수했다.
하지만 전쟁 후 진전성 다발경화증(multiple sclerosis) 진단을 받으며 1979년 퇴역해야 했고,
1999년 2월 버지니아비치에서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오늘날 ‘스나이퍼의 전설’로 대우받는 이유다 .

완벽한 장거리 침투와 정확성의 상징
카를로스 ‘화이트 페더’ 해스톡은
- 적진 포복 침투 저격,
- 장거리 정확 명중,
- 혁신적 전술 구현
등으로 미 해병대 사격술의 기준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활약은 단순한 킬 수를 넘어,
정신과 기술이 결합된 완벽한 저격수의 상징으로 영원히 전설로 남았다.
이 기록은 단지 역사 속 이야기일 뿐 아니라,
현대 전투 저격의 원형이 되었고,
그 이후 모든 저격 교관과 병사들에게
“기술과 정신력을 결합한 진정한 사수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살아 있는 교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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